질문하는 대상이 잘못되면, 답도 잘못될 수밖에 없다.

<1부. 뜨겁게 앓다, 마흔의 사춘기 3>

by 하늘꽃

<뜨겁게 앓다, 마흔의 사춘기 1>

가만히 과거를 돌이켜보면 나는 지금 나의 현재, 그 당시 기준으로 보자면 나의 미래를 바꿀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인생의 중요한 결정이라 여겼기에, 나는 주위 사람에게 어렵게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조언을 구한 상대는 주로 언니나 부모님이었고, 아주 가끔 동료나 선후배, 딱 한 번 직장 상사도 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대답은 이러했다.

“누구나 다 자기 일을 하고 싶지 않아. 이 세상 어떤 직업도, 어떤 일도 마찬가지야. 너는 정말 좋은 직업을 가졌잖아. 사람들이 다 부러워하고, 자랑스러워하는걸.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내가 보기에 너의 성향상 너는 그 일이 참 잘 맞아. 그리고 편하게 살아 이제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말고, 열심히도 하지 말고, 그냥 편하게 좀 살아. 그 직업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편하게 잘만 살던데, 넌 너무 열심히 해서 힘든 것 같아. 좀 쉬어. 제발.”

부모님을 중심으로 한 가족의 대답이었다. 나는 새로운 일에 대한 갈망과 도전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언제나 대답은 현재의 직업에 대한 이야기가 전부였다. 그리고 나의 질문은 그분들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대화 이후 일정 기간 동안 나를 살피는 모습에 나의 마음은 더 힘들어지곤 했다. 실제로 나의 이십 대 후반까지의 모든 결정, 심지어 나의 인생을 무참히 뒤흔들 결혼에 대한 선택까지도 도맡아서 했던 나의 가족은, 나에 대해 가장 잘 안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 시절의 나에 대해 조금은 더 알지 모르지만(물론 그마저도 자신의 생각을 더해 각자 원하는 대로 과거의 나를 기억하고 만들었다. 그들은 나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나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도 분명하다), 현재의 나에 대해 가장 많이 모르는, 무엇보다 미래의 나에 대해서는 알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당시에는 나도, 그들도 몰랐다. 그들은 그들의 삶과 그들의 생활에 비추어 나의 직업과 일에 관해 판단했고, 조언했다. 그들이 보기에 좋은 나의 모습으로, 그들의 인생과 비교해 편안해 보이는 나의 길을 정답이라 확신하며 내게 제시했다. 몇 년에 한 번이었지만, 대화의 끝에 서 있는 나는 다른 길을 꿈꾸는 아주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생각만이 남았다. 이는 나를 더욱 힘들게 했다.

다음은 같은 직업을 가진 동료나 선후배의 반응이다.

“나도 그러는데, 너도 구나! 나도 다른 직업을 갖고 싶었는데, 부모님의 권유로 이 직업을 갖게 되었지. 어쩔 수 없었어. 나도 다른 거 하고 싶어. 하... 우리는 언제쯤이면 자유로워질까? 20년은 하고 퇴직해야 연금이라도 받는다던데. 그때까지는 기다려야겠지? 넌 얼마나 남았어? 그때까지 어떻게 버티냐? 우리 잘 버텨내 보자.”

결국 우리는 다 같은 신세라는 말도 안 되는 공통사에 놀라워하며 한참을 이야기하고 시간을 보냈다. 뭔가 많이 털어놓고 공유한 것 같지만, 대화가 끝나면 우리는 늘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같은 모습으로, 같은 자리에 돌아가, 같은 일을 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의 마음은 한층 더 가라앉곤 했다. 그래서였을까? 삼십 대 이후부터는 같은 직업군의 사람들과 그런 대화를 더 이상 나누지 않았다. 누군가 과거의 나처럼 고민 상담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내가 먼저 이야기 꺼내는 일은 자연스레 사라졌다. 나는 단지 하소연이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는 진짜 변화를 원하고 있었다.

여러 일을 겪으며 어느 정도 마음의 결정을 내린 뒤, 삼십 대 후반의 나는 최종 결정을 위해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대선배이자 개인적 친분이 있는 관리자에게 마음을 털어놓기로 했다.

“무슨 일이야.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잖아. 너무 잘해 왔잖아. 정작 제대로 안 하는 사람들은 다 버티고 있는데, 이렇게 열심히 잘하고 있는 사람이 그만두기는 왜 그만둬. 절대 안 돼. 우리는 네가 필요해. 그만두다니, 말도 안 돼. 정말 아까워.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하라고? 우리, 아니 우리나라의 미래에 큰 손해가 될 정도로 이건 큰 일이야. 참, 승진하면 마음이 바뀔 거야. 승진 준비를 하자. 그것도 너와 정말 잘 어울릴 거야. 알겠지? 우리도 다 그런 고민하고 여기까지 왔어.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했다 싶어. 너도 그럴 거야. 내가 진짜 아껴서 잡는 거야. 언제든 도움 필요하면 찾아오고. 그만두면 안 돼. 알겠지? 약속해!”

참 고마운 반응이었다. 그만큼 나와 나의 업무능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와 동시에 앞으로도 나는 내 위치에서, 나의 의지나 꿈꾸는 바와는 상관없이 그들과 우리의 직장을 위해 열심히, 또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 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치 나의 5년 뒤, 10년 뒤 모습이 재미없는 일로 이미 정해진 것처럼 느껴져 나는 더욱 힘이 빠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원하는 길은 그들과 같은 길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만 나를 덮었다. 그 자리에 가면 나는 그리 행복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행복한 인생을 살고 싶다.

