팥소 없는 찐빵

치즈 없는 라비올리

by 보나
피렌체에서 먹었던 라비올리

희년을 맞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왔다. 이탈리아 곳곳을 누비다 피렌체에 들린 날이었다. 미리 예약해 둔 파올리 1827로 가서 스테이크를 주문하고, 메뉴 추천을 부탁드렸다. 서버분은 '라비올리'라는 메뉴를 추천해 주셨다. 한 입 먹자마자 올라오는 올리브유의 풍미, 고소하고 부드러운 치즈, 트러플의 감칠맛까지! 스테이크보다 더 맛있게 먹고 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면 꼭 만들어보리라 다짐하며 트러플 기념품까지 사 왔지.


잡설은 생략하고, 라비올리를 만들어 보자. 라비올리는 이탈리아의 파스타 중 하나로 속을 치즈와 자투리 고기 등으로 채운다.


내가 먹은 건 치즈만 들어간 라비올리였기 때문에 재료로 만두피, 부라타 치즈, 트러플 페이스트,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를 준비했다.


보통 에멘탈 치즈나 리코타 치즈로 만드는데 집에 부라타 치즈가 많이 있어서 이걸로 만들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부라타 치즈를 넣지 않길 바란다.


다가오는 슬픈 미래를 모른 채 야무지게 쿠키 커터도 준비했다. 참고로 쿠키 커터도 비추천이다. 크기가 너무 작아져 소를 넣기 힘들다.


다시 쓰는 식재료: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트러플 페이스트, 리코타 치즈, 만두피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숟가락으로 치즈를 적당량 떠 만두피 위에 올린다. 만두피 끝에 물을 발라 만두를 빚듯 감싸주면 완성이다. 이걸 반복하면 된다.


만두피를 다 소진했다면 끓는 물에 라비올리를 익혀준다. 익히는 시간은 각자 냄비와 불 사정이 다르므로 냄비 곁을 떠나지 말고 수시로 확인하는 걸 추천한다. 익힌 라비올리를 꺼내서 식힐 땐 절대 겹쳐두면 안 된다. 자기들끼리 들러붙고 난리가 난다.


"어라?" 부라타 치즈가 워낙 부드러워서 그런 건지, 삶고 보니 속에 든 치즈가 몽땅 사라졌다. 믿기 힘든 현실에 솜사탕 씻은 너구리처럼 만두 속을 찾아 헤맸다. 진짜... 없어. 어디에도 치즈는 없었다. 씁쓸한 표정으로 만두를 먹어본다.


외관만 그럴듯했던 라비올리

엎친데 덮친 격으로 만두피에서 밀가루 냄새가 난다. 덜 삶겨서 그런가 싶어 다시 익혔다. 다행히 냄새는 잡혔으나 맛이 다소 심심해졌다.


'팥소 없는 찐빵이 이런 맛일까?'

킥이 없는 어딘가 허전한 맛이었다.


<평가&한 줄 긍정>

"다음번엔 더 꼼꼼하게 빚어야겠어. 그럼 익힐 때 만두 소가 새지 않을 거야."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요리였지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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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