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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넘어지다

애널리스트가 실실 웃는 증권 방송을 보던 중

by 정건우


아내 넘어지다 / 정건우

아내가 넘어졌다.

반 토막 난 우리 주식의

적극 매수를 권했던

애널리스트가 실실 웃는

증권방송을 보던 중,

천정에 붙은 모기를 잡다

의자와 함께 나뒹굴었다.

밤 새 아내와 가루며

정밀하게 잠행하던 모기는

비틀린 신문지 한쪽에

선혈 낭자한 궤적을 남겼다.



아내는 입도 못 벌리게

허리를 다쳤다.

아아, 아내는

이토록 사소한 일에도

목숨 던지며 산다.

질주하던 자동차의

타이밍벨트가 끊기듯,

추동력 잃은 아파트가

조용해졌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두 아들 옆에서

나는 졸지에 셋째 아들이 됐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도 없는 구급차 안에서

꿈길을 걷는 것처럼 아내가

유언을 한다.



첫째가 박살 낸 교탁 유리는

내일 방과 후에 배달된단다.

모레 시험 치는 둘째는

언더라인을 스무 번 그어야

외워진단다.

내 카드빚으로

윗집서 빌린 돈은

다음 주 수요일까지는 꼭,

갚아야 한단다.

내 빚은 나도 모르고,

둘째도 제 비밀을 모르고,

첫째만 소리를 냈으니 알 텐데,

아내는 셋을 다 안다.



발등이 쿵 소리를 내고

찍혀야만

천리를 길길이 날뛰는

화살 과녁 같은 내 복장이

이리도 뒤틀리는데,

사소한 일에도 펄썩펄썩

목숨을 내던지는 아내는

오죽할까?.

사는 동안 수없이

비틀어버리고 싶었을

순간순간이

건너고 건너 결국엔 제 몫으로

되돌아온다는 걸 아는지,

비틀어버리면

손아귀가 세 곱절 힘으로

넘치는 걸 아는지,

질러대는 순연한 제 비명을

다독거리며

자신을 비틀며 살아온 아내.



그래서 아내는

꽈배기처럼 비 신문지를

꼭 쥐고 있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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