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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pisode 나의 죽음 갈망 (2)_

어차피 인생은 독고다이.

by 현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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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함께에서 시작되었다가

홀로 눈을 뜨고 다시 함께 걸었다가,

언젠가부터 혼자 나아가게 된다


그 나아가는 시기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영유아 때부터

사회사람과 직접적으로 맞닿으며

홀로 교류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부모가 일일이 관여할 수 없는

어떠한 관계가 생기면서부터

나만의 사회가 확립되고, 주관이 생기고,

누군가를 위해 나를 내려두기도,

어떤 것을 위해 날 치켜세우기도 하는.

그게 인생이라는 파도의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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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는 말했다

인생은 어차피 독고다이.

모든 문제는 혼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혜민스님은 말했다

등 돌린 만큼 외로운 게 사람이니

등 돌릴 힘까지 내어 사람에게 걸어가자고


말의 방향이 다르다고 느낄 수 있지만

이치가 같다


인생은 행복해야 한다

나 스스로 내 인생이 자랑스럽지 않더라도

소소함 뿐인 인생일지라도

그 속에서 홀로 서있는 법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걸어가야 한다

홀로 서있는 사람 곁으로

그래서 결국 함께가 되어 행복할 수 있어야 한다


다만 우선순위가 분명할 뿐이다

예외가 있을 수 있겠지만

홀로이기 이전에 함께란 감히 존재할 수 없다

홀로 서있지 못하는 나는 정말 당연하게도

다른 것에 기대어 서있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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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의 내 기억이 유독 얼룩진 이유는

홀로이지 못한 채 함께이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어느 누구에게 소속되고 얽매이고 싶어 했던

그 욕심의 대가는 사실 어마했다


내면의 중심 우선순위가 타인이라는 건,

그 속에 내가 없다는 건

생각보다 더 많이 내 시야를 멀게 하고

생각보다 더 많이 나를 방치하게 하고

생각보다 더 많이 나를 울게 하는 일이었다


내 감정을 숨길수록 마음은 곪아가고

나만의 작은 세상에 갇혀 결국엔 우울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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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된다는 것.

무섭거나 두려운 일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오히려 평화롭고 온전히 나를 들여다볼 수 있음에

나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에

더 많은 행복을 느낀다


홀로 됨으로써

비로소 주변이 시야에 담기는 경우가 정말 많다

심지어 계절의 변화까지도,

내면에 다른 것들로 가득 차면

그마저도 눈치채기가 쉽지가 않다


그저 좀 춥다 싶음 한 장 더 걸치고

더워서 땀이 나면 짜증이 나는,

일차원적인 사고에 갇히게 될 수도 있다


실제로 나는 10년여간의

계절 변화에 대한 기억이 흐릿하다

내가 겨울엔 어떤 옷을 덧대어 입는 걸 좋아하는지,

이런 날씨엔 어떤 음악을 듣는 걸 좋아하는지,

실제로 내 인생에 정말

4계절이 존재했는지조차 기억이 없다


그나마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겨울,

그 마저도 누군가가 보기에

땀으로 지워진 화장을 한 내 얼굴이

꼴 보기 싫을 것 같아서-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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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온전한 내 삶이 있다면

누군가의 삶과 자연히 이어질 수 있음을,


특히 어린아이였던 나는

나와 같은 세상 속에 갇힌 수많은 아이들을 안다

사회적인 이름표를 달고 있는 어른 또한 그렇다

세상은 넓지만 내가 내 세상을 정의하면

그게 곧 내 전부가 됨을 이해한다


하지만 사실 내 전부인 것은 ‘나’라는 것을

내 세상은 내가 걸어 나가는 곳까지라는 것을

언젠가 내가 알고 그대가 알고 모두가 아는

그런 세상이 되기를 소망한다


더 이상 누군가가

누군가의 산 위를 구성하고 있는

작은 나무가 되지 않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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