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면체 사랑 - 형과 동생 그리고 밤하늘

1면체 하늘 위 하늘 이야기 1-2

by 일도

형과 동생 그리고 밤하늘


형 상철과 일도는 여덟 살 차이였다. 차이가 너무 커서 같이 논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말도 쉽게 붙이지 못했다. 형은 우리 집의 기둥 같은 존재였다. 든든했지만, 너무 멀게 느껴져 가까이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형은 고등학생 때부터 만화를 잘 그렸다. 실력을 인정받아 만화가 밑에서 펜 선 작업을 맡았다. 나는 심부름을 도맡아 하며, 형이 작업할 원고를 받아왔다. 형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선들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검은 잉크가 흰 종이 위를 타고 흐르며 형태를 갖춰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늘 신기했다.


어머니는 그런 형을 위해 산 중턱에 방 하나를 얻어 주었다. 형에게는 조용히 그림을 그릴 공간이 필요했다.


동생 삼도와는 네 살 차이였다. 삼도는 나를 졸졸 따라다녔다. 우리는 거의 모든 시간을 함께 보냈다. 사실 나도 형처럼 따로 방을 갖게 된 것이 좋았다. 하지만 이유는 달랐다. 아버지의 술주정 때문이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밤새도록 잔소리를 퍼부었고, 집안은 숨 막히는 긴장으로 가득 찼다. 일도는 삼이와 그 공기를 견딜 수 없어 자주 산 중턱의 방으로 도망쳤다.


산은 또 하나의 놀이터였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무를 타고, 바위 위를 뛰어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어느 바람 부는 오후, 삼도와 산에 올랐다. 나는 문득 호기심이 일었다.


“삼이야, 마른풀에 불을 붙여보자.”

“형, 성냥 있어?”

“내가 가져왔어. 불 붙이고 바로 끌 거야. 재밌을 거야.”


일도는 마른 낙엽 더미에 성냥을 그었다.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가 금세 꺼졌다. 삼이와 나는 킥킥 웃으며 불을 붙였다 끄기를 반복했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불꽃이 휙 하고 살아나더니 순식간에 불길이 번졌다. 마른 나뭇잎과 갈대가 불에 타들어갔다. 우리는 겁에 질려 옷으로 내리치고 발로 밟아보았지만, 불길은 우리의 손을 벗어났다.


“삼도야, 안 되겠다. 도망치자!”

“형! 같이 가!”


우리는 불이 붙은 겉옷을 버린 채 산비탈을 달려 내려왔다. 허공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었다. 몸은 저절로 앞으로 쏠리고, 발바닥은 땅을 스치며 나를 튕겨 올렸다. 심장은 미친 듯이 뛰었고, 귀에는 바람 소리만 가득했다.


방에 뛰어들어 숨었다. 가슴은 쿵쾅거렸고,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다. 삼이와 나는 숨을 죽인 채 한참을 말없이 있었다. 멀리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동네 사람들이 불을 끄고 있었다.


다행히 불길은 더 퍼지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가 한 짓인 줄 모르는 것 같았다. 혼나는 일도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뜨거운 공기, 아찔한 도망, 불탄 나뭇잎 냄새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날 밤, 우리는 별이 가득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은 빛나는 별들로 촘촘히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먼저 북두칠성을 찾고, 북극성도 따라 찾았다. 오리온자리, 카시오페아자리도 하나하나 짚어 나갔다.


그러다 하늘에 희뿌연 띠처럼 흐르는 것을 발견했다.


“저게 뭐야?” 나는 누나들에게 물었다.


“은하수야,” 누나가 답했다.


그 흐릿한 빛줄기는 내 마음속에 깊이 각인되었다. 은하수는 그리스 신화 속 이야기처럼 부드럽고 하얗게 밤하늘을 가로질러 흘렀다. 그것은 경이로운 풍경이었다.


낮에는 태양이 지배하고, 밤이 되면 달이 모습을 바꾸며 떠오른다. 별들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늘 무심히 지나쳤다. 그러나 그날 밤, 은하수를 본 순간, 나는 하늘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생각해 보면, 하늘이 내게 처음 말을 걸어온 순간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하늘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주 느리게, 또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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