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 차가운 새벽을 견디며 살아가는 이민자의 삶을 그린 소설
민수는 아이들의 소리에 선잠을 깼다. 깊은 잠에 들지 못한 머릿속이 웅웅거렸고, 눈꺼풀은 천근만근이었다. 야간 편의점 일을 마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았다.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 계산대 뒤에 서 있다가, 서둘러 신문 배달점으로 가 플라이어를 받아 선희에게 넘겼다. 선희는 집에서 그것들을 비닐봉지에 넣어 포장했고, 민수는 그걸 뒷좌석과 트렁크에 가득 실어놓고는 도시를 돌며 신문을 배달했다. 빠르게 움직이면 공석이 된 배달 지역까지 맡을 수 있었다. 그러면 수입이 조금이라도 늘어났다. 하지만 피로도 함께 쌓였다.
캐나다의 물가는 예상보다 훨씬 더 가혹했다. 워킹 비자로 온 가족이었기에, 영주권도 없는 상황에서 집을 살 엄두조차 낼 수 없었고, 매달 내야 하는 월세는 마치 가라앉지 않는 짐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보증금을 걸고 일정 기간 동안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었지만, 캐나다에는 그런 개념조차 없었다.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된 동네를 선택하는 대가로 월 2천 불을 감당해야 했다.
가난한 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서는 거리 곳곳에서 노숙자들이 구부정한 자세로 앉아 있었고, 한낮에도 술에 취해 길바닥에 누운 이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마트 앞에서는 몇 걸음마다 구걸하는 사람이 손을 내밀었고, 눈을 마주치면 한 걸음 더 다가와 몇 달러라도 줄 수 없냐고 읍소했다. 마치 그게 당연한 풍경인 듯, 지나가는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 없이 걸음을 재촉했다.
뉴스에서는 살인과 강도, 실종 사건이 매일같이 보도되었지만, 사람들은 점점 무뎌졌다. '오늘도 한 명이 사라졌다'는 소식이 더는 충격적이지 않았다. 마치 오래된 벽지처럼, 그 풍경은 너무도 익숙해져 버렸다.
그가 일하는 편의점은 원주민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 있었다. 그들은 정부 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대마초와 술, 담배에 찌들어 살아갔다. 백인 사회에 녹아들지 못한 채,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삶을 이어가는 이들이었다. 민수는 캐나다에 오기 전 인터넷에서 찾아본 정보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마주하고 있었다.
편의점 손님인 더글라스. 그는 반은 백인, 반은 원주민인 ‘미티’였다. 처음부터 서글서글한 웃음으로 말을 걸어왔다. 편의점 주인 영철은 손님들과 잡담을 하지 말고 거리를 두라고 했지만, 더글라스의 기운 찬 태도를 무시하기란 쉽지 않았다.
더글라스는 종종 찾아와 담배와 맥주를 샀다. 손님이 없을 때면 다시 와서 민수에게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는 정부 보조금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었고, 공부를 원하면 지원도 받을 수 있지만 ‘사회적 지위를 쌓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경쟁하지 않고, 세금도 많이 내지 않으며, 좋아하는 낚시와 하이킹을 즐기고, 필요하면 무료 급식소에서 끼니를 해결하며 사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캐나다 원주민들이 어떻게 사회에서 밀려났는지를 설명했다. 자신들의 땅에서 내쫓기고, 정부가 제공한 척박한 땅으로 강제 이주당했던 역사. 그리고 경찰도 신경 쓰지 않는 원주민 여성들의 실종과 살해 사건. 민수는 말없이 듣기만 했다. 일부는 그의 영어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묵묵히 들었다. 어쩌면, 손님들이 몰려 나간 뒤 더글라스가 다시 찾아와 이야기를 계속해주길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민수는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힘든 것은 잠이었다. 어릴 때부터 극도의 긴장 속에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중고등학교 시험 기간마다 밤을 새워 공부했고, 늘 전교 1등을 지켰다. 의대에 갈 성적이 충분했지만, 부모님은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래서 장학금이 나오는 일반 대학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부모들은 자녀를 위해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았지만, 민수는 스스로 버텨야 했다. 부모님은 맞벌이로 바빴고, 그는 늘 혼자였다. 혹시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지는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불안이 늘 그를 짓눌렀다.
대기업에 입사해 높은 성과를 내며 연봉을 올렸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들이 태어난 후 불안은 더 깊어졌다. 첫째 지우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담임 선생님은 지우가 수업 중 산만하고 친구들과의 상호작용이 부족하다는 점을 걱정하며 상담을 요청했다. 선생님은 "자폐 성향이 있는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전했다. 예상치 못한 말에 민수는 머릿속이 하얘졌다.
결국 병원을 찾아 정밀 검사를 받았고, 검사 결과 '유사성 자폐(Autism Spectrum Disorder, ASD) 경향'이 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완전한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는 아니었지만, 사회적 의사소통과 감각 반응에서 어려움이 있는 경향이 관찰된다는 설명이었다.
