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유럽을 울린 사랑 하나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by 정건우


온 유럽을 울린 사랑 하나 / 정건우


안겔리키 스트라디고우라는 이름의 할머니가 아모레 셈프레(영원한 사랑)라고 이태리어로 끝나는 두통의 엽서를 가슴에 끌어안고 숨을 거둡니다. 숨지기 전에 한 말은 "티 아스페토 콘 그란데 아모레"(난 위대한 사랑을 안고 그대를 기다렸어요). 1941년 8월 제2차 세계대전 때, 20세의 이태리 군 육군 소위 루이지 수라체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반도 서북부의 아름다운 항구도시 파투라이로 파견됩니다. 행군 중 루이지는 집 앞에 앉아 있는 안겔리키 스트라디고우에게 길을 묻습니다. 크고 검은 눈이 매력적인 처녀였지요. 그녀가 굶주림에 지쳐 있음을 안 루이지는 전투식량을 나누어 주며 사흘이 멀다 하고 찾아 사랑을 키웁니다.


루이지는 그리스 말을, 안겔리키는 이태리 말을 배우지요. 짧았던 행복은 43년 이태리가 항복하면서 끝나고, 귀국하던 루이지는 어렵게 청혼을 합니다. 안겔리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태리에서 루이지는 그녀에게 사랑 가득한 편지를 보냅니다. 당시 고모 집에서 살았던 안겔리키는, 조카가 적군과 연애하는 것을 인정치 않았던 고모에게 편지를 중간에서 가로 차입니다. 답장 없는 편지를 계속 보내던 루이지는 천일 째 되던 무렵 드디어 그녀를 잊기로 하고 결혼을 합니다. 그러다 그의 부인이 96년 세상을 뜨자 옛사랑이 생각난 루이지는, 파투라이 시장에게 옛 사연을 담은 편지를 보냈고, 시장은 현지 스카이 방송사 기자들의 도움으로 아직 그 도시에 살고 있던 안겔리키를 찾아냅니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어요". 소식을 들은 안겔리키의 첫마디였답니다. 안겔리키의 연락을 받은 루이지는 목놓아 웁니다. 그녀가 56년 전의 결혼 약속을 믿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아왔음을 안 때문이지요. 1998년 2월의 성밸런타인데이에 둘은 감격적인 재회를 합니다. 파투라이에서 루이지는 또다시 청혼했고, 안겔리키는 또 받아들입니다. 루이지는 77세, 안겔리키는 79세였습니다. 1년의 절반씩을 각각 그리스와 이태리에서 지내기로 한 루이지와 안겔리키의 달콤한 계획은 안겔리키가 앓아누운 끝에 죽음으로서 끝납니다. 사망일은 1999년 1월 9일로 결혼식을 2주 앞둔 날이었습니다. 그때 루이지도 병원에 있었는데 그 소식을 알리 없는 그는 결혼이 연기된 줄만 알고 매주 토요일 아침이면 "영원한 사랑"으로 끝나는 엽서를 썼답니다.


엽서는 그녀의 무덤 앞에 쌓이고 이 소식을 알게 된 온 유럽이 울었다더군요. 그때 이 기사를 보고 나는 우리 회사의 전 사업장, 협력업체 등에 팩스를 날려 이 위대한 사랑에 경배하되, 이 기사를 읽지 않은 놈(?) 과는 일상을 논하지 않겠다며 부산을 떨었던 기억이 납니다. 한 여인의 그 모질고도 아름답고 또한 미련한 슬픔에 몸서리 처지는 가슴 아픈 사랑, 글쎄요 니미락 내미락 한 세월이 또 흘러간 지금 조금은 처연해지는 심정입니다 마는, 계절 탓이어서 그런지 새삼 들춰보는 그 사연에 가슴이 시리며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홍랑의 묘에서 안겔리키를 생각해 보았었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주어진다면 안겔리키의 무덤을 보고 싶습니다. 산버들 이쁜 것만 골라 꺾던 홍랑의 무덤처럼 이쁠 것입니다. 브런치 스토리 작가님들, 올가을에는 이렇게 가슴 시려오는 사랑을 한 번 해보시지요. 이 나이에 무슨 사랑을 어떻게 하느냐고요?. 전들 그 방법을 무슨 수로 알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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