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다음 문장은 이어진다
세 달 전, 나는 28년 만의 방학을 선언했다.
그 순간만 해도 이 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지 알지 못했다.
그저 오랫동안 달려온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싶었을 뿐이다.
그리고 지금, 그 방학의 끝자락에 서 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3개월 동안
나는 글을 썼고, 길을 걸었고, 때로는 울컥했고, 또 한없이 웃기도 했다.
잊고 있던 나를 꺼내어 다독였고,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
머무는 동안, 곳곳에서 추억이 나를 불러냈다.
딸이 자라며 생활해 온 동네의 골목마다 이야기가 깃들어 있었고,
우리가 함께 웃고 울었던 흔적들이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익숙했던 풍경이 달라져 놀란 적도 많았지만,
그 변화는 시대가 변하고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다.
20년 만에 다시 만난 인연들과도 함께 산을 올랐다. 한때 주말이면 같이 산행하며 웃고 떠들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땀 흘리며 오르는 길, 그들의 익숙한 웃음과 발걸음은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따뜻한 다리 같았다.
방학은 학교처럼 숙제를 내지 않았다.
대신 "잘 쉬어라, 네가 네 삶의 주인이라는 걸 잊지 마라." 하고 속삭여주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따라, 이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들었다.
쉼은 멈춤이 아니었다.
쉬어가는 동안에도 나는 자라고 있었고,
멈춘 듯 보이지만 오히려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쉼표가 문장을 끊지 않듯,
이 방학 역시 내 삶의 문장을 이어주는 호흡 같은 것이었다.
방학은 끝났지만, 마침표는 찍지 않는다.
이어지는 일상 속에서도 작은 쉼표 하나쯤은 품고 살아가려 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으며 나와 함께 걸어준 당신에게도,
작은 쉼표 하나가 찾아가기를 바란다.
수고했어, 나.
고마워, 당신.
세 달의 방학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간다. 미국의 집은 아마도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우리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며칠이 멀다 하고 뽑아야 했던 그 잡초들이, 3개월의 자유를 누리며 내 키보다 더 크게 자랐을지도 모른다.
세상 무엇보다 강인한 그 잡초들은 생명력의 상징처럼 당당히 서 있을 것이다.
생각만 해도 벌써 허리가 뻐근하지만, 그 또한 달콤한 쉼의 댓가라 여기기로 한다.
삽을 들고 땀을 흘리며 잡초를 뽑는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일상'이라는 이름의 여행길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여정이 여기서 마무리된다 해도,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곧 미국으로 돌아가,
또 다른 쉼표를 이어갈 새로운 연재로 찾아올 것이다.
다음 연재 예고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
삶은 늘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오간다.
역마살을 타고난 남편과 딸,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나.
다음 연재에서는 그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그리고 그 안에서 흔들리고 단단해진 나의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다.
이 순간, 모든 여정의 시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