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샹들리에가 은은한 빛을 드리운다. 어둠을 품은 무도회장의 공기 속에는 재즈 선율이 부드럽게 흐르고, 악기 하나하나가 낮게 속삭이는 듯한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파트너와 춤을 추며, 순간을 즐기고 있었다.
나는 한쪽 구석, 창가에 앉아 와인 잔을 가만히 기울였다. 붉은 빛이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일렁였다. 무대 위에서는 중절모를 쓴 트럼펫 연주자가 깊은 숨을 들이마신 후, 다시금 음을 쌓아 올렸다. 그 울림은 무도회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마치 시간마저 느리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때, 그녀를 보았다.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이 무도회장의 중앙으로 걸어 나왔다. 머리카락은 우아하게 올려 묶였고, 손끝은 섬세하게 흔들렸다. 그녀의 눈빛은 재즈의 선율처럼 깊고 아득했다. 그녀는 무심한 듯, 하지만 어딘가 애틋한 미소를 머금은 채 홀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아무 말 없이, 아무런 설명 없이도 빠져들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 그녀의 발끝이 바닥을 스칠 때마다, 그녀의 손끝이 공기를 가를 때마다, 시간이 정지하는 듯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향해 시선을 보냈지만, 아무도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마치 그녀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닌 듯, 현실과 환상 사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그리고 순간,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한순간이었지만, 아주 긴 시간처럼 느껴졌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무도회장에 흐르는 음악이 더욱 선명하게 들리는 듯했다. 심장이 리듬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가벼운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홀로 춤을 추었다.
음악이 끝나고, 사람들이 박수를 치는 사이 그녀는 조용히 무도회장을 빠져나갔다.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미 그녀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누구였을까. 우연히 이곳을 스쳐 간 사람일까, 아니면 그 밤의 재즈 선율이 만들어낸 환상일까.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날 밤 나는 재즈가 흐르는 무도회장에서 한순간의 마법 같은 시간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선율이 들려오면, 나는 또다시 그 밤을 떠올릴 것이다.
달빛 아래, 재즈가 흐르는 밤. 그리고 그녀의 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