지우는 너무 영리했지만, 수업 중 주의가 쉽게 흐트러졌고, 특정 주제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 교실에서는 규칙을 따르기 어려워했고, 친구들과 놀이에 잘 어울리지 못했다. 아침마다 학교 가기 싫다며 울었고, 선희는 그런 지우를 달래느라 지쳐갔다. 민수는 모든 것이 선희에게 부담이 될 걸 알면서도, 회사 일에 치여 모른 척하고 출근했다.
둘째 유나는 더 큰 불안을 가져왔다. 임신 중독으로 병원에 입원한 아내는 지우를 외가에 맡겨야 했다. 지우는 매일 전화를 걸어 언제 집에 갈 수 있느냐고 울었다. 유나는 태어나자마자 숨조차 쉬기 어려워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기적 같았던 아이였다. 돌이 지나고도 걷지 못했지만, 워낙 작고 허약한 아이였기에 민수와 선희는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 믿고 싶었다. 그러나 18개월이 지나도록 유나는 걷지 못했고, 결국 정밀 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의사는 유나에게 뇌성마비라는 진단을 내렸다.
이민은 쉽지 않았다. 학생 비자로 오는 방법도 고려했지만, 학비와 생활비 부담이 컸고 졸업 후 취업이 쉽지 않았다. 의사나 간호사 같은 메디컬 직종은 이민이 수월했지만, 민수에게 해당되지 않았다. 프랜차이즈 음식점 매니저나 농장 일꾼으로 오는 방법도 검토했지만, 그의 경력과 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민 컨설턴트를 통해 한국인이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매니저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민수는 이민 컨설턴트를 통해 LMIA(Labour Market Impact Assessment, 노동 시장 영향 평가)라는 개념을 알게 되었다. 이는 캐나다 고용주가 외국인을 고용하기 위해 정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제도로, 현지에서 적합한 인력을 찾기 어렵다는 것을 입증한 후 외국인을 채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절차였다. LMIA를 통해 일자리를 얻으면, 워킹 비자로 캐나다에 올 수 있고, 합법적으로 월급을 받으며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동시에 PR(영주권, Permanent Resident) 신청 자격을 얻을 수도 있었다.
학생 비자로 오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이었지만, 졸업 후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불안이 있었다. 반면, LMIA 기반의 워킹 비자는 일을 하면서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어 가족이 추방될 걱정 없이 안정적인 삶을 계획할 수 있었다. 5년 후에는 시민권을 취득할 수도 있으며, 캐나다에 정착한 후 사업을 시작하거나 더 나은 직장을 구할 수 있는 기회도 열릴 것이었다.
그러나 민수는 이 편의점이 캐나다 외곽지에 있으며, 외부인이 오가는 곳이자 원주민들이 밀집한 지역이라는 사실, 강도가 자주 출몰하고 살인 사건이 잦아 경찰이 늘 드나드는 곳이라는 점, 직원들이 갑자기 일을 그만두고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 그리고 자신이 야간 근무를 전담하게 될 것이라는 점을 미처 듣지 못했다.
그 모든 불안은 끝없는 불면의 밤으로 스며들어, 민수의 머리를 무겁게 짓누르고 심장을 조였다. 그는 마치 보이지 않는 적과 끝없는 전쟁을 벌이는 전사 같았다. 그러나 싸울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기를 반복했지만, 그는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가장으로서 흔들릴 수 없었다. 아내는 말없이 그의 결정을 따라주었고, 아이들은 그를 유일한 버팀목처럼 의지하고 있었다. 민수는 버텨야 했다. 그러나 수면 부족은 서서히 그의 정신을 마모시켰고, 그는 스스로가 얼마나 소진되고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채 무너져 가고 있었다.
새벽 공기는 무겁고 차가웠다. 눈발이 몰아치는 속에서 민수는 핸들을 단단히 쥐었다. 그의 눈꺼풀은 납덩이처럼 무겁고, 의식은 희미해졌다. 한동안 그의 밤은 불면으로 얼룩졌고, 마침내 밀려오는 잠이 그를 삼키려 했다. 그러나 이곳에서 잠들어서는 안 된다는 경고음이 머릿속에서 울렸다. 하지만 육체는 이제야 비로소 안식을 허락하는 듯했다.
그가 편의점에서 나설 때, 핸드폰 배터리가 거의 방전 상태였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리처드 지점장의 전화가 걸려왔을 때, 눈을 붙이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지만 그는 본능적으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북쪽 지역이었지만, 신문을 가득 실은 채 GPS를 찍고 출발했다.
그는 고요한 새벽의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그러나 하얗게 쌓인 눈은 무서운 함정이었다. 새벽 일찍 도로를 정리하는 제설차가 아직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민수는 이 길이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지 못했다. 바람이 몰아치며 세상을 새하얀 장막으로 덮어버렸고, 도로와 평지의 경계는 흐려졌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라면 단순한 운전일 뿐이었겠지만, 지금은 차원이 다른 싸움이었다.
