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줄은 비위관이라고도 불리고, 레빈(Levin) 튜브의 약자로 L-tube라 부른다. 아마 병원에서 가장 흔히 하는 시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림 1) 보통은 의식이 없거나 혼미해서 입으로 음식을 삼키지 못하거나, 뇌졸중 이후 삼킴 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 사용한다. 콧구멍으로 삽입을 하고 튜브의 끝은 위(胃에 걸쳐지게 된다. '유동식'이라고 하는 영양물질(두유같이 생겼다)을 필요한 열량을 계산해서 콧줄을 통해서 하루에 몇번씩 위로 넣어주게 된다.
콧줄을 삽입하는 과정이 불편하기는 하다. 튜브가 목구멍을 넘어갈 때 구역감이 심해서 삽입 과정을 힘들어하는 환자들이 많다. 그래도 그 과정을 넘기고 나면 큰 불편감이 없고 환자에게는 필요한 영양 공급을 할 수 있으니 병원에서는 반드시 필요한 시술이다. 하지만 너무나 쉽고 익숙한 시술이기에, 오히려 필요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콧줄을 삽입하거나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모습도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
한국은 ‘밥’을 유난히 중요하게 여기는 나라다. “밥 먹었어?”가 인사가 될 정도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환자가 부모라면 그들에게 밥을 먹이지 않는 것은 불효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중환자실에 입실한 환자에게 초기 1-2일정도 안정이 필요한 시기에 식이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환자가 평소 어느정도의 삼킴 능력이 있는지, 소화 기능은 좋은지 판단이 서기 전까지 말이다. 흡인성 폐렴의 위험을 줄이고 빠른 몸의 회복을 돕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이런경우 면회를 온 보호자들 중 간혹 먹는 것에 집착하는 경우들이 있다. "이렇게 먹지를 못해서 어떻게 기운을 차리겠냐"라면서 말이다. 혹은 "좋은 영양제 많이 주세요"라는 부탁을 받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연명의료결정법에는 중단 가능한 치료 항목에 '영양공급'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환자가 먹지 못하거나 식사를 거부하더라도, 의료진은 원칙적으로 그들에게 콧줄을 삽입해 유동식을 공급해야 한다. 고령의 환자들은 섬망이 자주 생기고, 정신이 없는 가운데 콧줄이 있는 것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스스로 빼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난다. 그럴 때마다 의료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콧줄을 다시 삽입해야 한다. 협조가 어려운 환자일수록 그 과정은 고통스럽고, 보는 사람의 마음도 불편하다.
생의 말기나 임종기에 접어든 환자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 상황에서도, 환자의 동의 없이 억지로 콧줄을 넣고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에서 이런 장면이 있다. 병원에 입원한 주인공이 식사를 거부하자 의료진이 강제로 콧줄을 삽입해 영양을 주입하는 장면. 그때의 콧줄은 한 사람의 자율성과 존엄성을 침해하는 상징으로 그려진다.
콧줄과 식이를 거부하는 환자에게 영양을 공급하는 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단정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한국 의료 시스템에서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더라도 환자가 무엇을 바라는지,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를 최대한 들으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가벼운 시술이나 치료라 해도, 환자의 뜻을 거스르는 의료는 때로 폭력이 될 수 있다. 의료가 환자에게 진정한 도움을 주기 위한 행위라면, 그 환자의 생각과 철학, 가치관, 그리고 그로부터 나온 결정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진짜 의료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