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밥상

<나는 여기서 밥을 먹으면 안 돼요>

by 카이

일본의 요양원에서 만난 한국인 김순자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김순자 할머니는 내가 근무하고 있는 일본 요양원에서 생활하고 계신다. 치매 초기 증상을 겪고 있는 김순자 할머니는 식사를 거부하시는 경우가 많았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어느 날, 할머니는 우리에게 본인이 요양원에서 식사를 하지 않는 이유를 말해주었고, 그 이유를 듣게 된 우리 모두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순자 할머니와의 첫 만남


김순자 할머니를 처음 만난 것은 약 7년 전이다. 돌이켜 보면 적지 않은 기간이다. 7년 전이면, 내가 이곳 일본 요양원인 이곳에서 근무하기 막 근무하기 시작할 시기였다. 입사하고 다음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김순자 할머니를 처음 만나 인사를 드리고 김순자 할머니의 케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내게 주어진 업무는 데이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김순자 할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가는 일이었다. 데이서비스는 한국의 노인주간보호를 의미한다.


건강한 사람이야 본인의 집에 가는데 케어가 필요 없지만, 고령의 노인 게다가 치매 증상이 있는 노인들은 반드시 곁에서 케어가 필요하다. 이런 업무를 노인 시설에서는 송영이라고 한다.


나는 할머니를 송영차량에 태우고 집까지 모시고 간다. 그리고 할머니가 침대에 편안히 누우시도록 곁에서 보조한다. 방에 있는 텔레비전을 틀어 드린 후, 저녁식사를 침대 옆에 마련해 두어 본이니 원하는 시간에 드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는 것 까지가 내가 맡은 업무였다.



처음 할머니를 만나서 한국어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을 때, 나를 향해 굉장히 반가워하셨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니, 당신 한국사람이에요? 저는 충청도에서 왔는데 어디서 왔어요?


김순자 할머니는 내가 한국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후 많이 반가워하셨던 첫 만남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난다.





치매 그리고 단기 기억장애


나는 할머니를 처음 만난 날 이후로, 약 2년 동안 할머니 댁으로 아침과 저녁에 방문하여 모시러 가거나 데이서비스 하루 일과를 마치면 댁으로 모셔다 드리는 일을 했다. 김순자 할머니는 일본의 작은 시영 아파트에서 혼자 단출하게 홀로 생활하셨다. 일본에도 한국처럼 저소득층을 위한 시영 아파트가 있다.


레비소체형 치매와 치매로 인한 발현된 단기 기억장애가 있으신 할머니는 매일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셨다. 한 달 전에도, 일주일 전에도, 그리고 어제도 매번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셨다. 아마도 내일도 나에게 이름을 물어볼 것이다.


치매 증상 중 하나인 감정기복은 잔잔하게 발현되기도 하고, 급작스럽게 발현되기도 한다. 할머니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은 때에는, 댁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할머니에게 한국 트로트를 불러드렸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박수를 치며 좋아하셨다.


할머니는 간혹 감정이 요동을 치는 것 같다. 분명 10분 전에는 환하게 웃으시며 악수도 하고 미소를 지으셨지만, 얼마 뒤에는 갑자기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시고 나를 보며 한숨을 쉬거나 혀를 차시기도 하신다. 나도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같은 상황이 수 백번 반복이 되니 그저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할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이 기억장애는 점점 그 정도가 심해지는 것 같다. 처음 김순자 할머니 케어를 시작했던 시기에는 내 얼굴은 당연히 알아보시고 인사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하셨었다. 그러나 이제 내 얼굴을 알아보실 때와 못 알아보실 때가 번갈아 온다. 분명 매일 보는 얼굴임에도 말이다.




갑자기 폐렴이라니


할머니는 3년 전에 갑작스러운 폐렴증상을 보여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다. 노인에게는 모든 병이 치명적이다. 감기조차도. 뭐 하나 가볍게 여길 병은 노인에게는 없다. 노년기란 그런 슬픈 시기인 것 같다.


할머니는 구급차를 이용하여 가까운 병원에 입원하셨고, 나를 비롯한 우리 직원들은 할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가시는 모습을 보며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구급차를 탄 채로 어르신들과 안녕을 고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할머니는 3개월 뒤에 퇴원하셔서 내가 근무하는 개호시설로 웃는 모습으로 돌아오셨다. 왠지 혈색이 좋아지신 모습이었다. 그러나 3개월간의 입원으로 걸음걸이가 예전만 못하셨고 이동 중에는 휠체어를 이용해야만 했다. 혈색은 좋아지셨지만, 3개월간의 병원 생활은 몸의 근육을 약화시킨 것 같았다.


입원 전엔 아침저녁으로 집과 요양시설을 왕복하셨지만, 이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신 상태가 되어 버리셨다. 스스로의 힘으로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도 가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 후 김순자 할머니는 이제 요양시설에서 24시간 지내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참고로 내가 일하는 요양시설은 여러 형태의 요양서비스가 가능한 시설이다. 주간만 이용하기도 하며, 입소하여 24시간 지내기도 하는 복합 노인 시설이다.




초기 치매 증상에서 중증으로


김순자 할머니는 3개월의 병원생활 후 혈색은 좋아지셨지만, 근육 등의 신체적인 활동 능력과 인지 능력은 현저히 떨어지셨다. 할머니는 매일 저녁이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된다고 하시며 직원들에게 화를 내셨다. 그러나 제대로 걷지도 못하시고 혼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인 할머니는 현실적으로 집으로 가실 수 없는 상태이셨다.


