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by 남경훈

우리는 살아가면서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하지만 ‘삶의 질’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이야기하면서도, ‘죽음의 질’에 대해서는 좀처럼 생각하지 않는다. 모두가 언젠가 반드시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도, 그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두려워한다.


나는 중환자실에서 일하며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다.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면서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해본다.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이 세상을 떠나간다.


이제 나도 생의 반환점을 돌아 중년에 이르렀다. 나의 부모님 세대가 하나둘 세상을 떠나기 시작하는 나이가 되면서, 환자와 가족의 마음이 더욱 깊이 이해된다.


예전에는 임종기에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유보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가족들에게 결정을 서두르도록 종용하곤 했다. 냉정하게 말하면, 의료진 입장에서는 결정이 빨리 나야 마음이 조금 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충분한 시간을 드리려 한다. 나의 부모님 역시 언젠가 그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현실이 선명해지자, 그 결정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부모님은 건강히 살아 계시지만, 이제 일흔을 넘기셨다. 내가 본 많은 환자들이 70대, 80대에 중환자실에서 삶을 마무리했다. 그래서 종종 생각한다. 만약 나의 가족이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나는 과연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다고 말할 수 있을까? 솔직히 모르겠다. 환자와 가족에게는 담담히 설명하며 결정을 부탁하지만, 막상 나 자신이 그 자리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 자신이 없다.


언젠가부터 부모님을 만나면 자연스럽게 임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 해보고 싶은 일이나 가보고 싶은 곳은 있는지 묻는다. 이제는 그런 대화가 더 이상 금기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필요한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환자실에서 가장 안타까운 죽음은 삶의 정리를 하지 못한 채 맞이하는 죽음이다.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보지 못한 채 떠나는 죽음.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생각한다. 모든 사람이 조금 더 일찍, 죽음을 준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어쩌면 좋은 삶을 살게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의식하면, 해야 할 일과 진짜 소중한 것만 남게 된다. 그 과정에서 삶이 더욱 선명해진다.


나는 환자들이 죽음의 순간에도 자기 삶의 주인으로 남기를 바란다. 그들이 마지막까지 스스로의 결정을 존중받으며 떠나기를, 그리고 그 힘으로 남은 삶의 사람들도 자기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죽음이 있기에 삶은 더 귀하다. 만약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다면, 지금 이 하루가 과연 이렇게 소중할까 생각해본다.


의사로서 나는 수많은 죽음을 지켜보았지만, 여전히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좋은 죽음’이 무엇인지는 배워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 배움의 끝에는 늘 같은 깨달음이 있다. 결국 ‘좋은 죽음’이란 ‘잘 살아온 삶’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것.


나의 중환자실에서 삶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는 모든 환자와 그 가족들이, 그들의 마지막 결정이 두려움이 아닌 존엄으로 기억되기를. 그리고 그 선택이 남은 이들의 삶을 더 깊고 단단하게 만들어주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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