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사람 얼굴 위에 내리는 햇살로
어렸을 적, 정월 대보름이 되면 나는 들판으로 나가 달맞이 놀이를 하였다. 분유통만 한 깡통의 옆면을 칼로 길게 내리 찢어 바람 통로를 만들고, 관솔이나 마른 나뭇가지를 잔뜩 집어넣고 불붙여 철사줄에 매달아 돌리는 놀이다. 돌릴수록 바람이 거세게 들이닥쳐서 불은 몸집을 키우고 응집하며 폭발하듯 팽창하는 소리를 낸다. 나는 그때 불의 이글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나를 무한하게 매료시키며 황홀한 위안을 선사해 주었다.
내 팔의 원심력이 최고조에 달하는 왼쪽 0도 허공을 지나며 수축하던 불은 오른쪽 180도 지점에서 다시 폭발하며 소리를 고조시킨다. 내 팔이 일정한 힘과 속도로 그리는 궤도를 따라 도는 불은, 분산되는 힘의 작용력에 따라 높낮이가 다르게 이글거렸다. 그 강약이 만드는 소리의 리듬에 흠뻑 취해서 나는 불이 사그라질 때까지 팔 아픈 줄도 모르고 불을 돌렸다.
불의 이글거리는 소리는 정초를 맞는 소년의 가슴에 장중하면서도 가슴 벅차게 열리는 마음의 지평을 펼쳐주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떠오르는 태양을 감격의 눈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어쩌면 태양은 소리를 내지 않을 것이란 생각을 했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일으킨 바람에 어른대는 불기운의 반응이 "이글거림"이라는 상상도 하였다.
고드름이 짱짱하게 매달린 처마 밑에 앉아서 햇볕에 녹아 떨어지는 낙숫물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어느샌가 목덜미가 훈훈해지곤 하였다. 이글거리는 태양의 손길이 머문 것일 게다. 밤이 오고 새벽이 열리는 소리도 그와 다르지 않을 게다. 그 "이글거림"은 마치 "볕뉘" 같아서 어둡고 습하고 추운 곳에서 더욱 빛을 발하며 뭉근하게 스며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