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랑洪娘의 묘에서

무덤은 한 사람의 생이 그린 궤적의 종착지다.

by 정건우
사진 출처: 네이버


홍랑洪娘의 墓에서 / 정건우

파주군 교하면 다률리(옛 청석리) 청석초등학교 인근 야산에 묏버들의 시인 홍랑의 묘가 있다. 풍수지리 공부를 한답시고 전국의 산하를 싸돌아다니며 보았던 무덤 중, 이렇게 이쁜 무덤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산 버들 이쁜 것만 골라 꺾던 손등인 듯이, 사랑을 키워내던 생명의 원천 그 유방인 듯이, 그녀의 묘는 그렇게 아담하고 이뻐 보는 나를 다 눈물지게 한다. 잘 정돈되어 있는 그녀의 유택은 가슴 시린 한평생을 그리움으로 마감한 천상 여인의 표본처럼 단아한 향기를 품고 있다.

이렇게 이쁘게 죽을 수도 있는가? 그리고 그런 죽음을 보듬고 있는 이 향기는 무언가? 이곳에 와보니, 주룡의 형세가 어떻고 입수룡의 격은 어떠하며, 우수도좌하는 파구는 어디라서 어떤 수법을 근거로 어떤 향법을 채택했냐는 둥의, 달달 외우고 다니던 풍수 이법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가를 절감한다. 이곳에 묻히기 위해 홍랑은 그 길고 긴 인고의 세월을 걸어왔다. 청룡과 백호가 환포하고 안산이 고즈넉하게 읍하며 예를 갖춘 곳이 아닌 바로 님의 곁에 묻히기 위해서다. 저승에서 만날 기약은 사람의 염원이 아니므로, 님의 곁에 뼈를 묻고 님과 함께 산화하고 싶었던 것이다. 백골이 바스러지며 사라져 버리더라도 님 그리던 기억조차 그의 곁에 두고 싶었던 홍랑이었다.

홍랑은 홍원洪原의 관기官妓였다. 그녀는 시를 무척 좋아하였는데 특히 삼당시인三唐詩人으로 불리던 고죽 최경창의 시를 특히 좋아하였단다. 고죽이 함경도 경성의 북평사가 되어 임지로 가며 홍원에 잠시 머물 즈음, 꿈에 그리던 고죽을 만난 홍랑은 그만 덜컥 사랑에 빠진다. 꿈같던 시간도 잠시, 변방 임무의 막중함 때문에 홍랑을 홍원에 남겨두고, 훗날 재회의 기약만 흘린 채 고죽은 임지로 떠난다. 그러나 님 그리움에 사무치던 홍랑은 남장을 하고 천 리 길을 걸어 경성으로 올라가 꿈에 그리던 님을 만난다. 전설 같은 가던 길의 고생도 님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그리움의 여정이었다고 회상하니, 온 유럽을 울렸다던 이태리의 루이지 수라체와 그리스의 안겔리키 스트라티고우의 사랑이, 어디 홍랑의 그리움만 하였겠는가?. 이후 고죽이 다시 한양으로 내려올 때, 쌍성까지 따라온 홍랑은 어느 비 오는 날 밤, 그 유명한 한 수의 시를 님에게 바친다.

묏버들 갈혀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는 창 가에 심거두고 보소서
밤비에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여기소서

이후 3년간 소식이 없던 중에 고죽이 병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자, 홍랑은 밤낮 7일을 걸어 낭군에게 도착한다. 그리고 본처가 시샘하여도 내색을 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게 애쓰는 간호를 한다. 홍랑의 그런 사랑의 힘으로 고죽은 일어난다. 기생과의 로맨스가 세인의 이목을 붙잡고 이 일 때문에 고죽이 면직되자 홍랑은 다시 홍원으로 되돌아간다. 이후 고죽은 성균관직강, 다시 종성 부사로 간지 1년 만에 한양으로 되돌아오던 중 종성 객관에서 45세를 일기로 객사한다.

낭군의 영구를 따라 상경한 홍랑은 님의 무덤가에 초막을 짓고 9년간 시묘살이를 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에는 고죽의 시고詩稿를 등에 지고 피난하며 정리하여, 오늘 우리가 그의 시를 볼 수 있게 만든다. 홍원에서 죽으며 홍랑은 이렇게 유언한다. "나를 낭군 곁에 묻어 주시오". 신분 구별이 목숨만큼 중했고, 막중 소임의 관리와 기생과의 부부와도 같은 교분은 상상도 할 수도 없었던 사회에서, 고죽의 후손들은 홍랑을 그녀의 유언대로 고죽의 묘 밑에 장사하고, 시비도 세웠으니, 둘의 사랑이 어떠하였겠는지는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고죽과 홍랑 사이에 아들이 한 명 있었다고 하는데 내 연구가 짧아 더 이상은 알 길이 없다.

무덤은 한 사람의 생이 그린 궤적의 종착지다. 한 세상을 호흡해 왔던 긴 여정의 종점이다. 우리가 그를 찾아보는 이유도 결국 같은 길을 비슷하게 걸어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기에, 먼저 갔던 그의 체취를 호흡하고 그 길의 수고로움을 체감하면서 그리워하며 무언가를 다짐하기 위함이다.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에 두 점으로 남아, 영원히 같이 머물고 있는 고죽과 홍랑의 묘에서 나는, 인간 본연이 갖고 사는 그 그리움이라는 것이 얼마나 처절하며 위대한 것인지 새삼 가슴을 쓸어내리며 절절하게 느낀다. 그리움이란 것은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이름 가지고 살아가는 모든 객체들이, 비로소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자각의 증표이다.


사랑은 자신의 가슴을 저미어 가면서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날 때부터 저미어 있던 자신의 가슴을 보듬고
날 때부터 자신처럼 가슴이 저민 그 사람을
찾는 것이다
사랑은 이제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어언간 처서도 지났다. 십 년 만의 혹독한 폭염을 견딘 공기라서 그런지 하늘은 높고 뚜렷하다. 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잠시 멀게 느껴지던 하늘이, 왜 저렇게 푸르름에 질려버릴 정도로 맑으냐. 회사의 유전개발 문제로 격무에 시달리다 심신이 어느 정도 지쳤다. 사랑도 그리움도 살아나는 경제 속에서 피어나는 꽃처럼 화사하다면 그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돌아가는 발길은 가볍다. 세상 그 어디서고 사람이 살고 있는 이상 가슴 시린 사랑이야기는 있을 테고 그렇게 남겨진 아스라함을 품고 있는 하늘은 또 이렇게 아름다울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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