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맡긴 드라이클리닝
오래된 셔츠를 꺼내 들었다. 색은 바랬고, 어깨선은 살짝 늘어졌지만, 이상하게 버릴 수 없다. 그래서 드라이클리닝에 맡긴다. 매번 맡기며 '이번이 마지막'이라 다짐하지만, 비닐에 곱게 싸여 돌아온 셔츠를 보면 마음이 또 흔들린다.
기억도 그렇다면 좋겠다. 지울 순 없지만, 드라이클리닝처럼 조심스레 털어내고, 눌어붙은 감정의 얼룩을 말끔히 지워 다시 마음 한편에 걸어두는 것. 가끔 꺼내보더라도 아픔이 나를 긁지 않고, '그런 때도 있었지' 하며 가볍게 웃을 수 있다면.
이모한테서 전화가 왔다.
"뭐 해? 점심은 먹었어?"
늘 밝고 경쾌한 목소리. 전화기 너머에서도 향긋한 라일락꽃 냄새 같은 게 났다.
그 목소리를 듣기만 해도 괜히 마음이 풀리고, 덩달아 나도웃게 되던 사람.
내가 어렸을 때부터 이모는 나한테 늘 아낌없었다.
대학 시절, 미국에 살던 나를 보고 싶다고 비행기 티켓을 사서 한국으로 불러줬다.
그땐 비행기 값이 지금보다 훨씬 비쌌던 시절인데도, 단 한번도 망설임이 없었다.
"우리 조카 얼굴 봐야지, 더 바빠지면 언제 또 오겠어."
그 한마디에 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한국에 오면 이모,이모부가 맛있는 거 사주고, 옷 사주고, 필요한 거 있나 없나 살뜰하게 챙겨줬다.
조카를 마치 세상에서 제일 예쁜 딸처럼.
그러나 97년 어느 날, 늘 반짝이던 이모와 이모부가 하루아침에 부도를 맞았다. 갑작스러운 재정난은 그들을 힘겹게 만들었고, 연락도 뜸해지며 점점 모습을 감추셨다.
사실, 이모보다 내가 더 뜸했다. 바쁘다는 핑계로, 어색하다는 이유로, '이모, 괜찮아?'라는 한마디를 차마 꺼내지 못했다.
난 그저 그 기억을 마음 한구석에 얼룩처럼 방치해 뒀다. 늘 마음 한구석에 이모에게 미안했다.
시간이 지나면 기억도 옅어진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몇 년 전 일이 어제처럼 선명하고, 어릴 적 창피했던 순간은 여전히 심장을 조인다. 잊었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예상치 못한 순간에 불쑥 얼굴을 내민다. 오래된 셔츠처럼 꺼내 입기엔 조금 망설여지는 기억들.
다행히 이모와 이모부는 다시 일어섰다. 이모부가 손수 벽돌을 쌓아 올리며 완성한 카페는 그들의 회복을 상징하는 듯했다. 이번에 한국을 여행하며 두 분을 찾아뵀다.
내가 처음으로 두 분을 모시고 식사를 대접했다. 늘 받기만했던 내가 밥 한 끼를 사드린 건 처음이라, 마음 한편이 부끄러웠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오는 두 분의 웃는 얼굴을 보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제 괜찮아졌구나'라는 안도감과, 그때 조금 더 따뜻하게 안아드릴 걸 하는 후회가 뒤섞였다.
기억은 오래된 책처럼 다시 펼쳐볼 때 비로소 새 의미를 드러낸다. 그날의 식사 자리에서 이모는 여전히 밝게 웃었고,이모부는 카페를 자랑하며 뿌듯해하셨다. 그 모습을 보며,비록 후회로 남는 옛날 기억도, 이제는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는 내가 되기를 바랐다.
가끔 망설이며 드라이클리닝을 맡기듯, 나도 그 기억들과 소중한 사람들을 꺼내어 마주하고 있다. 시간이란, 어쩌면기억을 천천히 정화해 주는 드라이클리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그 셔츠의 색이 더는 되살아나지 않듯, 그 기억도 조금씩 흐릿해지며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때마다, 이모의 목소리처럼 따뜻한 미소를 떠올리며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지는 해처럼, 아픈 기억도 천천히 물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