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위천 - 하늘위의 하늘 이야기 1-1
다면체 사랑-소설
64가지 변신 이야기
1부: 여섯 개의 물을 건너다.
주역은 64면체 주사위와 같다고 생각한다. 이 주사위를 던져서 운명을 점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64개의 면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그 속에 어떤 가치가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슬픔과 인내가 자리 잡고 있었는지를 돌아보고자 한다.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변한다. 낮과 밤이 교차하며, 공간 속에서는 끊임없이 사건과 사고가 발생한다.
64개의 면을 하나씩 펼쳐보면서 소설을 빙자해 인생이 무엇인지 살펴보되 주역은 모티브로서의 역활을 하게 하였다는 점을 말해 둔다.
1부: 여섯 개의 물을 건너는 사공으로
제1면체는 하늘위에 하늘 건위천
“원형이정, 운행우시, 건도변화, 각정성명“
하늘은 근원적 시간과 공간의 형통으로 만물에게 바르고 이롭게 한다. 바람으로 구름이 운행하여 때에 맞추어 비가오고 마음에 성령의 도가 변화하여 각 사람을 일깨운다.
응암동 산7번지에서의 어린 시절
일도가 어린 시절을 보낸 응암동 7번지는 피난민들이 모여 형성된 동네였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사람들이 부산까지 피난을 갔다가 “서울에 가면 먹을 것이 있다더라.” 하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상경해 정착한 곳이었다. 우리 가족도 그들 중 하나였다.
아버지의 친구가 먼저 자리를 잡고는 아버지를 불렀다. “이보게 서울로 오지 않겠나 내가 남대문 시장에서 수선을 하는데 여기 자리를 마련해 줌세”
참으로 고마운 친구였다. 그는 작은 땅에 판잣집을 짓고 살고 있었고, 집 옆의 작은 방을 우리에게 내어주었다. 그 작은 방에서 여섯 식구가 함께 생활했다는 사실이, 지금 돌이켜보면 놀랍기만 하다.
방문은 너무 작아서 어른들은 머리를 숙이고 드나들어야 했다. 비좁고 불편했지만, 당시에는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조차 없었다.
아버지 친구의 자녀는 삼남이녀였고, 우리 집은 삼남일녀였다. 집이 좁았기에 마당과 텃밭이 자연스레 우리의 놀이터가 되었다.
“고추 잠자리다. 잡으러가자”
“편 먹고 레스링 시합 할까”
우리는 틈만 나면 우르르 몰려다니며 온몸으로 부딪치며 놀았다. 때로는 거친 레슬링을 벌이기도 했고, 때로는 서로 등을 기대고 낄낄거리며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그 시절은 가난했지만, 어쩌면 가장 자유로웠던 때였는지도 모른다.
불타버린 시장, 그리고 서울로 향하는 길
6·25 전쟁 이후, 부산 국제시장은 피난민들로 붐볐다. 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고 내려온 사람들이 하나둘 장사를 시작하며 시장을 형성했고, 점차 부산 경제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다양한 생활 필수품과 수입품이 거래되었으며, 시장은 항상 활기찬 목소리와 흥정 소리로 가득했다.
그러나 1963년 11월 6일 밤, 부산의 심장은 뜨거운 불길에 휩싸였다.
“불이야! 큰일 났어요 모두 피하세요”
“불타 죽습니다. 물건 챙길생각 마시고 몸 부터 피해요”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화재는 순식간에 시장을 집어삼켰고, 상인들이 쌓아 올린 삶의 터전은 한순간에 잿더미가 되었다. 사람들은 소화기 하나 없이 물통을 들고 뛰어다녔지만, 이미 감당할 수 없는 화마였다. 소방 장비는 턱없이 부족했고, 좁은 시장 골목은 소방차 진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결국, 시장은 서서히 불길 속에서 무너져 내렸다.
그날 이후, 생계를 잃은 상인들은 천막을 치고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내 기억 속에는 너무 어려서 그 천막 생활보다도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 안의 풍경이 선명하게 각인 되었다.
일도가 만 네 살이었을 때였다.
기차 좌석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던 순간, 갑자기
“오징어! 계란!” “계란~ 오징어~”
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작은 수레를 밀고 가는 장사꾼의 목소리였다. 기차의 좁은 통로를 따라 수레가 덜컹거리며 지나갔다. 그 위에는 삶은 계란과 오징어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
일도는 계란 하나를 손에 쥐고 천천히 껍질을 깠다. 따뜻한 계란과 기차의 흔들림, 복잡한 기차안의 풍경이 희미하면서도 그 이미지는 또렷하게 남아 있는데 부모나 형제는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렇게 일도는 서울로 올라와, 아버지 친구의 집을 떠나 산 아래 동네인 응암동 산7번지에 자리 잡았다. 길가에 작은 가게를 얻어 만화방과 수선방을 겸하며 생활했다. 가게 안에는 미싱이 놓여 있었고, 뒤쪽에는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작은 잠자리가 있었으며, 방 하나가 옆에 붙어 있었다. 삼사십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던 이 동네에서, 일도의 초등학교 시절이 펼쳐졌다.
동네 한가운데는 동서로 길게 뻗은 넓은 길이 있었고, 그 길보다 낮은 빈터는 아이들의 세상이었다. 해가 질 때까지,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고 뛰어놀았다.
딱지치기를 할 땐 종이를 네모나게 접어 상대 딱지를 뒤집어야 했다. 팽이치기는 더 치열했다. ‘찍기’라는 기술로 상대의 팽이를 정통으로 내리쳐 상처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형 그 팽이 나에게 팔어라“ ”그래 100원 만 내, 아까운데 너니까 싸게 주는 거야“
형들에게 팽이를 잘 돌아가는 팽이를 사기도 했지만, 이상하게도 일도가 돌리면 힘이 없었다. 알고 보니 각도와 손목의 힘, 모든 게 기술이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놀이는 계급장 놀이였다. 두 편으로 나뉘어 서로를 터치해 계급을 확인하고, 계급이 낮은 쪽이 ‘죽는’ 방식이었다. 흥미로운 건, 가장 낮은 계급인 이등병이 원수를 잡을 수 있다는 설정이었다. 누가 이등병인지, 누가 원수인지 모르기 때문에, 전술이 필요한 두뇌 싸움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오징어 게임 같은 서바이벌 놀이였지만, 그 유명한 드라마에는 이 게임이 빠져 있다. 구슬치기, 비석치기, 다망구, 술래잡기까지… 친구들과 부딪치며 놀던 그 시간은 정말 끝이 없었다.
요즘 아이들은 이런 놀이를 상상할 수 있을까?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하루 종일 신나게 뛰어놀던 시절이 있었다. 형과 동생, 친구들과 웃고 싸우고 화해하던 그 시간이, 지금도 아련하게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