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은 현재 서울에 소재한 스타트업에서 개발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정확히는 지방에서 일하다 서울로 상경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하지만 나는 개발 관련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없다. 그냥 직접 부딪치고 몸으로 체득하며 개발을 배웠고, 이방식이 나에게는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에는 코딩 관련 교육이 잘되어있어서 그런지 체계적인 개발을 배운 사람들이 주를 차지하는 것 같다. 내가 개발을 배울 때 개념의 정의에 대해 공부하는 것보다 실제로 써보며 지식을 늘렸다면, 요즘은 전문적인 기술 용어로 정의를 명확히 하고 넘어가는 감이 있는 것 같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을 따라가기 위해 교육 방식도 그렇게 바뀌었으리라 생각하고 나는 순응했다. 그래서 최신 개발 블로그들을 보면 뭔 소리인지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약간씩 보이기 시작했지만, 여기저기 찾아보면 이해가 되었고 오히려 막연하게 알고 있는 개념이 단어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배움의 맛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정녕 나를 당황시키는 것은 전문 용어 그 자체가 아니다. 마치 외계어처럼 들리는, 소위 '판교 사투리'라는 개발자들의 은어다. 기술 용어들은 번역이 애매하기도 하고 맥락 전달의 효율성 측면에서 원문으로 쓸 수 있다. (당장 "backend"에 대응되는 한국어를 찾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일상적인 단어까지 굳이 외국어로 바꿔 사용하는 행태는 씁쓸함을 넘어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프로젝트'를 '프젝'으로 줄이는 것은 그래도 알아볼 수는 있고 '새로운 기능'을 '뉴 피쳐'라고 하는 것까지는 어찌어찌 문맥 따라가다 보면 이해가 간다, '린', '에자일'등은 애초에 소프트웨어 개발 이론에서 나온 단어니깐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오벨롭','매리지체크' 등의 표현은 도대체 어떤 언어 체계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국 표준 문법은 물론이고, 영어 문법에도 맞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알아보니 오벨롭은 Overlook의 다른 표현(?)이고 매리지체크는 상호 체크의 뜻이라고 한다)
물론 이런 표현을 이해하는 사람들끼리 쓴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발 직종이 아니더라도 건설이나 영상 분야도 고유의 은어들이 있고 실제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같은 팀원들끼리만 쓸 것이다. 오히려 적절한 은어 사용이 효율적인 진행을 도와주는 점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일부의 사람들이 이런 은어들을 팀 외부 사람들이나, 비개발자, 신입들에게 까지 쓰는 경우다. 이런 식의 행태가 심해지자, 판교 사투리는 본래의 목적을 잃고 "전문가들의 언어"에서 "전문적으로 보이려 애쓰는 언어"로 점점 변해갔고 각종 예능 매체에서 희화화되기에 이르렀다.
가끔 온라인 커뮤니티에 개발회사의 신입들이 선배 직원의 말을 해석해 달라는 글이 올라오고는 한다. 커뮤니티 글의 특성상 그 내용을 완전히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새로 온 후배에게까지 어렵게 말하는 건 정말 아니라고 본다. 마치 자신의 지식을 과시하듯이 말하는 방식은, 본인에게도, 조직에게도 이롭다고 할 수 없다. 하다 못해 본인의 군복무 시절에도 신병 때는 선임들이 군사 용어나 개념들을 직접 설명해 주었다. 가장 유연하고 개방적이어야 할 개발 직군이, 때로는 경직된 군대 문화보다 못한 소통 방식을 보이는 것이다
결국 판교 사투리, 정확히는 판교 사투리를 과도하게 쓰는 사람들이 비판받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배려의 부족'이다. 은어를 사용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일 수 있지만,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은 무분별한 사용,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제대로 된 설명 없이 '그것도 모르냐'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것, 정보 전달의 효율성이 아닌 자기 과시의 용도로 사용하는 행태 등은 생각해 볼 문제다. 어쩌면 '판교 사투리'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겠다. 결국 사람의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니
"Truth is ever to be found in simplicity, and not in the multiplicity and confusion of things."
"진리는 항상 단순함에서 발견되어야 하며, 다양성과 혼란에서 발견되어서는 안된다."
아이작 뉴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