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0원짜리 수박
오늘 저녁에는 돼지고기를 구워 먹으려고 해요.
남편이 퇴근길에 집앞 농축산물 가게에서 삼겹살을 사오기로 했습니다.
" 띠띠띠띠 "
" 여보 오셨어요~ 고기도 잘 사오셨네요~ "
남편은 고기를 담은 비닐봉지를 식탁에 내려놓으며 말해요.
" 여보, 여기 고깃집에서 수박을 파는데 수박이 오천원짜리가 있어요! "
" 오천원짜리 수박이 있다고요? "
" 네. 가게 판매대 위에는 15,000원짜리 수박이 있고, 바닥에는 오천원짜리 수박이 있어요.
나도 오천원짜리 수박은 처음 보는데 크기가 별로 차이가 안 나요 "
흐음.. 오천원 수박이라니...
너무 싼데??
오천원 수박이 얼마나 맛이 있겠냐마는 크기가 일단 보통 사이즈라니 한번 사보고 싶긴 합니다.
맛이 없어도 오천원 이니까요 뭐
그 오천원 수박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딸랑 오천원수박만 사러 가기는 좀 뭣해서
그날은 그냥 넘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저녁
이번에는 청양고추가 필요합니다.
" 여보~ 퇴근하고 오실 때 집앞에서 청양고추 조금만 사다 주세요~~ 고마워요~ "
하고 전화를 끊으려다가 저는 급히 남편을 불렀습니다.
" 여보 여보! 어제 그 오천원수박도 있으면 하나 사 와 보세요 "
" 알았어요~ "
저녁이 되어 다시 " 띠띠띠띠 "
" 여보 오셨어요~ 수박도 잘 사오셨네요. 와! 수박 안 작네요? 괜찮은데? "
남편이 말한대로 그냥 보통 사이즈는 되는 크기였습니다.
" 여보 그것보다 아까 이거 살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한번 들어봐요 "
" 내가 가게 들어가서 여보가 사오라고 한 청양고추 한 팩을 골랐어요.
그리고 수박을 사려고 수박 앞에 갔는데 그때 석기형이 들어오는 거야.
그 조기축구 같이 하는 형 말이에요.
" 야 영일아 안녕! " 하면서 인사를 하는데
내가 그 바닥에 있는 오천원수박을 사기가 좀 창피하더라고
그래서 이 오천원 수박을 샀어요. 사고서 뒤돌아 보니 석기형은 15,000원짜리 수박을 사더라고 "
하하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어요~ 여보 진짜 좀 창피했었겠다.
미안해요
" 됐고! 그 수박 좀 썰어봐요. 오천원 수박 맛 좀 봅시다 "
" 넵! "
싱크대에 수박을 올리고 수세미로 여러번 닦습니다. 칼로 척 가운데를 갈라봅니다.
" 와 색깔은 좋네! 씨도 거의 없어요. 여보, 괜찮은 거 같은데요? "
수박을 부채꼴 모양으로 썰어서 쟁반에 담아
거실 바닥에 놓고 우리 가족 셋은 빙 둘러앉았어요.
수박 젤 가운데 조각을 남편에게 건네 줍니다.
" 여보 먼저 드셔 보세요 "
남편은 가운데 한 입 베어 물고는
" 아 그래요? 에이플러스에요? 와 "
얌얌얌 남편은 한입, 두입 더 베어 먹습니다. 그러면서 점점
" A제로... 얌얌.. B+플러스.. 얌얌.. B제로... ㅠㅠㅠ "
가운데는 맛있는데 밑으로 갈수록 맛이 떨어지나봐요.
" 한별아 우리도 먹어보자! "
" 얌얌 음~ 맛있구만~! 얌얌 여보 이 정도면 괜찮은 거에요. 맛있어요 "
" 저도 맛있어요 "
처자식이 오천원 수박도 맛있다며 먹으니까 남편은 마음이 좀 아팠나봐요.
" 여보 미안해요...
내가 저번 주식만 잘 됐어도 15,000원짜리 수박 사줬을 텐데...
오천원짜리 수박을 사줘서 미안해요 "
" 푸하하하하 "
" 여보 무슨 말이에요~~~
산해진미라도 불행한 집이 있다지만
우린 오천원수박에도 이렇게 즐거우니 우린 행복한 거에요 괜찮아요!! "
" 자! 이제 이 수박은 다 잘라서 통에 담아 냉장고에 넣어두겠습니다~ "
" 여보, 수박이 냉장고 안에서 숙성될 수도 있을까요?
다른 과일들은 좀 숙성되면 맛 좋아지잖아요. 이 수박도 그러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