그가 들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편의점에서 만난 한 씨는 캐나다에서 트럭을 몰며 거대한 대륙을 가로지른다고 했다. 하늘 아래 펼쳐진 끝없는 평야, 그 광활한 자유에 매일이 가슴 벅차다고 말하던 모습이 생생했다. 그러나 오늘 같은 날이면? 트럭커들이 목숨을 걸고 달려야 하는 곳이 이곳이었다. 대형 트럭들이 밤새도록 도로를 질주했고, 마감을 맞추기 위해 밤샘 운전하는 이들은 언제든 사고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민수는 그들에게 섞여 있었다.
눈보라가 더욱 거세졌다. 눈길 위에서 바퀴가 미끄러졌고, 그는 어느 순간 차가 도랑으로 미끄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순간적으로 몸이 튕겨졌고, 심장이 쿵 하고 요동쳤다. 차체가 비스듬히 기울며 철커덕 하는 소리와 함께 충격이 전해졌다. 본능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이미 늦었다. 차는 깊은 눈 속으로 반쯤 파묻혔다.
차에서 나가야 했다. 그는 문을 밀어보았지만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풍과 쌓인 눈이 차문을 막아버린 듯했다. 앞유리마저 눈으로 완전히 덮여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순간 섬뜩한 공포에 휩싸였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화면에는 붉은색으로 빛나는 배터리 1%가 보였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마지막 희망이었다.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는 급히 리처드의 번호를 눌렀다.
"제발... 받아라."
신호음이 울렸다. 하나... 둘... 셋... 그는 떨리는 목소리으로 음성 메시지를 남기려 했다.
"리처드... 나 지금... 눈 속에 갇혔어. 차가 도랑으로 빠졌고..."
그러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핸드폰 화면이 깜빡이며 전원이 완전히 꺼졌다. 배터리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당황하며 다시 전원을 눌러보았지만, 차가운 공기 속에서 핸드폰은 완전히 방전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민수는 핸드폰을 내려다보며 절망감을 느꼈다. 마지막 연결고리마저 사라진 것이다.
그는 차를 빠져나가려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엑셀을 밟았다. 바퀴가 헛돌며 눈을 튕겨냈다. 하지만 차는 오히려 더 깊숙이 파묻혀 갔다. 그는 다시 액셀을 밟고 또 밟았다. 그러나 차체가 더욱 기울어지며 깊은 눈 속으로 가라앉았다. 바퀴가 헛돌 때마다 눈이 차 밑으로 쓸려 들어가며, 그는 점점 더 깊이 갇혀버렸다.
주유 표시를 보았다. 그리고, 아차! 기름이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히터를 켜려 했지만, 공회전만 요란하게 울릴 뿐이었다. 기름이 거의 소진되면서 엔진은 점점 힘을 잃어갔다. 히터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바깥 기온은 영하 30도. 차 내부는 점점 냉기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창문에는 서리가 얼어붙었고, 차 안의 공기는 빠르게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민수는 두 손을 비비고 숨을 내뱉었지만, 한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온몸이 점점 굳어가고 있었다. 손가락 끝이 저려왔고, 입술은 감각을 잃어갔다. 머릿속이 멍해지면서, 몸이 점점 내 몸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이를 악물고 팔과 다리를 움직이려 했지만, 근육이 경직되며 조차도 힘이 빠져갔다. 공포와 추위가 동시에 엄습했다.
밖은 끝없는 침묵과 혹한뿐이었다. 건물도, 불빛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눈은 멈추지 않았다. 한없이 내리고 있었다. 차 안은 점점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피곤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떠올랐다.
'살아남아야 한다.'
민수는 신문지를 꺼내 몸을 감싸고, 점퍼의 모자를 깊숙이 눌러썼다. 목장갑 위에 덧장갑을 끼고 몸을 최대한 웅크렸다. 이제 남은 것은 단 하나, 체온을 유지하는 것뿐이었다. 1시간, 아니 2시간만 버티면 반드시 구조될 거라고 자신을 다독였다.
하지만 차가운 공기가 콧속을 찌르며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늘처럼 날카로운 한기가 폐를 찔렀다. 저체온증이 서서히 그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그의 의식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 선희의 얼굴이 떠올랐다. 텅 빈 눈동자로 그를 바라보던 그녀. 소리 없이 이 삶의 고단함을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민수는 끝내 어떤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리고 또 다른 기억이 스쳤다. 첫째 지우가 태어났던 날, 노란 단풍이 가득했던 가을 하늘. 그날 그는 처음으로 세상이 이렇게도 찬란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작은 아이를 품에 안으며 목이 메고, 가슴이 터질 듯 벅찼던 순간. ‘내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민수는 이 악물었다. ‘가야 한다. 돌아가야 한다.’
아이들을 이 낯선 땅에 남겨두고 죽을 수는 없었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으로 버텼다.
‘조금만 더… 제발…’
그러나 차 안은 점점 얼어붙어 갔다.
눈보라는 여전히 멈출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