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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아지풀이었다.

by 공명 Mar 18. 2025

도망쳤다.

한국에서 도망치듯 이 나라로 왔다.


나는 언제나 중간이었다. 공부도 외모도 키도, 그리고 우리 집 재정상태까지 어느 곳 하나 튀는 것이 없는 그런 상태.  흔히 말하는 육각형이었다.


육각형 인간은 어디서든, 어딜 가서 든 그 자리에 있던 사람처럼 스며들 수 있었다. 그게 내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강점이 조금씩 약점으로 변해가기 시작한 건 대학을 가면서부터였다. 나의 약점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눈치챈 건 30대가 됐을 때지만 과거를 돌이켜보니 조금씩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는 왜 나의 주장을 말하지 못할까?

왜 남들이 좋다는 것을 따라갈까?'

부터 시작했지만 여전히 고칠 수 없었다.


특히나 나를 지배했던 생각은 방학 때마다 국내든 해외든 유명한 곳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이 지배했던 시기였다. 그렇게 해야 남들이 설정해 놓은 대학생 때 해야 하는 일들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마음 맞는 친구와 내일로 여행도 몇 번씩이나 다녀오고, 유럽여행을 가기 위해 장학금을 받아 가며 공부를 했다.


여행에 가고 싶다는 단 하나의 목표, 아니 대학생 때 꼭 유럽 배낭여행 가야 한다고 하길래.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꼭 가야만 했다.


4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여행을 다녀오면 내 시야는 확장되고 내 삶이 바뀌어 있을 줄만 알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20년째 살고 있는 곳에서 잠깐 다녀왔을 뿐인데 삶이 다이나믹하게 바뀌길 바라는 건 20대 초반이었기에 가능한 생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여행을 다녀왔기에 현재시점에서 여행에 대한 미련이 없는 부분도 있고, 그리고 내가 알지 못하는 부분에서 나도 모르게 변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그리던 변화된 삶은 아니었었다.


여행의 갈증을 풀고 나에게 남은 건 '취업'이었다.

교수님의 소개로 어렵지 않게 취업했지만, 손쉽게 이뤄진 것이 문제였는지 아니면 그 회사와 내가 맞지 않았던 것인지 몇 달은 채우지 못한 채 나왔다.


회사를 나온 후 다시 본가로 들어오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부모님이 출근하고 나면 방에서 나와 티비를 보거나 핸드폰을 보거나 아니면 당시 대학생이던 남자친구와 놀거나. 백수와 다름없었다.


백수도 나름 눈치가 있으니 구직활동을 하며 면접도 간간이 봤지만 나와 연이 닿지 않았다.  


당시에는 나는 대학교까지 졸업도 했는데, 사회인으로 내 역할을 해내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웠다.

그냥 도망치고 싶었다. 지금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거창한 미래도, 외국에 살다 온 이후의 삶도 명확하게 그려내지도 설명하지도 않은 채 부모님께 가고 싶다고 말했다.


몇 달째 집에만 있는 백수 딸이 안타까웠는지 1년쯤 하고 싶은 거 해보는 것도 좋겠다며 지원해 주셨다. 그땐 정말 어렸던 게 보내준다니 원 없이 놀고 원 없이 여행 다닌다는 생각에 들떴다.


또 아무렇지 않게, 남들 다 가니까.


그러니까 나도  어학연수 길에 올랐다. 하고 싶은 일이라는 게 없었는데 말이다.


나는 정말 들판의 강아지풀처럼

철에 맞는 바람이 불면 바람에 맞춰 흔들리기도 했고, 누군가 쉽게 꺾는다면 꺾여버리는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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