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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들을 설거지로 이끄는 마법의 말

3학년 아들 /여포아내입니다

by 여포아내

아들이 3학년이 되어서 설거지를 좀 해도 될텐데 아직은 시켜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밥을 다 먹고 치우려는데 아들이 그래요.

“ 엄마, 오늘은 내가 설거지 해볼게요 ”

에헤 진짜?

“ 네 한번 해보고 싶어요 ”


이런 소중한 기회는 잘 잡아야 하지요.

앞치마를 둘러주고, 식탁 반찬 정리는 제가 합니다.

씻을 그릇을 개수대 옆에 잘 놓아주고 설거지 하기 딱 좋게 해 줍니다.

“ 엄마 나는 아직 손이 작아서 고무장갑이 안 맞으니까 퐁퐁은 안 하고 물로만 닦을게요.

맨손으로 퐁퐁하면 안 되잖아요 ”

한별이는 쏴솨 물을 틀어놓고 수세미로 그릇을 하나하나 문질러 닦습니다.


숟가락을 씻으면서는

“ 엄마, 가끔 숟가락 쓰려고 하면 잘 안 닦여있을 때가 있더라. 저처럼 이렇게 깨끗하게 닦아야지요 ”


스스로 설거지를 하려는 게 기특하고 예뻐서 사진도 여러장 찍어줍니다.

옆모습, 뒷모습, 밖 베란다에 나가서 앞모습도요.


“ 엄마 다 했어요 ”

어차피 주방세제로 닦은 게 아니라서 제가 다시 해야 하지만

한별이가 이렇게 애벌설거지를 해 놓으니까 너무 편하고 좋아요.


“한별아 네가 이만큼 해주니까 엄마 너무 좋네.

설거지가 일이 아니라 무슨 놀이 하는 기분이야.”

“전체 설거지의 75%는 다 네가 한 거야. 엄마는 25%밖에 안 했어”

“ 에? 내가 그만큼이나 했다고요?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

“아무튼 엄마가 느끼는 건 그래.

남은 퐁퐁설거지는 재미있고 즐거워”


한별이는 설거지 첫 데뷔로 기대 밖 찬사를 받자 뿌듯한 기분이 드나 봐요.

다음에 설거지를 또 해준대요.



며칠 후 고기를 구워 먹은 날이었습니다. 다 먹고 치우려는데

아들이 오늘도 설거지 해 준다고해요.

삼겹살을 먹어서 불판도 있고 기름진 그릇도 많아서 어려울것 같아 말렸는데도 꼭 하고 싶대요.


이번에도 물과 수세미로만 닦지만 저번과는 다른 모습이 보입니다.

개수대 안에 씻은 그릇들이 크기순으로 차곡차곡 쌓여있어요.


“ 엄마 이게 아무렇게나 놓으니까 쓰러지더라고요.

그래서 큰 그릇부터 밑에 놓고 있어요. 큰 것부터 닦아야 하고요 ”

“ 아니 그새 노하우가 생긴거야!

노하우는 일을 그냥 할 때 생기는 게 아니고 일에 마음, 정성 담아 할 때 생기는 건데.

한별이 정말 최고다”

“ 험 험 험 ”


숟가락 하나도 깨끗이 닦느라 비록 물과 시간을 많이 쓰긴 하지만 저리 깨끗이 닦아서 정리된 그릇을 보면 설거지가 막 하고 싶어요.

설거지가 재미나고 즐거운 놀이 같아요.

제가 하는 건 15%도 안 되는 거 같아요.

“저번에는 75%라더니 오늘은 85로 또 올랐어요?”

응 심리적 효과가 있어서인지 엄마는 설거지를 거저하는 기분이야.

한별아 정말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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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는 아내에게 가스라이팅 당하는 가족얘기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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