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은 흘려듣자>
요양원 거실에서 한국 할머니 한분과 나란히 앉아 텔레비전으로 유튜브 영상을 이것저것 보고 있었다. 70~80년대의 한국 노래를 찾아서 함께 듣던 와중에 우연히 조용필 콘서트 영상이 나왔다.
갑자기 옆에서 조용히 TV를 보시던 할머니가 입을 여셨다.
"나, 쟈~ 만나본 적 있어"
"네? 어디서요?"
"내가 어렸을 때, 경주에서 여관을 했었어. 그때 조용필이 와서 하룻밤 묵었던 적이 있어"
"네? 진짜요? 대박! 진짜 조용필이 할머니가 운영했던 여관에 왔다고요?"
"응. 나한테 가수 시험을 보러 왔다고 첫날 내게 말을 했었어. 다음날인가 방송국 가서 가수시험을 본다고 말했었지"
"오~엄청난 이야기네요. 근데 옛날에는 가수시험을 경주에서 봤어요?"
"아니 서울"
"네? 경주에서 여관을 했었다고 했잖아요"
"응"
"아니, '응'이 아니고..."
할머니는 내 반응은 가볍게 무시하면서 본인의 할 말을 이어가셨다.
"조용필이 가수시험을 보러 간 다음 날 동네 사람들과 뒷산에 소풍을 갔는데, 곰 두 마리가 나타나더니 동네 사람들을 다 잡아먹었어"
"네?(뭔 소리야? 갑자기?)

"곰이요? 서울에 곰이 나타났다고요?"
"아니, 만주"
"네?(뭔 소리야?) 갑자기 만주요?"
"응. 만주"
"할머니, 만주는 중국 아닌가요? 할머니 중국에 가본 적 있어요?"
"없어"
“......”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던 나를 향해 할머니는 다시 말을 걸기 시작하셨다.
"근데, 너 결혼했니?"
"네? 밑도 끝도 없이 결혼 이야기요? 했지요. 했어. 제 나이가 몇인데, 결혼했다고 벌써 삼천번은 말씀드린 것 같은데요?"
"그래? 나는 처음 들었는데? 알았어"
"아... 네..."
요양원에서 할머니들과 대화를 하려면 정신을 잘 차리고 있어야 한다.
이야기에 맥락이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아니 많다.
잘못하면 상상 속에만 존재하는 곰에게 잡혀 먹힐 수도 있다.
치매 증상이 있는 어르신들의 대화 중 절반은 흘려 들어야 한다.
너무 신중하게 듣다 보면 대화 속에서 길을 잃게 된다.
그나저나 이분이 하시는 말씀 중에 진실과 착각이 적절히 섞여 있던데...
할머니는 혹시 조용필을 과거 언젠가 진짜 한 번 만나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