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시간과 지친 시간
나는 두 곳의 서로 다른 조직에서 각각 12년씩 일한 경험이 있다.
처음은 한국의 영어학원에서,
다음은 미국으로 건너가 한국인이 운영하는 회사에서.
같은 12년이라는 숫자.
하지만 그 안에 담긴 관계와 기억은 너무도 달랐다.
며칠 전, 13년 만에 그분을 다시 만났다.
원장님을 마주한 순간, 어떤 시간이 내게 더 깊이 남아 있는지,
어떤 사람이 내 마음속에 아직 살아 있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한국의 영어학원은 치열한 곳이었다. 학생들의 성적이 학원의 명성을 좌우했고, 선생님들의 수업은 하나하나 평가의 대상이었다. 한국 학원 문화 특유의 경쟁 속에서, 몇 분 늦은 상담이나 사소한 실수도 금세 소문이 퍼졌다. 매달 달라지는 등록률과 학부모 만족도는 숨가뿐 긴장감을 안겼지만, 그 속에는 생기가 있었다.
늘 바빴고, 때로는 전쟁터 같았다. 누군가는 살아남기 위해 더 밝게 웃었고, 누군가는 버티기 위해 더 치밀히 준비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함께 웃는 동료가 있었고, 서로의 고생을 알아봐 주는 따뜻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원장님은 우리를 '직원'이 아니라 '사람'으로 대해주셨다. 일보다 사람을 먼저 챙기셨고, 지적보다 응원을 먼저 건네셨다.
그곳을 떠난 지 13년이 흘렀지만, 나는 여전히 그 시절 선생님들과 연락을 주고받는다.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함께 모여 밥을 먹으며 옛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마침내 원장님도 다시 만났다.
식사 후, 그분은 웃으며 말했다.
"남산 둘레길, 잠깐 걸을까요?"
여전히 걷기를 좋아하시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찜통더위가 한참인 여름날, 우린 천천히 남산을 걸었다.
옛 학원 이야기, 각자의 삶 이야기, 그리고 때로는 말없이 조용한 동행.
마치 어제도 함께 일했던 것처럼, 대화는 한 치의 어색함도 없었다.
그날 나는 새삼 깨달았다.
왜 수많은 외국인 강사들이 고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그분을 찾아 다시 한국으로 오곤 했는지.
그분은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 곁에는 시간이 흘러도 사람이 다시 모인다.
반면, 미국에서의 12년은 많이 달랐다.
한국인 오너가 운영하는 그 회사에서는 직원의 절반이 한국인, 나머지가 미국인이었다. 나는 인사 담당자로, 사장과 가장 가까이 일하며 그의 본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그에게 사람은 교체 가능한 자원일 뿐이었다. 한 번은 재무팀장이 제출한 보고서의 오타 하나를 지적하며 "이런 실수는 비용"이라 냉소적으로 말했다. 작은 실수조차 용납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늘 숫자—매출, 효율, 비용—에만 맞춰졌다. 미국의 성과 중심 문화와 한국인 오너의 효율성 집착이 뒤섞여, 성과 뒤의 노력이나 사람 사이의 정은 외면받았다.
물론 한국 학원에서도 돈은 중요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돈만큼 사람이 소중했고,’한 식구‘처럼 서로를 아끼는 정서가 있었다. 반면 이곳에서는 결과가 관계를, 시스템이 사람을 앞섰다. 그 12년은 '보냈다'기보다 '버텼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 성과는 남았을지 몰라도, 정은 남지 않았다.
지금도 그 회사 동료들과 가끔 연락을 나누지만, 대화는 대개 사장에 대한 불만으로 시작해 씁쓸한 기억으로 끝난다.
"아직도 똑같아?"
"응, 더 심해졌지."
"진짜 우린 포기했어. 딱 할 만큼만 하고 버티는 거야."
반면, 학원 시절 선생님들과 만나면 이야기는 늘 따뜻하다.
"그때 우리 힘들었지만 진짜 좋았어요."
"원장님, 정말 따뜻한 분이에요."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워요. 선생님, 우리 다시 수업하러 가야 할 거 같아요."
어떤 기억은 꺼낼 때마다 웃음이 되고,
어떤 기억은 꺼낼수록 가슴이 무겁다.
같은 12년, 너무도 다른 마음.
그날 남산을 걸으며 나는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을까.
그리고 앞으로는 어떤 사람으로 남고 싶을까.
성과보다 온기가 먼저 떠오르는 사람,
함께했던 시간이 그리움으로 남는 사람,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
어쩌면 우리가 할 일은, 오늘 만난 누군가에게 작은 따뜻함을 건네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우리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오늘 누군가에게 건넨 따뜻함이, 언젠가 나를 기억하게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