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로 이어진 인연
우리 동네 상가 지하.
오픈된 공간에 조금 낡고 오래된 느낌의 작은 식당가.
어떤 집에서 볶음밥의 고소한 냄새가,
어떤 집에서는 국물 끓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 식당가 한켠.
소박한 간판 아래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짜장면집이 있다.
인테리어도 특별할 것 없는, 평범한 동네 식당가의 중국집.
주변 상인과 주민들이 오래 다니는, 찐 ‘단골집’이다.
그 집은 진짜 무명의 맛집.
블로그에 소개된 유명 맛집이 아니라,
동네 사람들의 발걸음과 추억이 쌓인 곳.
남편은 혼자 있을 때도 자주 그 집을 찾았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살면서도 그 집 짜장면과 짬뽕을 그리워했다.
"그 집 짬뽕 국물 진짜 맛있어. 아 먹고싶다.”
그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그릇의 음식이 주는 위로가 얼마나 깊은지를 새삼 느꼈다.
한국에 도착한 다음 날,
우리가 제일 먼저 향한 곳도 그 집이었다.
시차 때문에 머리는 멍하고 몸은 무거웠지만, 그래도 그 짜장면, 짬뽕 한 그릇 생각에 발걸음은 가벼웠다.
남편은 사장님의 익숙한 얼굴에 반가워했다.
"오랜만이에요! 미국에서 언제 들어오셨어요?"
사장님의 반가운 인사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풀렸다.
짜장 하나, 짬뽕 하나.
면을 비비자마자 퍼지는 달큼한 향에 입안에 침이 고였고,
짬뽕 국물 한 숟갈에 묵은 피로가 확 가셨다.
"이 맛이야, " 남편이 으쓱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정말, 맛있네!"
바쁘게 다니다 시간이 좀 흐른 뒤,
그 집 맛이 그리워 우리는 다시 그 집을 찾았다.
우리가 카운터 주문대에 서자마자 사장님이 손을 흔들며 다가오셨다.
"기다렸어요!"
왜 기다리셨냐는 순간의 궁금증은, 이어지는 말에 미소로 바뀌었다.
"지난번에 오셨을 때, 사모님 향기가 너무 좋았다고,
우리 마누라가 아직도 그 향수 이름을 궁금해 해요. 하나 사주고 싶어요."
그 말에 순간 식당 안 공기가 따뜻해졌다.
짜장면의 달콤한 양파 볶는 냄새와 짬뽕 국물의 얼큰한 향 사이로,
내 향수가 누군가의 기억에 남았다는 게 신기했다.
사장님은 주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외쳤다.
"여보! 여기 그 사모님이야! 그때 그 향수! 지금 여쭤보게 나와봐."
그 다정한 말투와 표정이 어찌나 정겹던지.
나는 웃으며 향수 이름을 말씀드렸다.
사장님은 진지한 얼굴로 안경을 고쳐 쓰시더니,
핸드폰을 꺼내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메모하셨다.
그 순간이 짬뽕보다, 짜장면보다 더 깊이 기억에 남았다.
향기로 이어진 인연도 있다는 걸, 그날 알았다.
그 향수는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남아,
이렇게 다시 사람을 불러오기도 한다는 걸.
최근 군산 여행을 다녀왔다.
군산 하면 짬뽕이라던데.
우리는 군산에서 유명한 짬뽕을 먹었지만, 우리에겐 특별한 맛 차이는 없었다.
고추짜장은 오히려 불쾌감이 더 컸다. 블로거들의 장난인지, 우리 입맛이 힙 하지 못한 건지...
오히려 식사 뒤, 문득 우리 동네 그 집이 떠올랐다.
우리 동네 그 집의 짜장면과 짬뽕은 맛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맛은 물론이고, 그보다 더 따뜻한 사람이 있고, 추억이 있고, 향기가 있다.
사장님이 아내를 생각하며 정성스레 메모하던 그 마음은,
짬뽕 국물보다 더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음식으로, 사람으로, 그리고 향기로 이어진 곳이다.
돌아보면, 가장 깊은 향은 사람에게서 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