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게 된 계기.
우리가 무등산 산골, 낡고 오래 된 흙집 한옥에 살 때였다. 2012년도의 어느 봄날이었다. 한참 점심을 먹을 때였는데 삼사십대로 보이는 어느 키 큰 남자분이 열려 있던 대문으로 들어오셨다. 손에는 플라스틱 반찬통 하나를 들고서. 그리고선 죄송하지만 밥과 반찬을 좀 얻을 수 없느냐고 했다. 마침 식사가 끝나갈 무렵이어서 우리부부는 마당에 놓인 탁자 위의 밥상을 물리치고 새로 차려 어서 드시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야기를 나눠보니 자전거 하나로 무전여행 한 지 1년이 되어간다 했다. 처음엔 수중에 돈이 얼마간 있어서 그런대로 다녔다 한다. 그러다 돈이 바닥 나고 쫄쫄 굶고 다니다보니 체면이고 뭐고 자연스레 버려지더라 했다. 서울에서 출발하여 여기까지 왔노라고. 그러면서 죄송하지만 세수비누 한장 덤으로 얻을 수 없냐고 했다. 우린 밥과 반찬을 통에 담아드리고 비누도 한개 드렸다.
그분이 가시고 난 뒤, 남편은 호기심 많은 소년의 생기에 넘치는 반짝이는 눈으로 내게 말했다.
"우리도 무전여행 해보는 게 어때?"
사실, 남편은 어떠냐고 물어봤지만 이미 마음 속으론 실행 100% 의사가 가득 차 있었다(함께 살아온 오랜 경험으로 안다). 그때부터 남편의 마음 속엔 무전여행에 대한 실행 계획 만이 오롯이 차지하게 되었다.
그런데다 그 당시 곡성 관음사 주지 스님을 찾아 뵌 날 공교롭게도 우리나라 삼뽀냐 1인자이신 도곡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의 연주하는 모습을 눈 하나 깜빡 않고 지켜보던 남편, 연주가 끝나자 선생님께 여쭈었다. 실례지만 삼뽀냐 한번 보여 주실 수 없느냐고~
그러면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것 저것 궁금한 질문을 퍼부었다.
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산골 여기저기를 헤매며 신우대 굵은 것을 베어오기 시작했다. 여러날이 지난 어느날 남편은 드디어 두줄 짜리 삼뽀냐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 (삼뽀냐는 남미 페루 악기로 두줄로 되어 있고 펜플룻은 외줄로 한줄짜리를 말한다. 악기 재료는 페루 강가에 자라는 갈대다. 우리나라 갈대와는 사뭇 달라서 굵고 길다)
그로부터 불과 며칠 사이 소리를 익힌 남편은 드디어 나를 데리고 무전여행 길에 나서게 되었다. (남편은 소리를 들으면 장조인지 단조인지, 계이름 까지 알아내는 절대 음감 소유자다)
나서면서 하던 말, "배고프면 저절로 연주 실력이 붙게 될거야~" 였다. 그렇게 해서 나선 무전여행이었다.
사실, 무전여행이란 자기 돈이 없이 하는 여행이지 돈이 필요치 않은 여행은 절대 아니다.
(아래 링크는 오래 전에 했던 것입니다. 삼뽀냐 연주하는 사람이 산적입니다. 영상의 자막은 현재 글과 무관 합니다. 음악만 들어 주시면 됩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6XLNf96atmE
그 필요한 돈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그래서 생각한 게 버스킹이었다. 더욱이 하루하루 의.식.주를 손수 해결해야 한다. 배낭은 필수다. 장거리 걸을 때를 대비해 가벼워야 한다. 악기도 사람을 쉬 불러모을 수 있되
소리가 멀리 들려야 한다. 휴대하기도 간편해야 한다. 그 조건에 딱 맞는 게 삼뽀냐였다.
호기심 많은 소년의 반짝이는 눈빛이 되던 남편의 심중이 그러했다.
2012년도부터 매년 한차례씩, 길게는 한달, 짧게는 열흘 정도로 7년을 했었다. 주로 여름에 했다. 회상해 보니 무전여행은 우리 삶의 여정 중에서 이수해야 할 필수 과목이 아니었던가 싶다. 삼사십대로 보이던 남자분이 마중물이 되고, 삼뽀냐가 방편이 된 시절인연이 맞아떨어진 여행이자 이수 과목.
모르긴 해도 우리나라에서 우리 부부만큼 적나라하게 무전여행을 한 사람은 없을 듯 하다.
세월은 흘러 흘러 자꾸만 과거를 밀치며 앞으로 나아간다.
어느새 2025년. 흘러가는 세월만큼 생활 환경도 격변했다. 그만큼 무전여행도 어려워지고 있다.
아니 이미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욱 우리의 여행은 전설이 되어 가고 있다.
혹시 아는가? '전설 따라 삼천리'의 이야기가 재등장한다면 그 중 하나로
우리의 이야기가 거론될런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