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시평 #22 미애

우리들의 미애는 어디 먼 데를 헤매고 있나?.

by 정건우


김 형은 말 없는 사람이다. 자영업을 하는 사람인데, 저렇게 말 수가 적은 사람이 어떻게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겠는지 신기할 정도다. 대답이 뻔한 질문엔 그냥 피식 웃는 것으로 대응하고, 조금 복잡한 질문엔 “글쎄요, 그게”라는 답이 대부분이다. 한마디로 재미없는 사람의 끝판왕이다. 그러나 사람이 천성으로 선하고 실제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인상이 오히려 순박해 보이는 참 매력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만나면 거의 침묵으로 대화해야 하나 나는 그런 그가 좋다. 그의 답답한 말과 어눌한 표정과 생각의 간격이 긴 그 표현의 행간에 숨은 갈증을 예측해 보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하다.

그런 그가 술 한잔 걸친 날이면 통성명을 다시 해야 한다. 인사불성 고주망태라는 고전적인 주사 때문이 아니다. 끝 모르게 바닥으로 추락하는 목소리로 오로지 "미애"를 찾는 그의 애절함이, 듣는 이에게 슬픔의 울화통을 송두리째 뒤집게 만드는 재주 때문이다. “미애”는 그의 아내다. 외견상 그들 부부의 일상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성실한 남편과 현명한 아내, 원만한 자식들이 그야말로 오순도순 재밌게 사는 집안 분위기다. 한 번도 부부 갈등에 대한 가십거리를 제공한 적이 없는 그야말로 모범 부부다. 술 취한 남편의 전쟁 선포 같은 주사에 대한 “미애”의 반응은 괴로움 토로 그 자체다. 도무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십여 년 전부터 그랬다고 하는데, 아무리 수사해 봐도 그 이유는 예측불가란다.

그의 오열이, 그토록 그가 갈구하는 무언가의 도피처가 아내가 아니라면 그것은 사회적인 개념으로의 안식처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른바 아내를 빗댄 욕망과 갈증의 출구 지점을 찾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론이다. 그의 고독, 외로움, 힘듦, 답답함 같은 축축한 것들의 배설을 술의 힘을 빌려야만 모색할 수 있다면 그 고민은 사회적인 것일 거라는 결론이다. 어딜까?. 그런 김 형의 영혼의 안식처는. 그토록 부르고 싶은 마리아나해구처럼 깊은 이름은. 그의 성정으로 보아 서해의 끝 쪽 격렬비열도 같은 곳이 아닐까?. 누구에게도 속해있지만 아무나 가서 품을 수 없는, 그의 가슴속 가장 깊게 해가 지는 서쪽 같은. 사실 우리도 김 형처럼 말을 안 해 그렇지 마음속에 “미애”를 품고 살고 있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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