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치의가 없는 한국의 의료 시스템

by 남경훈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이 얼마나 편리한지를 말이다. 예약을 할 필요도 없고 걸어 들어가서 언제든지 내가 원하는 의사를 만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의사들의 거의 대부분은 의과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의를 거친 전문의이다. 우리나라의 수련 병원들의 의료 기술과 수준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의 전문의들의 실력은 세계에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다.


하지만 모든 의사들이 전문의기에 생기는 문제들도 존재한다. 외국에서 우리가 흔히 듣는 '주치의'라는 개념이 없다는 것이다. 주치의란 나의 건강 전반을 오래 두고 살피며, 질병이 생겼을 때 함께 상의할 수 있는 의사다. 생활 습관과 만성 질환, 암 예방 같은 문제뿐 아니라 때로는 마음의 건강까지 살피는 — 나를 전인적으로 아는 의사, 그것이 주치의다.


내가 경험한 미국의 내과 전공의 수련 시스템은 바로 이런 주치의를 길러내기 위해 설계되어 있다. 내과 전공의 3년의 과정 중 약 3분의 1은 외래 진료를 배우는 데 쓰인다. 진료 시간은 초진이 30분, 재진이 15분 정도다. 그 안에서 전공의는 환자의 증상뿐 아니라 그 사람의 일상, 식습관, 직업, 가족 관계 같은 삶의 맥락을 듣는다. 진단과 치료 계획을 세운 뒤에는 지도 교수와 토의를 통해 방향이 올바른지 점검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환자의 병이 아닌 ‘삶’을 보는 의사로 자라난다.


물론 미국의 모든 내과 전공의가 일차의료 현장에서 주치의로 일하는 것은 아니다. 이후 세부 전공을 택해 소화기내과나 호흡기내과처럼 전문 분야로 진출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든 내과 전공의는 “사람을 오래 따라가며 돌본다”는 철학 속에서 수련을 시작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떨까. 동네 내과 의원의 의사를 ‘나의 주치의’라고 부를 수 있을까. 환자들은 그 의사에게 건강에 대한 이런저런 고민을 터놓고 상의할 수 있을까.


현실은 조금 다르다. 한국의 내과의사는 하루 수십 명의 환자를 본다. 환자 한 명에게 쓸 수 있는 시간은 평균 3분 남짓이다. 환자는 불편한 증상만 빠르게 해결하고, 다음번에는 다른 병원을 찾아간다. 진료실에서 쌓일 만한 관계의 시간들이 구조적으로 허락되지 않는다. ‘의사 쇼핑’이라 불리는 문화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익숙해져 버렸다.


이런 환경에서는 환자-주치의 관계가 자라나기 어렵다. 의사도 환자도 서로의 이름을 기억하기 힘들고, 건강은 조각난 기록 속에 흩어진다. 환자가 진료실 문을 열 때마다, 의사는 또다시 처음부터 물을 수밖에 없다. “오늘은 어디가 불편해서 오셨어요?”


중환자실 의사가 왜 주치의 제도에 대해서 글을 쓰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중환자실 의사로서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점 중 하나는, 환자의 치료와 관련된 의사결정을 할 때 환자의 의학적 상태뿐 아니라 그 사람과 가족의 '삶'도 종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각은 주치의 문화와 맞닿아 있다.


한국의 의료 시스템에서 주치의 문화가 필요 없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든다. 지금까지 한국은 효율적인 의료 시스템으로 국민들의 건강을 지키는데 크게 문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주치의로서 외래를 봤던 경험이 좋았다. 그래서 ‘주치의’ 문화가 마음에 든다.


한국에서는 비록 제도적으로 시행되거나 정립되지 않더라도, 의사들이 '주치의의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마음은 환자의 일상에 관심을 가지고, 그의 삶을 존중하려는 태도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환자 한 명 한 명을 기억하려 애쓰고, 관계를 쌓아가며, 그리고 그 사람의 ‘삶’을 묻는 일. 그것이 지금의 한국 의료 현실 속에서 가능한, 작지만 가장 현실적인 ‘주치의 문화’의 시작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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