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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백설의 밝은 서늘함으로 올곧을 수 있기를 채근하며

by 정건우


통곡 / 정건우


배꼽 두어 치 아래,

단전 부근 어딘가 깊은 곳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알았다.

등을 활처럼 휜 채

나를 받치고 있는 그것은

둔중한 요동으로 내 심지에

무겁게 간여하고 있다.

내 발목을 동아줄로

묶어 놓고는

세상 밖으로 뛰쳐나가는 나를

잡아당겨 제압하고,

낙심해서 치를 떨고

가라앉으면

줄을 잡아채는 서슬에

소스라친 내가

튕기어 올라 멀쩡하게

돌아가는 각도를 흘긴다.

러가며

팽팽한 손맛을 즐기는 그와

마흔이 넘어 비로소

인사하게 되었다.



말없이 살던 내가

한마디 말도 없었다는 이유로

세상에 치이던 어느 날,

갑자기 나는 아랫배가

몹시도 근지러웠다.

꿈틀대던 그 등이 쪼개지면서

벌어진 틈새로

진하게 끈적거리는 골수가

처음 몸하는 소녀가 벗어놓은

개짐의 피처럼 번지는데,

오스스 소름이 돋는

아랫배를 휘감아 비틀어대며

거머리처럼 올라오는데,

이게 무어냐.

숨길이 턱턱 막히게

구멍이란 구멍을 틀어막고,

오장육부를 뒤섞어가며

죽이겠다는 듯이,

장맛비에 둑을 터뜨린

강물처럼 밀고 올라오는

이게 무어냐.

그러다 가슴까지 와서

그 물이 한꺼번에

불덩어리로 번지더니,

숨 막혀 내가 죽기 직전에

비명을 지르며 터져 나온 것이

울음 덩어리더냐.



마흔이 넘어서야 비로소

나는 목 놓아 운다.

내 생의 한복판에 서 있는

그도 어쩔 수 없는,

안쓰러움에 울음 운다.

갈매나무 가지마다

정하고 정하다는,

백설의 밝은 서늘함으로

올곧을 수 있기를 채근하며

드맑게 삼켜온 숨결이

가라앉아

척수에 닿길 바랐던

눈꽃 같은 침전에 목 놓는다.

삼백예순날을

마냥 울 수 없기에

갈라진 그 등에 얼굴 박고

엉겨 들어

다만 오늘 통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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