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리스트 안형수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친구의 예술에 경외감을 표한다.

by 정건우
우측이 안형수


기타리스트 안형수 / 정건우


국내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인 예술의 전당에서 금난새 씨와 협연도 하고, 드라마 "가을동화"의 삽입곡인 "로망스"를 끝이 둥글고 마냥 편안하면서도 섬세한 음색으로 들려준 클래식 기타리스트 안형수. 그는 나와 초등학교 동창이다. 눈이 커다랗고 유독 머리숱이 많았고 평소 명랑했지만 뒷모습이 쓸쓸했던 아이였다. 교실 창가에서 나른한 햇살 받기를 좋아했다. 하루 종일을 그렇게 하라고 하면 거기 있을 녀석이었다. 그의 부친께서 인장을 새기는 일을 하셨던 기억인데, 정식 간판은 없고 그냥 집에서 생계유지의 한 방편으로 하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때? 우리 아버지가 파신 거야"
초등학교 졸업이 다 되어 갈 무렵 유독 살갑게 나를 대하던 그가 도장을 하나 보여주었다.
"안형수"라 새긴 도장. 하나의 조각 작품이었다. 고딕체로 밀고 훑어서 판 것이 아니라 흘림체를 조각한 아름다운 글씨체의 막도장이었다.

"이야! 이건 도장이 아니라 조각이야"
담임 선생님께 말하여 졸업할 때 필요한 우리 반 아이들 도장을 전부 형수 아버지 작품으로 해달라고 졸라서 그렇게 했었던 기억이 있다. 말없이 좋아하며 왕방울 눈빛으로 미소 짓던 그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공부도 곧잘 하였고 책 읽기도 좋아해서 당시 성행했던 자유교양 경시대회 전 학교 대표 나를 포함한 몇몇 친구와 같이 활동했던 기억도 있다.


집안이 몹시 가난하여 중학교 진학을 못한 형수는 동네 이발소에서 허드렛일을 했다. 그러면서 클래식 선율에 매료되어 틈틈이 독학으로 연마했던 기타 연주를 손님들 앞에서 자주 시연했었던 모양이었다. 암울하고 우울했던 사춘기의 질풍노도 같은 울분을 기타 선율에 실어서, 치열한 연주에 몰입하여 몸부림치고 삭였던 것으로 보인다. 형수가 그렇게 일하며 우리들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잊히는 동안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무심한 세월이 물처럼 담담하게 흘러갔다. 그렇게 교본과 씨름하며 독학으로 실력을 키워나간 형수는 군대 제대 후 아예 기타 만드는 공방에 취직하여 기타에 인생을 거는 모험을 강행한다. 경기도 광명의 허름한 기타 공방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생존 목적으로 기타를 만들며 틈틈이 연주하던 그는, 독학으로 검정고시에도 도전하여 대학 진학의 꿈도 이룬다.


그의 솜씨는 금세 소문이 났고 큰 악기 회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일할 기회도 잡는다. 그리고 1987년, 국내 유일의 클래식 기타 콩쿠르대회에 구경 삼아 출전했다가 쟁쟁한 후보들을 물리치고 영예의 대상을 차지한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하던 교수의 권유로 그는 평택의 피어선 음대를 졸업한다. 그리고 누구의 추천도 없이 1993년 스페인의 마드리드 왕립 고등음악원에 응시하여 6학년으로 편입하고, 1995년에 수석으로 졸업한다. 길거리에서 연주하며 생활비를 충당하여 거리의 악사라는 별칭을 얻기도 한다.


이후 귀국한 그는 눈부신 활약을 하며 우리 클래식 기타계의 전설이 되었다. 강단에도 설 수 있었고 학원 등에도 출강할 수 있었지만 그는 한동안 전국 순회 연주에 몰두하였다. 서울의 어느 레스토랑에서 정기 연주를 하며 우리와 만났던 그는 "마법의 성", "하얀 연인들", "사랑의 인사"등 여러 장의 기타 연주 앨범도 냈다. 화려하고 현란한 연주를 지양하는 대신 코드와 코드를 연계시키는 운지 과정에서 미끌림이 전혀 없는 차분하고 섬세한 깊은 울림의 독특한 주법이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불세출의 기타리스트 안형수.


한때 기타 연주자에게 치명적이라는 "포컬 디스토니아"가 발병하여 고생이 많았다 한다. 일정한 동작의 반복으로 구부렸던 손가락이 펴지지 않는 증세로 한동안 힘들게 지내다 2019년 즈음에 완전히 회복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도 연주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고향 양구의 문화회관 건립 기념으로 군에서 그를 초청해 연주회를 개최하여 군민의 자긍심을 높여주기도 하였다. 많던 머리숱을 아예 밀어버려 민머리로 순회공연하는 그는 이제 중견 기타리스트를 넘어 곧 원로 소리를 듣게 될 듯하다. 비교적 오래전, 아내와 아들과 함께 이태원의 비손 레스토랑에서 정기 연주하는 그를 만나기 위해 포항에서 직접 올라간 적이 있었다. 탤런트 고소영이 즐겨 앉아 고소영 자리라고 칭한다는 의자에 앉은 아내의 넋을, 송두리째 마법의 성으로 날려버리던 그 유려한 선율을 잊지 못한다.


포항시립미술관에서 자주 그를 초청하여 연주회를 갖는 관계로 가끔 그를 만난다. 그는 항상 바쁘고 나 또한 프리랜서 업무 때문에 일부러 만나는 일은 드물다. 요즘은 주요 관심사로 건강 문제를 놓고 톡을 주고받으며 대화한다. 어릴 적 그 소박했던 정서를 환갑이 넘은 지금도 전혀 흔들림 없이 간직하고 있는 친구의 모습이 참으로 보기 좋다. 가정을 이루지 않은 채 홀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그의 삶이 때론 애잔하고 언짢기도 하지만 친구로서는 그의 선택에 무한한 지지와 성원을 아니 보낼 수 없다. 엄혹하고 힘든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고향 친구로서, 바탕에 질펀한 그의 촉촉한 정서를 어느 정도 인지하는 작가의 입장에서 들어보는 그의 선율은 남다를 수밖에 없다. 오늘도 나는 홈시어터에 "마법의 성" CD을 습관처럼 넣는다. 어김없이 맑고 깨끗하고 끝이 둥글고 마냥 편안한 그의 선율이 온 거실에 그득하다.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친구의 예술에 경외감을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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