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5일, 평택은 그 해 가장 매서운 겨울밤을 맞고 있었다. 자정을 넘긴 시각, 갓 지어지고 있는 냉동창고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흉측한 아가리를 벌린 괴물처럼 웅크리고 있었다. 그 속에서 붉은 악마가 혀를 날름거렸다. 냉동창고 화재, 그것은 단순한 사고가 아닌 재앙의 시작이었다. 드넓은 미로 같은 공간 안에 가득 찬 가연성 물질들은 불길에 쉴 새 없이 기름을 붓고, 맹독성 연기는 출구를 봉쇄하며 소방관의 접근을 허락하지 않는 듯 했다.
송탄소방서 당직 사관, 권징안 과장의 얼굴은 굳어졌다. 무전기 너머로 터져 나오는 다급한 상황 보고는 그의 심장을 짓눌렀다. “전 대원, 안전 장비 철저히 점검. 무슨 일이 있어도 안전 확보가 최우선이다!” 그의 목소리는 강철처럼 단단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톤에서 불안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그는 베테랑 소방관이었다. 수많은 화재 현장을 누볐고, 수많은 생명을 구했다. 그러나 이번 화재는 그가 지금까지 겪어왔던 모든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현장은 묵시록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맹렬한 화마는 콘크리트 건물을 집어삼키듯 맹렬하게 타올랐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건물은 마치 불타는 해골처럼 끔찍한 모습이었다. 권 과장은 즉시 대응 1단계를 발령하고, 평택은 물론 인근 소방서에 지원을 요청했다. 밤새도록 수십 대의 소방차와 백여 명의 소방관들이 쉴 새 없이 물줄기를 뿜어내며 불길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새벽 6시 30분, 필사적인 노력 끝에 간신히 큰 불길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권 과장은 안도의 숨을 내쉴 수 없었다.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것을 그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피로에 젖은 몸을 이끌고 잔불 정리에 나선 대원들을 향해 권 과장은 끊임없이 격려를 보냈다. “모두 힘내!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끝낼 수 있다!” 무전기를 든 그의 눈은 매의 눈처럼 쉴 새 없이 현장을 훑었다. 작은 불씨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그는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하지만 그의 시야를 벗어난 곳에서, 불행의 씨앗이 다시 움트고 있었다.
오전 9시, 2층 한쪽 구석에서 다시 붉은 혀가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송탄소방서 119구조대원들이 망설임 없이 진입을 자원했다. 이00 소방위, 박00 소방교, 조00 소방사, 그리고 두 명의 동료 대원. 그들은 묵직한 소방 호스를 어깨에 둘러메고, 뜨거운 숨을 몰아쉬며 불길 속으로 뛰어들었다. 이00 소방위는 침착하고 노련한 베테랑이었고, 박00 소방교는 이제 결혼 3개월이 된 새신랑이었다. 막내 조00 소방사는 앳된 얼굴이었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 찬 새내기 소방관이었다.
“안전, 또 안전! 절대 무리하지 말고” 권 과장의 절박한 외침은 곧 굉음과 함께 묻혀버렸다. 그는 마치 불길 속으로 뛰어드는 아들들을 바라보는 아버지처럼, 불안한 눈빛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봤다.
2층 깊숙이 진입한 대원들은 화재 진압에 총력을 기울였다. 좁고 어두운 공간,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길, 그리고 매캐한 연기 속에서 그들은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했다. 하지만 그 순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끔찍한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러운 폭발과 함께 거대한 충격파가 건물을 뒤흔들고, 굉음과 함께 쏟아지는 파편들이 모든 것을 덮쳤다. 두 명의 대원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만, 이00, 박00, 조00, 세 명의 영웅은 무너져 내린 잔해 속에 갇히고 말았다.
현장은 순식간에 절규와 오열로 뒤덮였다. 동료들은 미친 듯이 잔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손과 발, 온몸을 던져 콘크리트 더미를 치우고, 쇠붙이를 들어 올렸다. 그들의 모습은 처참했지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형0아! 수0아! 우0아! 제발, 대답 좀 해봐!” 절규에 가까운 외침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간절한 외침은 묵묵부답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절망감은 더욱 짙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세 영웅은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그들의 얼굴은 검은 그을음으로 뒤덮여 있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시민을 구하려 했던 숭고한 정신은 빛을 잃지 않았다.
결혼 3개월 차 새신랑 박00, 25살의 풋풋한 새내기 조00, 언제나 동료를 먼저 챙기던 든든한 선배 이00. 그들의 죽음은 동료는 물론 국민 모두에게 큰 슬픔과 충격을 안겨주었다. 송탄소방서 직원들은 그 누구도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그들은 단순한 동료가 아니었다. 함께 땀 흘리고, 함께 웃고 울었던 가족과 같은 존재였다.
권 과장은 굳게 입술을 깨물었다. 솟구치는 슬픔과 죄책감을 억누르며, 그는 침착하게 시신 수습을 지시하고 부상자들의 이송을 챙겼다. 그는 대원들의 정신적인 충격과 트라우마를 염려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다. 하지만 그의 심장은 이미 갈기갈기 찢겨져 있었다. ‘조금만 더 신중했더라면… 내가 그들을 막았더라면…’ 그는 끊임없이 자책하며, 죄책감의 늪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날 이후, 죄책감은 권 과장을 옭아맸다. 그는 수년간 심리 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그날의 악몽은 현장에 함께 했던 모든 소방관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PTSD는 그림자처럼 그들을 따라다녔고, 생존자들조차 여전히 깊은 상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작은 사이렌 소리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밤마다 악몽에 시달리는 날들이 계속되었다.
송탄소방서는 그날 이후, 평범한 날이 없었다. 웃음 뒤에 숨겨진 불면의 밤, 텅 빈 자리에서 느껴지는 그리움, 그리고 세 영웅에 대한 사무치는 죄책감. 하지만 그들은 안다. 이00, 박00, 조00, 세 영웅이 얼마나 용감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숭고한 희생정신을 발휘했는지를. 그들이 남긴 불멸의 정신은 동료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것이다. 그들은 세 영웅의 숭고한 희생을 결코 잊지 않고, 더욱 투철한 사명감으로 시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날, 세 명의 영웅은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영원히, 우리의 심장에 깊이 새겨졌다. 그들의 희생은 결코 헛되지 않았으며, 대한민국 소방 역사의 한 페이지에 영원히 기록될 것이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은 앞으로도 수많은 소방관들에게 귀감이 되어, 더욱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출처 : SBS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