그렇게 가족들을 통해 '내게 꼭 맞는 직업'이라는 마법 같은 주문을 20년 가까이 새기며 살아왔다. 때때로 동료들과 공감대를 확인했으며, 이미 주어진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며 투덜거리거나, 위로하고 위로받기도 했다. 현재의 직장에서 인정받고 앞으로도 인정받기 위해 다시 현실로 돌아와 온 마음과 온몸을 다해 일을 했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끊임없이 밀어붙였다. 그렇게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 봤지만, 현실은 변할 수 없다며, 한없이 지쳐가며 마음의 병만 키워갔다. 나는 진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한 것이었을까? 한참이 지난 뒤 깨달은 것은, 당시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헛된 생각에 또 다른 헛된 생각을 더하는 일만 했다. 나는 행동하지 않았다. 그럴 용기가 없었다. 제대로 된 생각이나 질문, 대화를 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일을 하고 있지 않았다. 꼭 필요한 대화를 나누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의 나를 만나게 된다면, 이런 질문을 던지고 싶다.

“어떤 일이 누군가에게 잘 맞다는 건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어떤 일을 하며 편하다는 기준은 어디에 있으며, 그 편안함이라는 것은 누가 느끼는 것일까? 과거의 아픔이 같고, 현재의 모습이 비슷하면 모두 같은 미래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승진을 하고 연봉이 오르는 것으로 내 현재의 고통은 모두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인가? 무엇보다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내게 남은 열정을 쏟는다면, 어디에, 무엇을 위해 쏟는 게 좋을까?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은 누구에게 물어야 가장 알맞은 답을 찾을 수 있는 것일까?

무슨 일이든 방법이 잘못되면 일을 그르치게 된다. 글을 잘 쓰는 방법에 대해 알고 싶다면 좋은 글을 많이 읽거나, 실제로 글을 잘 쓰는 작가를 찾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계속해서 내 글을 써 봐야 한다. 엉망이어서 폐기 처분하더라도, 쓰고 또 쓰며 수정하고 성장해야 한다. 서점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내가 책이나 글과 가까워지는 최고의 방법을 찾았다고, 곧 멋진 작가가 될 거라며 안주하고 기대하는 모습은 너무도 어리석지 않은가? 하와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하와이에 대한 정보를 찾아야지 베이징에 대한 정보를 찾으면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나보다 더 많이 산 어른들께 조언을 구하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나보다 더 먼저 인생을 살아간 지혜로운 사람이라 해도, 급변하는 이 시대에 시기적절한 알맞은 조언을 찾아 건네기 쉽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기억을 온전히 다 가지고 타임머신을 타고 20년 전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원하는 모습대로 성공하는 인생을 완벽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글쎄다.

같은 시대,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에 따라 다른 일이 일어나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당연한 일이다. 무엇보다 조언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가 참고하고 고려해야 할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그리고 조언은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주어야 한다. 나의 선택과 행동, 그리고 삶에 의해 조금이라도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어떤 조언도 객관적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결국 모든 인간은 자신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할 때, 나를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과 상의하라고 한다. 하지만 가족도 엄연히 말하면 다른 인격체이다. 같은 가족이라 할지라도 종교도 다르고, 정치적 성향도, 입맛도 다르다. 그리고 누구보다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은 부모님도, 가족도 아닌 바로 ‘나’여야 한다. 이런 당연한 일들을 알기까지 나는 40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다소 늦되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됨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물어보고 끊임없이 조언을 구하자. 대신, 대상이 바뀌어야만 한다.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무엇을 하면 좋을 것인지, 어떤 선택이 나의 미래 모습에 가장 어울리는 선택인지 물어보자. 지혜가 필요하다면 책을 통해, 사색을 통해 그것을 얻어보자. 너무 많은 말을 입 밖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쏟아내지 말자. 답답하고 생각이 어지럽다면 걷자. 숲길도 좋고, 강변도 좋다. 생각이 흘러가는 대로 놔두며 걷고 또 걸어보자. 고대 철학자들은 산책을 중요시했다고 한다. 우리가 멋진 사상가나 고귀한 철학자가 될 필요는 없지만, 우리는 우리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 나만의 맞춤 철학자가 되어 볼 필요가 있다. 질문과 생각이 뒤덮여 혼란스러울 때는, 몸을 움직여 걷는 것이 상황을 정리하는 최선의 방법일 수 있다. 그렇게 걷다 보면, 그렇게 계속 걷다 보면, 하루가 지나고, 또 다른 날이 온 어느 날 자연스럽게 길이 보일 것이다. 내 안에서 내가 그토록 애타게 보내는 메시지가 들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명확해진다. 내가 어떤 길로 나아가야 하는지 말이다. 비로소 행동할 용기가 자연스럽게 솟아나게 된다.

용기는 내 안에 있다. 나와 여러 환경이 그 용기를 저 깊은 곳에 억지로 쑤셔 넣어 안 보이는 것뿐이다.

나만큼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없다. 이것만이 방황하는 내가, 지구상에서 오늘을 살아가며, 매 순간 선택해야만 하는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실이다.

고개를 돌리자. 나에게로. 지금 가장 애타게 나를 기다리는 사람은 바로 '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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