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매노인과의 대화규칙 <첫 번째>

<노인의 말을 부정하지 말 것!>

by 카이

일본 요양원의 하루 일과가 끝나가는 저녁시간이다. 창 밖은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녁식사를 마친 할머니들은 몇 분은 개인 방으로 들어가시고 몇 분은 거실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다.




낮 어디 갔니?


최근 치매초기증상을 보이기 시작하는 일본인 '사쿠라' 할머니가 방에서 나오셨다. 할머니는 거실의 큰 창쪽으로 가시더니, 통유리로 된 문 앞에 서서 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셨다.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는 모습을 보이시는가 싶더니, 이내 나에게로 다가오셔서 말씀하셨다.


"아니, '낮' 어디 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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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이 어디 갔냐니?


그게 무슨 말인가?


순간 당황했던 나는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


'낮'을 의인화시켜서 인식하시는 듯한 표현에 순간 당황하여 아무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쿠라' 할머니의 또 다른 질문 같은 혼잣말이 계속되었다.


"이상하네. 아까 낮에는 '낮'이 있었는데? 지금 어디 갔지?"


적당한 대답을 찾지 못한 나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처럼 대답했다.


"할머니, 지금은 밤이에요"


'사쿠라' 할머니는 고개를 갸우뚱하시더니, 다시 당황스러운 말을 이어가셨다.


"그래? 그럼 '낮'은 지금 어디 갔어? 네가 한 번 전화해 봐. 지금 어디 있는지"


'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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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게 전화해 보다


나는 할머니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잠시 고만한 후, 핸드폰을 들었다. 그리고는 '사쿠라' 할머니 앞에서 전화를 하는 시늉을 했다.


"여보세요? '낮'씨 지금 어디예요? '사쿠라' 할머니가 찾고 계시는데요? 네? 아~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그럼 잘 쉬시고, 내일 다시 만나요"


라며, 전화통화를 하는 연기를 했다. 그리고 사쿠라 할머니를 향해 고개를 돌려서 말을 이어나갔다.


"할머니, 지금 '낮'씨는 퇴근하고 집에 갔다네요. '밤'이 와서 근무교대 했다고 했어요. 오늘은 피곤하니 집에서 푹 쉬고, 내일 낮에 다시 온다고 하네요. 그래서 그러라고 이야기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라고 할머니에게 말했다. 그러자 할머니는 내 말을 경청하신 후 다시 말을 이어나가셨다.


"아~ '낮'은 집에 갔대? 그럼 다행이지. 아니, 어디 가면 간다고 말을 하고 가야 내가 걱정을 안 하지. 알았어. 전화해 줘서 고마워"


라고 말하시고는 평온한 얼굴로 본인 방에 다시 들어가셨다.


마치 할머니와의 대화가, 내가 어릴 적 아침마다 즐겨 시청했던 어린이를 위한 아침방송 '뽀뽀뽀' 프로그램의 인형극 속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노인이 되면, 다시 아기 때로 돌아간다는 표현은, 현실을 반영한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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