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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극, 지저분한 식사

2012. 1. 10.

by 조각 모음

숟가락을 잃어버렸다. 열심히 해머를 휘두르다가 어딘가에 떨어뜨린 것 같다.

덕분에 저녁은, 그냥 비닐에 밥과 오삼불고기를 넣어 주무른 뒤 크린랩 뒤를 뚫어서 먹어야 했다.

거북알(아이스크림이름)을 먹는 것처럼 말이다.

위장크림을 발라 지저분해진 얼굴과 지저분한 식사.

정말 거지꼴이 따로 없었다.




글쓰기의 위력을 새삼 느낀다.


이름 모를 언덕을 오르던 날씨가 생각난다.

함께 지저분하게 식사를 하던 동기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이름은 결코 생각이 나질 않는다.

먹기 전 비위가 조금 상했던 그 기분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내가 리드를 해야 했기에 이게 "뭐 어때서?"라며 쿨한척하며 크게 한입을 먹던 것도 생각난다. 의외로 맛있었고, 두 번째 입부터 마지막까지 맛있었단 기억밖에 남지 않는다.

그중 누군가가 "이거 완전 해골물이네"라고 떠들던 것도 기억난다. 다른 친구가 "원효는 불이라도 끄고 해골물 마셨지"라고 농담 삼아 투덜거리던 것도.

20대 초반의 거지꼴의 훈련병이 모여서 헛소리를 반찬삼아 밥을 먹었다.


추위 속에서, 밥그릇도 없이, 밥을 빨아먹으면서도 웃는 모습을 보고 기특했던 건지, 안타까웠던 건지, 무서운 소대장님 들고 그냥 웃으며 지나가셨다. 쓰면 쓸수록 이날의 기억들이, 안경에 김이 서려 불편해했던 기분까지 생각나려고 한다. 그래도 여기까지만 생각을 하자.


참 글쓰기는 재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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