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녀'
과거에 스쳐 지나가듯 봤던 작품을 최근 들어 다시 보게 된다. 이 작품이 필자에게 흥미로웠던 이유는 제목에 있다. '하녀'. 어떤 의미로 '하녀'라는 제목을 붙였을까를 생각해 본다. 자연스레 신분을 떠올리게 된다. 신분이라는 단어에는 차이라는 명사가 따라붙는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신분과 차이를 다루는 영화냐'라고 질문했을 때 필자는 '그렇다'라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단순히 신분과 차이를 일반적으로 미디어에서 다루는 감정적인 시선이 아닌 객관적이며 신랄한 시선으로 담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의 주인공인 이유도 있겠지만 '은이(전도연)'에게 감정이 자연스레 이입되는 것은 흥미롭다. 영화는 최대한 객관적이며, 인물과 거리를 둔 채 신랄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바라보는데, 하녀로 등장하는 '은이'를 보다 감정적인 시선으로 보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영화를 보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임상수' 감독과 '전도연', '윤여정', '이정재', '서우' 배우 등이 풀어가는 신랄한 이야기, 영화 '하녀'를 살펴본다.
영화 '하녀'에서 '전도연' 배우는 가장 입체적인 캐릭터 '은이'를 그린다. 영화 중반부까지 '은이'는 끌려가는 듯한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 거절 없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제안을 처지에 순응하듯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떤 사건을 계기로 감정의 변화를 맞이하고 그 감정을 통해 성격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은이'의 숨겨져 있던 욕망이 표출되는 순간에 영화 '하녀'도 전환점을 맞이한다. 수동적인 성향에서 능동적인 주체로 변하게 될 때 오는 캐릭터의 감정적인 힘을 표면적으로 적절하게 표현한다. 목소리의 톤(tone), 눈빛과 표정에서 오는 분위기, 화장을 통한 캐릭터의 표면적 표현이 '은이'의 감정과 상황을 관객들에게 설득시키는 힘을 갖는다. 또한, 그 중심에는 단연 '전도연'이 있으며 그녀가 아니면 '은이' 캐릭터는 존재할 수가 없다. '은이'는 얼핏 영화에서 피해자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은이'의 잠재된 욕망을 표현하는 데 있어서 '전도연' 배우의 탁월한 연기가 한몫한다. 내면의 변화를 표면적인 표현으로 그 감정을 설득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화장이나 캐릭터의 분위기를 통해 '은이'가 느끼는 감정을 설명한다.
얼핏 보면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그녀의 연기는 놀랍게도 영화가 흔들리지 않게 중심을 잡아준다. '윤여정' 배우의 연기에는 힘이 있다. 그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는 가히 놀랍다. 그녀는 영화 '하녀'에서 주연이지만 주변 인물의 역할을 맡고 있다. 극중 '은이'를 만나면서 자신의 역할에 대한 회의감과 불만, 자신의 욕망을 점점 알게 되는 모습을 마치 발톱을 숨긴 호랑이와 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이 모습이 한편으로는 단조로운 느낌을 갖기도 하지만, 필자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속이 깊고 힘 있는 연기처럼 느껴졌다. 영화에서 유일하게 인간미가 느껴지는 캐릭터이기도 하다. 양측을 오가며 '병식(윤여정)'의 캐릭터성이 보인다. 선배 하녀로써 '훈'과 '해라'를 대할 때는 직업적인 측면과 동시에 자신의 열등감과 처지 의식이 보이며, '은이'를 대할 때는 같은 입장과 위치로 동병상련의 감정이 엿보인다. 그 모습이 확연하게 차이 나지는 않지만, 그녀가 가진 연기력으로 인해 미묘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그 차이가 '병식'의 내면을 대변해 준다. 단조로운 듯하면서도 깊은 그녀의 힘 있는 연기를 보며 필자는 그녀가 배우로써 가진 힘에 찬사를 보낸다.
영화 '하녀'가 필자에게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신분과 차이를 소재로 한 서사에서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은이'를 단순히 피해자로 분류하는 것이 아닌 그 상황 안에서도 욕망과 감정이 드러나는 모습을 인물과 그 관계로써 표현한다. 캐릭터와 거리를 둔 연출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특히, '은이'와 거리를 두며 전체를 바라보게 되는 시선을 통해 캐릭터를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그 객관화의 끝에 오는 씁쓸한 감정은 관객들에게 찝찝함을 선사한다. 또한, 영화 '하녀'의 캐릭터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명료하게 이성적이다. 얼핏 중립의 시선이 아닌 상류층의 입장에서 영화가 전개되는 느낌도 받게 된다. 차갑고도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그 신랄한 시선이 영화 '하녀'를 특별하게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