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병아리
세무사시험 최종 합격자 발표는 매년 11월, 그리고 12월 초부터 다음 연도 6월 초까지 수습 세무사로의 교육기간이 시작된다. 수습교육은 1개월 간의 집합강의 교육과, 5개월간 세무법인이나 개인 세무사 사무실 등에서의 실습교육의 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이 수습 교육 수료증이 있어야, 한국세무사회에 세무사로 등록할 수 있는데, 등록을 해야만 세무사로 개업을 할 수 있고, 실제로 세무사 명칭을 쓸 수 있다.
그러나, 만약 개업할 생각이 전혀 없고, 세무사 자격증을 갖고 금융권이나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목표라면 교육은 이수하지 않아도 된다. 혹시 학교 재학 중에 붙어 당장 시간이 나지 않는다면, 언제든 다음 연도의 기수와 함께 수습 교육을 이수해도 된다.
나는 당연히 언젠가는 개업을 할 목적으로 세무사 자격증을 취득했기 때문에, 합격자 발표가 나고 바로 수습교육을 신청했다. 교육비 입금하는 순서가 강당의 앞 좌석부터 자리 배치되는 순서라고 해서, 땡 하고 입금하지는 않았고 적당한 타이밍에 해서 중간쯤 자리를 받았다.
그리고 보통 한국세무사회 집합교육을 신청하면서, 5개월 간 다닐 실무교육처도 바로 알아보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1월부터 실무교육 시작기간이라고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세무법인들은 11월 말이나 12월 초부터 수습세무사를 구하는 게 업계의 관행이었다. 1월부터 바로 부가세 신고기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그전에 수습들을 뽑아 교육하고 실무에 투입시키는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런데 보통 대형 세무법인들은 이미 합격자 발표일 이후 5일 이내에 모든 서류 접수를 마감하고, 면접 진행 후 합격자를 발표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발표일 즈음 떨어지더라도 슬퍼하지 않기 위해 해외여행을 잡아두었었고,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이미 굵직한 세무법인들은 수습 채용기간이 끝난 이후였다.
그런데 뭐 사실 당시에는 딱히 가고 싶었던 법인이 있던 건 아니어서, 그냥 집합강의 교육을 들으면서 천천히 수습처를 찾기로 생각했다. 이미 직장생활을 했던 이력이 있어서, 아직은 이렇게 빨리 출근하고 싶지 않았다... 이 기분에 취해 더 놀고 싶어...!라는 철없는 생각을 하며.
몇몇 친구들이 이미 출근하는 동안, 수습처 면접에 떨어지고 갈 데가 없으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하는 동기들도 많았는데, 나는 수습처 못 구하더라도 나중에 정 안되면 무급으로 세무서 민원실에서 수습을 해도 된다고 들어서 그렇게 조바심이 나진 않았다. 이게 바로 직장인 2회 차의 여유였나.
그러다가 12월 중순쯤, 강남역 근처에서 개인 세무사 사무실을 15년 정도 운영한 세무사님께서 수습세무사를 모집하는 글을 올리셔서 면접을 보러 갔는데, 일단 세무사님 인상이 너무 좋으셨고, 오랫동안 사무실을 운영하셨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도 배울 점이 많다고 느꼈다. 직원은 2명인 소규모 개인 사무실이었지만, 오히려 내가 개업을 한다면 이렇게 시작해야 하니 여기서 기초부터 배우는 게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고, 해당 사무실에서 1월부터 출근하기로 했다.
누군가는 바로 윗 기수의 사수 세무사가 있는 그게 아니면 동기 세무사라도 있는 규모가 큰 법인만을 가고 싶어 했다. 그래야 더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실제 그 말도 맞는 말이었지만, 나는 내가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배우느냐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굳이 비슷한 연차의 세무사 선배가 있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경력직 직원들에게 기본적인 회계프로그램 사용법 등을 배우고, 양도나 상속세 관련해서는 대표 세무사님께 여쭤보며, 그렇게 5개월 간의 실무교육을 마쳤다.
수습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도, 대표 세무사님께서는 함께 계속 일을 하자고 제안해 주셨지만, 나는 막상 실무를 경험해 보니, 개업하기 전에 조금 더 규모 있는 업체나, 다양한 케이스의 컨설팅 업무를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세무법인에서 근무세무사로 몇 년만 일해보며 또 다른 경험을 쌓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