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밤
광기의 밤
일도는 어느덧 청년이 되어 있었다.
전국의 소도시를 떠돌며 전자제품을 고치는 일을 했다.
민간 서비스업체의 기술자 자격으로, 하루하루 드라이버를 돌리고, 낡은 라디오를 뜯고, 고장 난 TV를 조심스럽게 분해하며 지냈다.
하지만 그 일은 단순한 수리 기술자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가 속한 업체는 영업부와 수리기사가 분리된 구조였고, 본질은 ‘영업’과 ‘수익’에 있었다.
당시만 해도 ‘정식 서비스센터’라는 개념이 희미하던 시절.
그 틈을 비집고 영업부는 골목마다 찾아다니며 가입비를 받고, 수리기사들은 기계 내부를 들여다본 뒤, “부품이 나갔다”는 말로 추가 요금을 청구했다.
일도도 손에 쥔 약도를 따라 골목길을 헤맸다.
얼굴 표정을 조절하고, 말투의 강약을 계산하며 어떻게 하면돈을 더 받을 수 있을지를 곱씹었다.
기술은 수단일 뿐.
‘그 기술이 돈이 되는가 아닌가’—그것이 진짜 기술이라는 걸 깨달아 가고 있었다.
삶은 찌개처럼 얼큰했다.
일이 끝나면 으레 당구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단순한 오락 공간이 아니었다.
당구장에는 언제나 돈이 걸려 있었고, 공 하나를 칠 때마다 손끝에는 긴장감이 실렸다.
어느 날은 마치 신이 깃든 듯 쓰리쿠션이 착착 맞아떨어졌다.
공이 미끄러지듯 정확히 빨간 공 두 개를 스치며 맞출 때마다, 주변의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그날 밤, 그의 양 주머니엔 두툼한 지폐가 수북이 들어찼다.
당구장을 나서는 그의 발걸음은 가볍고, 바람마저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는 몇몇 동료와 함께 허름한 셋방을 얻어 지냈다.
좁고 낡았지만, 그 방 안에서는 웃음이 있었고, 냄비에서 피어오르는 김 속에 따뜻한 온기가 있었다.
한 친구는 요리에 소질이 있어 콩나물과 두부, 어묵을 가득 넣고 파와 고춧가루를 듬뿍 쳐서 얼큰한 찌개를 끓였다.
국물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으면 뜨거운 숨이 목구멍을 타고 내려가며 속을 시원하게 뚫었다.
그 시절, 일도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은 다름 아닌 그 찌개였다.
정직한 국물, 속을 비워주는 맛, 그것만이 잠깐이나마 허기진 청춘의 위로였다.
도박과 긴장의 공기.
밤이 되면 도박판이 차려졌다.
사람들이 모여 앉고, 낮은 목소리가 오갔다.
그들이 즐긴 게임은 ‘고리 짓고 땡’.
패가 돌고, 고리가 오갔고, 눈빛은 점점 매서워졌다.
돈을 딴 이는 슬쩍 양말 속에 돈을 숨긴 채 자리를 떴다.
명백히 돈을 쓸어간 사람이었지만, 그날의 승자는 늘 “내가 딴 거 아이다”라며 웃고 넘겼다.
그러나 가끔은 그 웃음이 터지는 순간 싸움이 벌어졌고, 누가 먼저 주먹을 날릴지 모를 팽팽한 긴장감이 방 안을 감쌌다.
패를 쥔 손끝이 떨리고,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긴 자는 어깨를 으쓱이며 돈을 챙겼고, 진 자는 허탈한 표정으로 무릎을 치며 고개를 떨궜다.
일도는 그곳에서,
인간이 돈 앞에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보았다.
그리고 자신 역시 그 흐름 속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다.
폭발의 전조.
일도에게는 삼총사처럼 붙어 다니는 친구들이 있었다.
민구와 학규.
학규는 세 살 위였지만 “친구 하자”며 먼저 손을 내민 당돌한형이었고, 민구는 동갑내기지만 눈치 빠르고 처세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 셋은 서로의 거친 숨결을 숨김없이 나누며, 거침없는 밤을 함께했다.
어느 날 밤, 서울 무리와 부산 무리들이 한 자치방에 모여 술자리를 가졌다.
겉으론 화기애애했지만, 부산 쪽 친구들은 일도의 외모가 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자주 트집을 잡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너 나 무시하는 거야?”
술기운에 일도의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다.
상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말을 내뱉었다.
“그래, 내가 뭘 우짰는데 지금 화내는기가? 됐나?”
그 말, “됐나”—
경상도의 싸움이 시작되기 전, 입 안에서 맴도는 불씨 같은 말.
일도의 눈빛이 서늘하게 바뀌었다.
광기가 치밀었다.
순식간에 소주병, 맥주병을 집어 바닥에 내리쳤다.
깨진 유리 조각이 방 안 가득 튀었다.
고요하던 공기는 폭발의 진동을 머금은 듯 울렸다.
민구는 냉철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잽싸게 일도를 끓어 안으면서 깨진 소주병을 내려놓게 했다.
일도의 첫 사회생활은 불안정했다.
하지만 그건 비단 일도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 시대의 대한민국은 온통 불안정했고, 동시에 기회의 땅이기도 했다.
돈이 전부처럼 여겨지던 시절.
속여서라도 벌 수 있으면, 그것도 ‘능력’이라 불렸다.
놀음으로 얼룩진 하루하루, 감정이 앞서던 피 끓는 청춘은
점점 세상에 대한 환멸을 품어가기 시작했다.
세상이 먼저 거칠었고,
그 거친 틈에서 일도도 함께 거칠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