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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나의 죽음 갈망 (1)_

다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던 것

by 현채움




/ 7년여 전_


상처로 얼룩진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려다 오히려 강하게 남은 연필 자국처럼

남아있는 듯하다


현재의 나는 그 기억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빛날 수 있었다고- 추억한다


지금보다 어렸던 그때의 기억들은

온통 마음의 상처로 가득하다


내가 중심이 아니었던 시절,

나의 중심에 오로지 남 뿐이었던,

나의 이야기_


_


수업 시간이 되고 나면 홀로 교실을 빠져나와

1층에 있는 상담실로 향했다


슬픈 표정이었는지,

착잡한 표정이었는지,

아니면 표정이 없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계단이 너무 하얗고 또 너무 차가웠다는 점과

수업소리가 둥둥 울리는 복도를 몇 번을 지나치고

끝에 있는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그 감정이 참 외롭고 부끄러웠다는 점만이

선명할 뿐이었다


남들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무언가 모를 죄책감이 생겨

나를 그토록 가만히 짓눌렀다


_


트라우마는 더 빨리 지워버리려는 듯

그때의 감정만 잿가루처럼 남아 마음속에서

회상될 뿐이다


다만 그때-라고 단정 짓기에

이는 몇 년에 걸쳐있는 일이라는 게 문제였다


난 어린 시절의 기억이 남들보다

많이 뚜렷하고, 또 많이 흐리다

아무래도 눈물에 번진 자국에 대고

자꾸 지우개질을 해서 그런 듯 했다


_


상담 내용은 어느 때나 똑같이

나의 어려운 교우 관계나

내면 속에 파묻혀 있던 큼지막한,

가족에게서 받은 상처에 관한 것이었다


나의 입에서 나온 말들 때문에

우리 엄마아빠는

나와 같은 문을 열고 들어와야 했고

상담 선생님에게 어떤 핀잔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필요한 과정이었다 싶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뿐인 딸의 상처에 대해

다른 사람 입에서 들어야 했던,

그 어린 부모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 당신들의 슬픔을 감히 가늠할 수 없었다


_


상담실에 처음 불려 간 게,

언제였을까 되짚어 보면

이것 또한 선명히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학교에서 한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에서

하게 된 설문지 같은 것에서

초고도 위험 단계를 받으며

후에 선생님께 불려 갔던 기억이 있다


머릿속에 삶과 희망과 꿈 대신

죽음과 슬픔과 원망 만이 가득했던 나에게

‘조금 덜 솔직해지기’는 많이 어려운 거였다


_


쉬는 시간이면 그렇게 창문을

하염없이 쳐다봤다


떨어지고 싶어서,

그 창문을 뛰어넘어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공허하게도 앉아 있었다


집에 돌아오면

가방을 내려놓지도 못하고

엉엉 펑펑 그렇게 울어 댔지만,


줄 따위가 잡히면

괜히 목에 감아 힘을 줘

숨을 한동안 안 쉬어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내가 기억하는 나는

온몸으로 외쳐대고 또 소리치고 있었다

나는 살고 싶다고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분명 살고 싶어 했다

다만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던 것이었다

그때의 삶이 괴로웠을 뿐,


나는 내가 꿈꾸는 내 삶의 모양이 정해져 있었다

그 모양처럼 되지 않으니 그저 울었다

어린아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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