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 밑을 훑고 지나가는 쌔한 감각-
독립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였어요.
통증 호소가 너무 심한 환자 한 명이 있었어요.
ERCP를 받은 환자였는데, 시술 후 내내 통증을 호소하며 데이 근무 내내 진통제만 맞고 있었죠.
전 듀티 선생님은
“의사에게 노티했고, 진통제만 주라고 하더라”
는 말만 남기고 퇴근하셨어요.
그래서 저도 진통제를 드리기 위해 환자를 보러 갔어요.
환자를 제 눈으로 본 순간, "아 이거 큰일났다" 싶었어요.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
침대 위에서 둥글게 몸을 만 채로 끙끙 앓고 있는 그 환자는 숫자나 기록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이상한 기운이 확 느껴졌어요.
결국 환자는 중환자실로 올라가
빠르게 바이탈 잡고, 응급 수술을 받았습니다.
(솔직히 그때는 그냥 이렇게 말했어요.
“선생님… 환자 좀 와서 봐주세요. 설명은 못 하겠는데… 진짜 이상해요!!! 와서 봐주세요!!!” )
근데요,
그때 저는 그 느낌을 누구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었을까요?
지식도 부족하고,
그걸 설명할 근거도 없고,
전 듀티는 이미 “의사와 얘기 끝났다”고 했는데...
“이거 아닌 것 같은데요?”라고 말할 용기가 없었어요.
괜히 까불다 혼날까 봐.
이런 경험이 하나둘 쌓이다 보면
언젠가는 감을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경력간호사가 되겠죠.
하지만 그 전이라도,
‘눈치 빠르고 감 좋은 간호사’가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환자입니다.
저는 지금 중환자실에 있다 보니
바이탈을 1시간마다 재고 있어요.
그런데 바이탈이 아무리 안정적이어도
환자의 상태가 불안정한 경우, 정말 자주 봐요.
중환자실은 비교적 환자 한 명 한 명을 깊게 볼 수 있지만
병동은 그렇지 않잖아요.
환자 수는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상태를 일일이 확인하는 건 현실적으로 버겁죠.
그렇다면
첫 라운딩을 할 때,
약을 드릴 때,
휠체어 타고 움직이는 환자 모습을 볼 때
그 순간만큼은 꼭 유심히 봐야 해요.
특히 변화한 것이 없는지 잘 보셔야 합니다.
셜록 홈즈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일반인은 눈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관찰은 하지 않지.하지만 나는 관찰을 하지.
그래서 나는 계단이 17개였다는 걸 기억하는 거야.”
보헤미아 스캔들 中
간호사는 관찰자입니다.
의사들이 흔히 말하는 ‘지켜보죠’는
간호기록에선 ‘Observation’으로 차팅되죠.
이건 단순히
“지금은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앞으로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 유심히 보겠다는 뜻이에요.
그러니까요.
그 ‘뭔가 이상한데...?’라는 감,
쉽게 무시하지 마세요.
그 감이 간호사의 ‘감각’이고,
그 감각이 생명을 살릴 수도 있으니까요.
스레드에서 공감을 참 많이 받았던 글이에요!
좀 더 가벼운 글을 보시고 싶으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