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양원에 NHK 취재팀이 왔다

<모국어: 지워지지 않는 어머니의 언어>

by 카이

일본의 노인요양과 관련된 용어 중 '보고카에리(母語帰り)'라는 일본어 용어가 있다. 일본의 노인 복지 혹은 노인 의료 현장에서 자주 사용하는 단어다. 이 일본어를 어떻게 번역하면 좋을까 혼자 생각해 보았다. ‘모국어로의 회귀’ 정도로 번역하면 적당하지 않을까 싶다.




지워지지 않는 어머니의 언어


언젠가 일본의 방송에서 치매노인을 전문으로 진료하는 의사 선생님의 인터뷰를 보았다. 나의 직업 역시 치매노인을 바로 옆에서 돌보고 있는 직업인지라, 이 인터뷰에 관심이 안 갈 수 없었으며 꽤나 흥미롭게 시청하였다. 여러 가지 배울 점도 많았던 유익한 인터뷰 방송이었다.


이 의사 선생님은 내가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들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주장했다. 단순히 본인의 생각을 내뱉는 수준이 아닌, 명확하게 근거와 통계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를 설명했다.


언어를 두 개 이상 사용하는 사람은, 여러 가지 언어로 사고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에 노년기에 치매발현율이 낮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치매 발현율이 낮은 것일 뿐,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도 치매가 100%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에서 치매가 발현되는 경우에 대하여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이 이어졌다. 여러 가지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중, 치매가 발현되는 경우에 특이한 상황이 발견된다고 했다.


치매가 발현된 후에는 성인이 되어 익혔던 외국어는 점점 잊어버리게 되는 경향이 보인다고 한다. 종국에는 모국어만 사용하게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상태를 가리켜 '보고카에리(母語帰り)'라고 설명했다.


모국어를 익히는 과정은 자전거 타기, 수영하기 등 오감으로 체득하기에 오래 기억한다고 했다. 그러나 외국어를 익힐 때는 모국어로 한번 바꾸어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이에 관여하는 뇌 기능이 모국어를 익힐 때와 다르다고 한다. 게다가 이렇게 익힌 외국어는 기억 손실이 빠르다고 한다.


알듯 모를 듯 한 설명이지만 왠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동안의 여러 가지 경험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일본 요양원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이다. 내가 일하는 이곳엔 성인이 된 후 일본에 와서 일본어를 익힌 한국 어르신들이 적지 않다. 이분들은 꽤 오랜 시간 일본에서 살아오셨기 때문에 일본어가 유창하셨다고 했다. 그러나 치매 발현 후,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는 분들이 계신다.


또한 이곳 요양원에 입소하셨을 치매 초기 시기에는 일본어를 사용하시다가 점점 일본어를 잊어버리시고 한국어로만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과거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다. 위에서 의사 선생님이 설명한 보고카에리(母語帰り)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이런 시기가 오면 모든 직원이 혼란에 빠진다. 아니 혼란에 빠졌었다 들었다. 치매 어르신들과 직원들과의 대화가 점점 불가능해져 버리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 취직하여 일을 하기 전까지, 직원들은 그런 상황들을 접하게 될 경우 그저 당황하며 순간순간을 모면하거나, 어르신들의 생각을 추측만 해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이곳에 요양보호사로 취직을 했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직원이 입사해서 도움이 되었다고들 했다. 나야 뭐 의도하진 않았으나 내 의지와 별개로 이곳에서 한국어 실력을 발휘하고 있다.


보고카에리 상태로 진행되어 버린 한국인 치매 어르신과 대화가 불가능할 때, 그 때야 말로 내가 이곳에서 진가를 발휘하는 최고의 타이밍인 것 같다. 그때마다 나는 자신 있게 소리치며 그 현장으로 다가간다.


"저 한국어 잘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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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원에 NHK 취재팀이 왔다


사실 NHK 취재팀은 내가 일하는 요양원에 정기적으로 오는 것 같다. 자주는 아니지만 1년에 한두 번씩은 NHK 기자들이 취재를 위해 찾아온다.


일본에 있는 요양원 중에서 외국 국적의 어르신들이 제법 많아서 그런가 싶은 생각을 했다. 뉴스에 내보내기에 괜찮은 영상을 많이 건질 수 있는 건가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실제 내가 텔레비전 NHK 뉴스 속에 방영되고 있는 나의 근무지 영상을 보면 꽤 유익하고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기자들 그리고 방송국 사람들은 역시 프로는 프로구나 생각했다.


요양원에 NHK 취재팀이 온다는 소식을 있었다. 이번 취재의 주제는 '보고카에리(母語帰り)'라고 했다. 보고카에리라는 용어는 2개 국어 이상을 했던 사람이 치매 발현 이후 모국어를 제외한 언어를 잊어버리는 현상을 가리킨다.


일본어를 유연하게 사용했었지만, 치매 발현 이후에 모국어만 말하게 되어버린 할머니들의 영상촬영과 인터뷰가 주목적이라고 했다. 요양원에서도 한국 할머니와 중국 할머니들을 인터뷰 대상으로 선정한 후 가족 및 후견들에게 의견을 물은 후 동의를 받은 후 인터뷰 준비를 했다.


취재 당일, 예정대로 취재가 시작되었다. NHK 취재진은 요양원 내부를 촬영하거나 어르신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주로 한국 할머니 혹은 중국 할머니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요양원 대표가 나를 찾았다.


"킴상! 키때꾸레헹? 나니 윳떼이루까 이미 와까라헹~"

(김 씨! 일루 좀 와줄래? 뭐라고 말하시는지 알 수가 없어~)


나는 속으로 '오~ 나 NHK 뉴스 출연하는 거야? 뉴스에 나 나오면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서 한국 가족들에게 보여줘야겠다'라는 즐거운 상상을 하며 요양원 대표가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나는 한국 할머니 옆에 서서 뭐라고 말하시는지 귀를 기울여 듣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 동시통역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치매 증상이 심하신 한국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을 옆에서 주의 깊게 듣기 시작했다. 할머니가 하는 말들은 다음과 같았다.


"달력, 너, 왜? 호호, 고양이, 오빠"


의미가 있는 말이라고 하기엔 애매한, 그저 두서없이 단어를 뱉으실 뿐이었다.


할머니가 하시는 말에는 맥락이 전혀 없었고, 같은 한국사람인 내가 듣기에도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사실 이 할머니는 평소에도 이와 비슷하게 한국어를 하신다. 때로는 상황에 맞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시고, 때로는 지금 상황과 전혀 관계가 없는 단어들을 나열하실 뿐이다.


심각한 표정으로 있는 나에게 취재진이 물었다.


"고노카따, 이마 난또 옷샸떼이룬데수까?"

(이분 지금 뭐라 말씀하시는 거죠?)


내가 대답했다.


"맛땃끄 이미 와까라헹~"

(뭐라카는지 전혀 모르겠네예~)


취재팀은 날 보며 황당해하며 '이 사람 한국어 이해할 수 있는 거 맞아?'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난 결국 뉴스화면에 나오지 못했다. 다른 요양원 직원들은 모두 조금씩이나마 출연했지만, 내 모습은 뉴스 화면 어디에도 등장하지 못했다. 나만 빼고 다 나온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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