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달귀신 다리가 없다.
제15면체 地山謙 지산겸
“겸손하기가 어려운 것은 자기가 있기 때문이다.”
명희와 일도는 나란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서로의 숨결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부드럽게 섞였다.
방 안은 온통 편백나무 향기로 가득했고,
벽과 천장은 따스한 나뭇결을 품고 있어
두 사람의 숨결마저도 나무에 스며드는 듯했다.
머리맡 뒤의 기다란 고정창을 통해
아침 햇살이 나뭇가지 사이로 고요히 스며들었고,
그 빛은 바닥 위에 부서진 금가루처럼 반짝였다.
창밖으로는 5월의 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며
서로의 푸르름을 자랑하듯 속삭이고 있었다.
일도가 명희를 보며 나직하게 물었다.
“시골교회에 있었을 때, 왜 당신한테 공무원을 그만두게 했는지…
요즘 들어서야 모르겠는 거야.
그때 당신이 완강히 거부하고
계속 직장을 다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고.”
명희는 천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만두었거나, 계속 다녔거나…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
그만두어서 고통이 길어졌다면,
그만큼 얻어진 게 있었을 거고,
계속 다녀서 경제적 어려움이 없었다면
그만큼 또 다른 게 얻어졌겠지.”
일도는 생각에 잠겼다.
어릴 적 동네에서 팽이를 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 동네 형이 잘 돌리던 팽이를 보고
돈을 더 주고 샀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자기가 돌리면 전혀 다르게 움직였다.
‘그렇지… 주변 상황이 아니라,
내 실력이 문제였지.’
그는 작게 웃으며 말했다.
“명희… 사실 그 당시에 우리는
몽달귀신이나 다름없었어.”
“몽달귀신이 뭔지 알아?
다리가 없는 귀신이야.”
다리가 없다는 건 실천력과 의지의 부재다.
팽이를 잘 돌리는 것도,
공부를 잘하는 것도,
시골교회에서 이웃의 모범이 되는 것도
모두 ‘발’이 있어야 가능하다.
준비와 실천, 그것이 곧 발이다.
실력과 실행은 결국 발의 힘에서 나온다.
‘언행일치’가 있어야 사람인데,
말은 하면서 행동이 없는 자는
그저 몽달귀신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