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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과 끝, 4월

그럼에도 인류애

by 루이덴



비록 T.S. 엘리엇의 시 the wasteland는 april is the cruellest month라고 시작하지만 나는 4월이 좋다. 봄의 시작, 알록달록 꽃들이 피어나고 새롭게 터지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어서-라는 미사여구들을 붙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내가 4월생이기 때문에 좋아할 뿐.


나의 생일이 있는 달, 4월.

사-월이라는 발음도 사랑스럽고

영어 april 에이프릴(럴)도 귀여워 보이고

동글동글 부드러운 인상이다.


나는 다정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배려심이 많다거나 정이 많은 사람이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실제로도 다정하길 바라고 나누고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


요 근래 전국적 재해인 산불 사태를 겪으며 으레 그러했듯 (코로나 때도 무안 사고 때도 기부금을 보내거나 후원물품을 보냈다) 이번에도 기부금도 보내고 구호물품도 보냈다. 마음 좋은 사람들이 모여 서로 으쌰으쌰 하며 상황 공유도 받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역시 인류애가 세상을 구한다 싶었다. 하지만 모두 다 선할 수는 없는 법, '위기를 기회로'이 때다 하고 사리사욕 채우거나 거짓선동으로 편 가르기를 한다거나 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나의 선의와 호의는 갈 길을 잃었다. 정작 그들이 피해자도 아닌데 (맞을 수도 있지만 모를 일이다) 저들 때문에 실제 모든 삶의 터전과 일터를 잃으신 어르신들이 도움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 생각하니 마음이 답답하다.


정작 언젠가 내가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저들은 나를 도울까.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부분인데 이번 일을 겪으며 갑자기 문득 냉정해지기 시작한다. 작다면 적은 금액이지만 이번 산불 피해 후원을 하며 백만 원 돈은 썼는데 이게 흐지부지 흩어질 거라 생각하면 참... 그나마 지자체에 기부한 금액들이야 필요한 곳들에 배분이 되겠지만 그보다 더 빠르고 직관적으로 도움이 되고자 보낸 수십만 원어치의 물품들이 쓰레기행이 될까 두렵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다음 재해 때도 또 과몰입하며 후원처를 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 곳들을 찾게 되겠지. 결국은 인류애, 사람은 사람 때문에 죽지만 결국 사람 때문에 살기도 한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꼭 소방청이나 산림청에 정기후원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내 그릇을 그만큼 키워내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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