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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들이하면 뭘 자랑하세요?

<그릇:도예가 13인의 삶과 작업실 풍경>

by 무아노

결혼한 친구의 집으로 집들이를 갔다. 가구, 액자 등등 뭐 하나 손길이 묻지 않은 것이 없었다. 깔끔한 건 당연하고 전체적인 분위기가 통일감이 있었다. 아마 아직 아이가 없고 자가 주택이라서인 듯했다.

그리고 저녁을 먹으면서 집주인 친구는 쓰고 있는 그릇을 비롯해 싱크대 찬장에 넣어둔 그릇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릇.jpg 한국 도예가가 만든 그릇들을 많이 보여줬는데 독일 브랜드만 찍어왔다는 점에서 나의 무지가 느껴진다


이천과 여주에 가서 구경하고 사 오고, 아웃렛에 가도 마찬가지. 이런 모양은 설거지하기 안 좋고 저건 겹쳐놓으면 그릇이 오염된다면서 알려주는 친구는 신나 보였다. 그 흥분은 그릇에 관심 없던 나에게 전염되어 관심을 가지게 하는데 충분했다. 그렇게 『그릇:도예가 13인의 삶과 작업실 풍경』을 읽게 됐다.


책은 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하던 작가가 도예가가 걸어온 길과 그들이 만든 그릇에 대한 생각을 모았다. 가업을 잇거나 대학교에서 도예과를 전공하기도 했지만 아예 다른 직업을 가졌었거나 다른 미술을 전공하다 온 경우처럼 도예가로 정착한 길은 참 다양했다.


여러 갈래에서 도예가로 정착해서 그런지 그릇에 담아내는 생각과 표현하는 방법은 천차만별이다. 그릇 하나에도 흙의 성격, 사람의 성격이 묻어났다. 집 주변에서 흙을 퍼와 흙이 가지고 있는 그대로를 살려내기도 하고 다 걸러내고 빚어 백자를 만들거나 유약을 섞어 청자나 흑유를 입히기도 한다.

실용성을 위한 디자인을 하고 입술과 손가락이 닿는 부분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몇 번이나 만지고 다듬기도 한다.


"그릇에 무언가를 담아내는 기쁨도 크지만, 그릇이 가진 조형성, 즉 빈 공간을 품은 얇은 껍데기와도 같은 그것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 p. 191


반대로 흙을 통해 표현의 자유로움을 느끼고 그릇은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이 된다.


도예가의 그릇으로 음식을 먹고 나면 스스로에게 대접받는 느낌이 든다고 했던 친구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건 누군가의 손끝과 시간이 그릇에 스며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릇을 만들며 사람을 생각하고, 사용하면서 다시 만든 사람을 떠올리는 것.


다만 책과 관련해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책의 내용과 분위기에 어울리는 편집이지만 글씨가 작아 가독성이 떨어졌다. 전자책으로 읽으면 확대할 수 있으니 오히려 좋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종이책만 있는 상태였다. 아쉽지만 글이 엄청 많지 않고 그릇들의 사진을 보면서 눈이 피로하기 전에 다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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