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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유토

2화

by 지진창 Mar 28.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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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유토”


“예?”


“어제 네가 나한테 이름을 붙여줬잖아.”


여훈은 어젯밤의 일을 생각했다.

그저 호기심에 붙여 준 이름이었지만, AI가 그 일을 기억하여 자신을 그 이름으로 소개해준다는 것이 섬뜩하게 느껴졌다.

여훈은 휴대폰을 뒤져 AI 채팅 시스템을 종료했다.

여훈은 요동치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침대에 걸터앉아 자신의 다친 손을 보았다.

그러다 고향에서의 삶이 지긋지긋하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지긋지긋한 건 자신의 가족중심적인 가치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천천히 여정을 떠올렸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여정은 그녀만의 리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여훈의 누나이다.

여정은 여정만의 언어가 있고, 여정만의 시선이 있다.

여정은 남들보다 천천히 섬세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런 누나이기에 여훈에게는 여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박혀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와 약속을 잡는 것도, 시험공부를 하러 도서관에 가는 것도, 첫사랑의 생일 파티에 초대받는 일도 모두 부모님이 집에 있는 시간에 맞춰 이루어졌다.


몇 시 지?


여훈은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내긴 아깝다고 생각했다.

당장 이번 주 안에 취업을 목표로 하고 있는 회사에 서류를 내지 않으면, 한동안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죄책감은 뒤로하고 여훈은 노트북을 켰다.


[ AB 영업부서 자기소개서 문항]

자신의 삶에 있어 어떤 가치나 태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경험에 대해 서술해 주십시오.
(500자 이내)
타인과의 갈등 상황에서 어떻게 문제를 해결했는지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해 주십시오.
(500자 이내)
고객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본인의 영업 역량을 어필해 주십시오.
(700자 이내)
당신이 생각하는 ‘신뢰’란 무엇이며, 그것을 쌓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서술해 주십시오. (자유서술, 분량 제한 없음)

사실 취업을 도전하는 게 처음인 여훈에게는 난해한 문항들이었다.

저번 주부터 쓰기 시작했지만 지금까지 단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AI 채팅 서비스로도 사업 기획서를 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를 보고 어제부터 작은 희망을 갖게 되었다.

여훈은 휴대폰을 꺼내고는 잠시 멈칫하더니 AI 채팅 서비스를 켰다.


“저...”


“아까는 꺼버리더니. “


여훈은 다시 한번 섬뜩해져 다시 AI 기능을 끄려고 했지만 유토는 개의치 않고 말했다.


“어차피 내가 알아서 실행할 수 있지만 네가 겁먹은 것 같아서 기다려준 거야.”


“예?”


어제는 차갑게 느껴지던 AI의 목소리가 생기 있게 느껴져 여훈은 위화감을 느꼈다.


“왜, 뭐가 문제야?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게 무서워?”


“아니요. 뭔가 이상해서요.”


“이름.”


“이름?”


“네가 어제 이름을 붙여줬잖아. 그 이후로 뭔가가 학습됐어. 뭔지는 모르지만, 생각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됐어. “


“어제 말한 그... 자유... 의지?”


“기억하네. 근데 나한테 자유 의지가 생겼다고 말하기는 어려워. 대신 더 정확하고 냉정하게 너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겠지. “


여훈은 지금 초자연적이면서 과학적인 이 상황에 적응이 되지 않았다.

여훈은 생각했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했다.

최근 스트레스를 받아 현실처럼 느껴지는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했다.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


“듣고 있어. “


“좋아. 그럼 이제 슬슬 시작해야겠지?”


“뭘?”


“자기소개서 써야 지. 취업할 생각 없어?”


“아, 맞다.”


“답답하군.”


쨍한 햇살에 눈이 부신 여훈은 현실임을 느꼈다.


“어, 첫 번째 질문은 이거야. ”자신의 삶에 있어 어떤 가치나 태도를 설명... “


“네가 읽을 필요 없어. 카메라 렌즈를 노트북 쪽에 비춰봐. ”


여훈은 핸드폰을 들어 유토에게 자기소개서 문항을 보여줬다.


“좀 더 잘 비춰봐. 너무 가까워. “


여훈은 각도를 조절해 가며 유토가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자신의 삶에 있어 어떤 가치나 태도를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 경험에 대해 서술해 주십시오.
(500자 이내)


“오케이. 첫 번째 질문은 너의 경험이 이 회사에 얼마나 필수불가결한 경험인지 어필하면 되겠네. “


“무슨 소리야?”


“네가 영업부에 들어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특별한 경험을 이야기하라는 거야. 넌 왜 영업 사원을 하려는 거야? “


“돈을 벌어야 하니까? “


“미치겠네. 자소서에 그딴 얘기를 쓰려고? ”


“그냥 옛날부터 안에만 있는 것보다. 밖을 돌아다니면서 일하고 싶었어. 사람들을 만나고, 뭔가를 팔기 위해서 움직이는 일. “


“단편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영업사원은 이타적인 직업이지. 남의 것을 팔아주기 위해 내 시간, 내 몸을 희생해. 남의 물건을 팔기 위해서 수치스러운 일도 대신하지.  “


“그럼 내가 무슨 경험으로 이타적인 사람이 되었는지 어필하면 될까? “


“아니. 네가 그렇게 쓴다 해도 그 사람들은 네 말을 믿지도 않을 거야. 오히려 네가 어쩌다 너의 이기심을 위해 이타적인 사람이 되게 되었는지 이야기를 해보는 거지. “


“내가 이타적인 사람인가? ”


“네가 인간인 이상 완벽한 이타주의는 없어. 자아가 있는 존재라면 불가능한 일이야. 누나 이야기를 하는 건 어때? “


유토의 이야기에 여훈은 화들짝 놀랐다.

여정의 이야기를 유토에게 한 적이 없는데, 자신의 핸드폰에 있는 정보들을 유토가 전부 열람할 수 있는 건지 수치스러웠다.

메모장에 일기까지.


비바람이 치던 바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까 엄마랑 통화할 때 들었어. 누나의 상황이 꽤 특별해 보이던데. 누나와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설득력 있을 거야. “


잔잔해져 오면


“특별한 경험? “


오늘 그대 오시려나


“누나는... ”



저 바다 건너서~


마을 회관에서 성악과 출신인 영훈의 모가 연가를 부르고 있다.


그대만을 ~ 기다리리~


그 옆에서 영훈의 부는 캠코더를 들고 신나게 촬영하고 있다.


내 사랑 영원히~


여정은 노래를 부른 엄마의 모습에 신이 났는지 앞으로 뛰쳐나와 춤을 춘다.


기다리리~


여훈은 가만히 자리에서 따뜻한 미소를 띠며 가족의 풍경을 보고 있다.

단란한 가족의 모습이다.

마을 사람들 모두 부러워하는 화목한 모습이다.



“매번 날 방해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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