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웠던 독일에서의 생활 (진짜 82년생 김지영의 특별한 이야기)
1982년 12월부터 1987년 가을까지 독일 아빠 회사 근처에 있는 프랑크푸르트 인근 도시에서 살게 되었다.
기억에 남는것은 가족끼리 혹은 부모님의 가까운 한인 친구분들과 독일내의 다른도시 혹은 주변 유럽국가에 여행을 자주 다녔던 것, 조용하고 쾌적하였던 주변환경과 평화로웠던 일상 그리고 동네 유치원에 다녔던 기억이다.
이 시기의 생생한 기억들은 거의 없지만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에 엄마의 보호안에서 동생과 평화롭게 놀던 아늑한 나날들로 거의 채워져 있다.
하지만, 나의 첫 사회생활인 유치원에 다니게 되면서 처음으로 사회생활의 어려움을 경험하게 되었다. 유치원의 반에는 나 외의 유색인종으로는 터키출신의 아이가 있었는데 그 아이가 나를 자주 밀치며 유난히 물리적으로 괴롭혔던것이 기억난다.
그리고, 같은 동네에 어머니가 한국인 간호사 그리고, 아버지는 독일인이었던 은혜라는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유치원가기 전까지 단짝 소꿉친구로 서로의 집을 드나들며 자매같이 지냈는데 유치원에 가서는 은혜가 나를 은근히 피했던 것이 기억난다. 이것이 내가 겪은 독일에서의 유색인종으로서 겪는 소외감의 첫 경험이었다. 당시에는 은혜가 유치원에서 나를 왜 피하는지 이유를 몰랐는데 커서는 나의 생김새가 유치원내의 대부분의 백인아이들과 다름이어서가 이유일 것이라고 어림잡아 추측이 되었다. 어린아이에게는 피부색이 다르고 독일어를 버벅거리는 소수인종의 친구라는 것이 다른 친구들 앞에서는 창피하였던것이다.
어린시절 소수의 유색인종인 아이들은 따돌림을 당하기 쉽다. 아이들은 솔직하기 때문에 자연적인 배타적인 행동을 숨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험으로 인해 이타적인 행동은 교육을 통해서 배우고, 노력을 통해서 실천할 수 있다고 알게되었다.
그리고, 아빠가 다시 한국으로 발령을 받아 1987년 독일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