이전부터 단기 기억 장애가 있으신 할머니는 단기 기억장애를 넘어 오래된 기억까지도 희미해지시는 것 같았다.


"아들이 나를 데리러 오면 꼭 나한테 말해줘"


할머니는 아들이 오면 꼭 말해달라며 나에게 매번 당부를 하셨고, 나는 그때마다 알겠다고 대답했다.


참고로 할머니의 아들은 한국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구체적인 가족 관계까지 개인 정보는 내가 근무하는 일본요양원에서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그저, 할머니가 가끔 아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을 하시니 추측만 할 뿐이다.


실제로 아들을 비롯한 가족들이 할머니를 찾아온 적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다. 할머니가 사람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숨어 계시는 것도 아니고,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만나러 오려고 하면 당장 내일이라도 올 수 있는 곳에 계신다.


그러나 한 번도 할머니를 찾아오는 가족은 수년간 한 명도 없었다. 그렇다. 그런 것이다. 남의 가정사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그저 그렇게 씁쓸한 상황인 분도 계신다. 지구에 사람의 수만큼이나 각자의 사연이 있는 것이다.




반복되는 식사 거부


할머니는 식사 자체를 거부하셨다. 매 끼니 매번 할머니에게 식사를 권할 때마다 거부하시며 화를 내는 일이 반복되었다.


아니, 왜 자꾸 밥을 먹으라고 하는 거여~!
나는 집에 가서 밥 먹어야 하는데 도대체 왜그러는겨?
밥 억지로 맥여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여?


라고 하시며 화를 내시는 일이 반복되었다. 그럴 경우마다, 한 숟갈만 드시기를 권하고 또 권하고 또 권하여 식사를 하시도록 하는 것 또한 나의 일이다.


어느 날 저녁, 식사를 매번 거부하시는 할머니를 위해서 내가 직접 한국식으로 불고기를 만들었다. 매번 입맛에 맞지도 않아 보이는 일본식 식단으로 식사하시는 할머니를 보며 왠지 안타깝기도 하고, 혹시 입맛에 맞는 음식을 만들면 예전처럼 식사를 하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한국식단으로 불고기와 한국식 된장찌개 등을 포함한 반찬으로 저녁식사를 만들어 할머니께 가지고 갔다.


열심히 한국식 식단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한 후에 휠체어에 타신 할머니를 식탁으로 모시고 와서 식사를 권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식사를 거부하셨다. 메뉴가 문제가 아니었구나.




밥을 먹지 않는 이유


식사를 계속 권하는 나를 바라보며 할머니는 뭔가 굉장히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며 거부하셨다. 매번 내게 화를 내셨지만, 이번에는 화를 내는 표정이 아닌 뭐랄까 곤란한 표정을 짓고 계셨다.


할머니는 한참을 말없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시더니 나에게 조용히 말씀하셨다. 행동과 사용하는 언어가 일관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할머니는 이번에는 나에게 존댓말로 이야기하셨다.


저기요~ 나는요~ 여기서 밥을 먹으면 안 돼요~


할머니는 여기서 밥을 먹으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니 이어서 말하셨다.


저는요~ 집에 가야 돼요. 왜냐하면요~
어머니가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어머니가요~ 아마도 지금 나를 위해서 밥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내가 일을 마치고 집에 가면 어머니가 항상 밥을 차려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어요


라고 할머니는 내게 이야기를 하셨다. 할머니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기억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집에서 기다리고 계신다니. 어머니와 식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여기서 식사를 하면 안 된다니.


할머니의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식사를 권하지 못하게 되어 버렸고 눈시울이 붉어지고 말았다. 할머니는 다시 말을 이어가셨다.


내가요~ 여기서 저녁밥을 먹으면요.
우리 어머니가요 슬퍼하셔요.
나랑 같이 밥을 먹으려고 밥을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나 혼자 여기서 밥을 먹어버리면 나도 곤란하고, 우리 어머니도 곤란해요.
미안해요. 나는 여기서 밥을 먹을 수 없어요.


나는 더 이상 식사를 권하지 못했다. 그렇구나. 당신의 어머니가 집에서 기다리고 계신다고 생각하고 계시는구나...


본인의 나라도 아닌, 다른 나라의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고 있는 이 상황 자체를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치매로 인해 거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렸지만 어머니의 기억만큼은 놓치지 않고 있는 이 상황이 너무 가여웠다.


아마도 할머니의 젊은 시절, 어머니와 밥상에 앉아서 함께 즐거운 식사를 하셨었겠지. 일을 마치고 저녁에 집에 돌아와서 어머니와 먹는 저녁식사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 같았다. 저녁식사 시간에 당신을 기다리고 있던 어머니, 그리고 어머니의 밥상에 관한 기억은 노화와 치매로 인한 뇌 기능의 쇠퇴도 막을 수 없는 것 같았다.




어머니의 밥상


사람을 끝까지 살아나갈 수 있도록 하는 힘은 무엇일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기억이 우리를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는 게 아닐까?


어쩌면 우리 모두의 무의식에 자리 잡고 있는 어머니의 밥상에 대한 추억이 우리를 하루하루 살아가게 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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