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가 멈춘 날, 오지를 사랑하게 되다

솔로몬 제도- 찍지 못한 사흘

by Susie 방글이




한국에서 출발해 호주 브리즈번(Brisbane, Australia)을 거쳐 호니아라(Honiara, Solomon Islands), 솔로몬 제도의 수도에 도착했을 때, 이미 절반은 여행을 마친 듯했다. 하지만 진짜 여정은 그다음부터였다.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한 시간 반. 창문 아래로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을 것 같은 초록과 갈색이 이어졌다. 비행기는 활주로 대신 잔디와 자갈이 섞인 땅 위에 덜컹거리며 내려앉았다. 잠시 뒤 풀숲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왔다. 손짓만으로 확인된 약속. 남편과 스태프는 장비를 들고 강가로 이동했다.


모터보트 세 대에 짐을 나눠 싣고 두 시간 반을 더 들어갔다. 강은 점점 좁아졌고, 물빛은 밝아지기 시작했다. 문명이 물러난 자리마다 초록은 더 짙어졌다.


오지 마을에 도착했을 때, 주민은 마흔 명 남짓. 스태프는 네 명, 출연자 한 명, 카메라 감독 한 명, 카메라 보조 한 명, 그리고 연출인 남편. 그의 첫 해외 출장, 첫 해외 다큐멘터리였다.


도착 후 이틀은 촬영이 아니라 준비였다. 마을을 걸으며 사람과 장소를 살피고, 족장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카메라가 들어갈 수 있는 곳과 멈출 곳을 정했다. 무엇을 찍고, 무엇을 남겨둘지는 천천히 맞춰갔다. 이야기는 사람의 속도에 맞춰 서서히 흐르고 있었다.


오지로 들어가는 작은 비행기 안, 아직 모르는 이야기를 향해 날고 있었다.


섬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라, 사람들 사이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지 마을의 어르신. 첫 만남에서 이미, 이야기는 시작되고 있었다.


촬영 시작 날, 예상치 못한 공백이 드러났다. 촬영용 비디오테이프가 없었다. 카메라는 있고, 장면도 준비되어 있었지만, 기록을 남길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사라졌다. 테이프는 수도 베이스캠프에 남겨져 있었다.


순간 모두가 얼어붙었다. 촬영 일정은 빽빽했고, 다음 스케줄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하루가 늦어지면 비용과 시간이 한꺼번에 날아갈 상황이었다.


"누구 담당이었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누군가는 이미 테이프를 실었다고 믿었으며, 또 누군가는 확인했을 거라 생각했다. 말 몇 마디의 어긋남이 눈앞의 바다보다 더 넓은 거리를 만들어냈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장비는 풀숲 속에서 흔들리고 있었고, 사람들은 서로를 바라보며 불안한 기류를 감지했다. 촬영 팀은 몇 초간 움직이지 못했다. 모든 계획, 모든 준비가 잠시 공중에 떠 있는 느낌이었다.


결국, 해결책은 단 하나였다. 현지 코디네이터와 마을 주민 한 명이 작은 배를 타고 사흘 동안 테이프를 가지고 오는 길만 남았다. 촬영팀을 데려다준 비행기는 10일 뒤에야 돌아올 예정이었다. 선택지는 없었다. 촬영은 멈췄고, 시간만 남았다.


남편과 스태프들은 카메라 없이 마을 사람들과 사흘을 보냈다. 낚시를 따라가고, 숲으로 사냥을 따라갔다. 우기라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바다에 들어갔다. 통나무 카누 위에서 균형을 잃고 물에 빠지면, 아이들이 먼저 웃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웃음은 번역이 필요 없었다. 찍히지 않는 시간 속에서 사람들은 피사체가 아니라 동료가 되었다.


카메라가 없던 사흘, 그는 이렇게 사람과 자연 속으로 스며들었다.


코코넛 한 입, 오지의 시간과 여유를 맛보는 순간이었다.


