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묵인된 관행’
“이건 문제 있는 구조예요. 하지만 다들 조용히 넘어갑니다.”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나는 단순한 예외적 사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은행 담당자, 결제 플랫폼 실무자, 심지어 일부 공공기관 관계자까지 똑같은 말을 했다.
“그 구조, 우리도 알아요.”
그리고 그 뒤에 따라붙는 말은 대부분 이랬다.
“하지만 지금 건드리면 더 복잡해져요.”
“시장이 너무 빨리 움직이니까요.”
결국 문제는 몰라서가 아니라, 알아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반복되는 구조였다.
앞선 이야기에서 다룬 QR결제, 해외송금, 무신고 외환거래, 가짜 수출입 구조는
사실 어느 하나도 ‘시스템 바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모든 과정은 시스템 ‘안에서’, 시스템의 빈틈을 정확히 활용해 작동한다.
결제는 자동으로 처리되고, 송금은 정산 스케줄에 맞춰 흘러간다.
그 구조 안에서 플랫폼은 마진을 챙기고, 이용자는 편리함을 누리고,
심지어 은행도 별 문제 없이 수수료 수익을 거둔다.
문제는, 그 누구도 이 과정의 전체 그림을 책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스템은 작동하지만, 책임의 주체는 없다.
현재 결제 생태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진 주체는 플랫폼이다.
고객이 결제한 시각, 환율이 적용된 방식, 외화가 빠져나간 경로,
심지어 어느 나라에 어떤 계좌로 돈이 들어갔는지까지
모두 알고 있는 건 플랫폼뿐이다.
은행은 그 일부만 본다.
PG사는 거래 데이터를 정제된 형태로만 본다.
소비자와 판매자는 그냥 ‘입금이 되었다’는 결과만 확인할 뿐이다.
플랫폼은 전 과정을 통제하지만, 책임 주체로 등장하지 않는다.
왜 은행은 이 구조를 문제 삼지 않을까?
왜 카드사는 가맹점 구조를 고치려 하지 않을까?
왜 국가는 제도를 업데이트하지 않는 걸까?
답은 간단하다.
이 구조에서 모두가 조금씩은 이득을 보기 때문이다.
은행은 외환 송금 수수료를 받는다.
PG사는 정산 구조를 단순화시킬 수 있다.
플랫폼은 환차익과 수수료를 동시에 챙긴다.
국가는 통계적으로만 성장 수치를 보여줄 수 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리스크를 떠안지만, 그게 누구인지 확정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책임은 흩어지고, 이익은 집중된다.
나는 이런 표현을 들은 적 있다.
“이건 그냥 업계 관행이에요.”
그 ‘관행’이라는 말은 언제나 위험하다.
정확히 누가 만든 건지도 모르고,
누가 고치기로 했는지도 없고,
그저 지금까지 해왔으니, 계속 그렇게 할 뿐이다.
‘정산은 이 방식으로 해왔고’,
‘외환은 저 계좌를 통해 처리해왔으며’,
‘신고는 생략해도 큰 문제 없었다’는
묵인된 기억이 시스템이 되는 순간, 법과 제도는 그저 껍데기가 된다.
가장 충격적인 건 이 구조가 매우 효율적이라는 사실이다.
누구도 따지지 않고,
누구도 구조를 바꾸려 하지 않으며,
모두가 자신의 역할만 하고 나면
이 시스템은 빠르고 유연하게 움직인다.
단 하나의 조건만 지켜지면 된다.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것.”
그 조건이 지켜지는 한,
이 구조는 앞으로도 계속된다.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편의라는 구실로,
합법과 불법 사이를 조용히 오가면서.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결제 시스템.
그건 정말 모두가 납득한 구조일까,
아니면 모두가 모른 척한 구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