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시평 #21 거룩한 방뇨

고단했던 하초를 땅에 대시네

by 정건우


칠 층의 구순 되신 할머니께서 밖으로 나오셨다. 돌아가시는 게 아니냐는 통로 사람들의 걱정이 일상화되었을 만큼 오래 아프셨던 노인이다. 벚꽃이 다 허물어질 만큼 날씨도 화창하고, 기온도 적당한 휴일을 택해 출타하셨다. 아파트 입구에서 주민들 인사받으시느라 굽은 허리를 펴고 함지 바가지만 하게 웃으신다. 모처럼 아파트 입구의 소방도로가 사람들 웃음소리로 생기가 넘친다.

며느리가 한사코 말리는데도 할머니가 아파트 인근에 소담하게 마련된 채소밭으로 가자시는 모양이다. 경사가 급하지는 않지만 구순 노인이 오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며느리가 말리는 것일 테다.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우묵한 자드락밭이 보기에 좋으셨는지, 아니면 당신만이 해결할 궁금증이 있으셨는지는 모르겠으나 할머니는 기어코 밭으로 가셨고, 한참을 가만히 계시더니 이내 앉아서 오줌을 누시는 것이다.

듣기에 삼 남 오 녀를 낳으셨단다. 구순이시면 요새 연세로도 아주 옛날 어른도 아니신데 참 많이도 나으셨다. 그리고 팔 남매가 별 사고도 없이 동기간에 서로 아끼며 잘 살고 있다는 것이다. 부군을 비교적 일찍 여의고 홀로 가족을 건사하셨다니 그 삶의 고초야 오죽하셨겠는가. 노인의 그 전설 같은 생의 질곡을 익히 알고 있는 주민들이어서 할머니에 대한 존경과 경외가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노인이 지금 자드락 채소밭에 오줌을 누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 아파트 최고 지존 모체께서 행하시는 저 방뇨는, 파릇한 뭇 생명에게 전하는 세례이자 복음이다. 죽음의 문턱에서 생환하신 어마어마한 깨달음이 베푸시는 절대 보시다. 저 이파리들 사이사이에서 악다구니로 치받고 반목하는 것들에게 경고하는 추상같은 일갈이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할머니가 조심조심 내려오신다. 며느리는 눈물 훔치기 바쁘다. 그 어머니에 그 며느리다. 저 눈물 속에는 한 달 내내 얘기하여도 모자랄 사연이 가득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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