그는 집에 돌아와 실제 프로그램 촬영보다 그 사흘을 더 오래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카메라가 없어서 모두 어색했고, 서로 눈치만 보았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자, 사람들의 표정과 움직임이 달라졌다고 했다.


노인은 일을 멈추지 않았고, 아이들은 일부러 장난치지 않았으며, 젊은이들은 포즈를 취하지 않았다. 대신 옆에 앉아 함께 기다려 주었다. 낚싯줄을 잡고, 불가에 모여 젖은 옷을 말리고, 아무 일도 없는 시간을 공유했다. 그제야 사람들의 진심과 삶이 그대로 드러났다고 했다.


"그때 처음으로 사람을 본 것 같았어."


나는 그의 말을 들으며 알 수 있었다. 만약 테이프가 있었다면, 그는 계획한 장면을 찍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흘 덕분에, 그는 사람 속으로 들어갔다. 기다림은 촬영을 망친 시간이 아니라, 그를 열어 놓은 시간이었다.



(아래 세 장의 이미지는 남편의 기억과 그때의 상황을 바탕으로 AI가 재구성한 장면입니다)

상어를 잡는 순간. AI가 당시 남편과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바탕으로 재현한 장면이다.


아이들은 웃음 속에 물을 튀기고 있었다. 아쉽게도 실제 사진은 없지만, AI가 남편이 기억한 장면을 재현했다.


AI가 재현한 장면이다. 코코넛 껍질로 만든 상어 부르는 도구를 사용하는 순간.


프로그램이 방송으로 나왔을 때 화면 속 남편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이들 곁에서 젖은 몸을 털고 웃음을 참지 못하던 사람, 카누를 밀며 균형을 잡고 물살과 함께 흔들리던 사람, 불가에 앉아 젖은 옷을 말리며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사람.


화면 속 장면마다 남편의 그림자가 함께 있었다. 아이들의 손길에 반응하고, 물방울이 튀는 순간에 몸을 피하고, 마을 사람들의 시선과 웃음을 따라 마음으로 걷고 있었다. 화면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그가 매 순간 그곳에 서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풍경보다 사람 가까이, 장면보다 숨결 가까이에, 그는 늘 그 안에 있었다.


그리고 그 사흘이 남긴 것은 단순한 경험이 아니었다. 험하고 힘든 오지의 시간과 사람, 바람과 비, 물길과 숲 속의 소리까지. 그 모든 것이 그의 안으로 스며들어, 서서히 오지를 사랑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는 촬영을 못 하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람을 찍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그는 풍경 안의 사람을 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그가 돌아와 들려준 이야기는 의외였다. 촬영 날짜가 밀리며 다음 스케줄까지 엉켰을 텐데, 그는 그 얘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대신 카메라 없이 보냈던 사흘을 계속 말했다.


무엇을 찍지 못했는지가 아니라, 누구와 무엇을 함께 했는지에 대해. 프로그램 이야기는 짧았고, 그 사흘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프로그램은 결과였고, 그 사흘은 그의 시간이었다.


그 화면 속에는 그는 없었지만, 나는 알았다. 오지에서 사람들과 보내던 그 시간을 통해, 그가 험하고 힘든 오지를 사랑하게 된 이유를.


그리고 그 후로 그는 종종 그 마을 이야기를 꺼냈다. 이상하게도 내가 기억하는 장면과 그의 기억은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나는 빛과 풍경을 먼저 떠올렸고, 그는 늘 사람의 얼굴이나 손짓을 말했다. 같은 시간을 지나왔는데 남아 있는 장면이 달랐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그는 현장을 살았고, 나는 그를 통해 장면을 듣기 시작했다.


솔로몬 제도의 아이들- 오지에서 만난 삶과 사람들의 기억을 닫는 마지막 장면.


그 기억 속, 오지의 하루와 사람들의 숨결이 여전히 살아 있었다. 나는 그의 눈과 마음으로 그곳을 느꼈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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