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박육아주의
‘환자는 정신이 나가 있었어요,’
초록 등이 한번 점멸했다.
‘죄수는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죄 값은 치러야죠.’
붉은 등이 두 번 점멸했다.
나는 네 발을 휘적대며 복도를 나아갔다. 길고 좁은 복도는 빨강과 초록의 비상등을 점멸하며 불안하게 보챘다. 마음이 급한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음음음~메~’
왼쪽 벽에 주루륵 늘어선 어두운 문틈으로 희미하게 숨죽인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 문틈에서 훅 끼친 역겨운 냄새에 몸서리가 쳐졌다. 내 몸에도 켜켜이 묵은 똑같은 냄새가 났다. 부패한 피고름 내와 씻지 못해 쩐 내, 언제 묻었는지도 모르는 먹이의 상한 냄새. 특히 퉁퉁 불어 저절로 샌 젖이 상한 냄새가 고약했다.
복도 오른쪽 밝은 격자창으로 애벌레처럼 꾸물대는 분홍 살덩이가 여럿 누워 있는 게 보였다. 고요한 복도를 가른 이중문이 열리자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와르르 돌더미처럼 쏟아졌다. 피할 곳 없이 정신이 아득해지며 잠시 나였던 것이 다시 부서지고 사라져 오직 젖을 내는 일로만 존재하는 몸뚱이에 분홍색 살덩이가 떠 안겼다.
출산으로 손가락 끝까지 뼈마디가 늘어난 몸으로 나날이 무거워지는 살덩이를 받아 안으면 남아있던 기운이 쭉 빠졌다. 살덩이를 떨어트릴 새라 얼른 젖을 꺼내 물렸다. 퉁퉁 분 젖이 너무 아파서 살덩이가 물어뜯듯이 빨아먹는 건 별로 아프지도 않았다. 살덩이는 젖도 먹고 피도 먹었다.
생살을 찢어 놓은 아랫도리에서 풍기는 악취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한 포궁이 몸 안을 돌아다니는 끔찍한 통증보다도 살덩이의 울부짖음이 더 고통스러웠다. 젖주기로도 울음소리 고문을 벗어날 수 없을 때도 많았다. 그러면 똥이나 오줌을 싸지 않았는지, 온도가 달라지진 않았는지, 팔이 떨어지고 허리가 끊어질 때까지 가볍게 흔들어도 보고 토닥여도 보고 온갖 짓을 다 한 다음, 다시 젖을 물려보고 처음부터 했던 모든 것들을 다시 했다. 귀청을 찢는 고문을 피할 다른 방법은 없었다.
살덩이들이 있는 방 바로 옆은 젖소들이 살덩이들을 먹이거나 여분의 젖을 짜놓는 유축실이었다. 두 방을 중심으로 복도가 둘러쳐져 있고, 반쪽짜리 방문들이 벌레알처럼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 안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젖소들이 살았다.
낮의 유축실은 젖소 여럿이 젖을 내거나 살덩이를 돌보는 활기찬 장소였지만, 밤에는 억지로 깨워진 지치고 우울한 젖소 한 두 마리가 다른 젖소의 잠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히 젖을 물리는 예민하고 적막한 곳이었다.
젖소들은 하루 다섯 번 먹이를 먹으며 살덩이를 먹이는 일만 했다. 잠보다도 젖내는 일이 우선이라는 것 외엔 끔찍하게 호사스런 생활이었다. 젖이 줄어드는 일은 절대로 해선 안 됐고, 젖 맛이나 냄새가 변할만한 먹이 재료와 약품 사용은 최대한 기피되었다. 그래서 다치거나 아파도 약을 쓰기 어렵고 밑구녕의 상처도 아물지 않았다.
살덩이를 먹이지 않는 시간에는 유축기로 젖을 짜내 저장했다. 그 젖은 젖소들이 먹이를 먹는 동안 살덩이가 젖을 달랠 때 주는 거였다. 이곳에서 내 ‘몸’은 ‘나’가 아니라 음식을 젖으로 바꾸는 가장 정밀하고도 값싼 천연 기계였다.
굶주린 살덩이들은 날카로운 울음소리로 우리들을 들볶아 착취하며 쑥쑥 자라났다. 우리는 먹고, 먹은 것을 젖으로 내지 않는 시간은 쪽잠을 잤다. 잠은 언제나 부족했다. 먹이 때를 슬쩍 빼먹고 잠을 잘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젖이 줄거나 질이 떨어지면 살덩이들이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더 악을 쓰고 열이 나고 물똥을 싸고 성장이 느려지고 잔병에 걸려 더 많은 돌봄을 요구해 젖소의 체력과 시간을 빼앗는 징벌을 내렸다.
복도와 가운데 방 사이 덩그런 유축실에는 다른 젖소가 살덩이에게 젖을 내주고 있었다. 간신히 든 잠 속에서 억지로 끌려 나온 우리는 서로의 얼룩에 가려진 깊은 피로를 읽으며 말없이 몸을 녹여 살덩이를 먹였다. 젖소들끼리 알은 체를 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떡 진 머리털에 오물과 음식 찌꺼기가 묻은 채로 맨 젖을 내놓은 꼴은 보는 것도 보여주는 것도 서로 수치스런 일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보지 않았고 각자 아무도 몰랐다. 인간이었던 흔적은 사라지고 낡도록 빨아도 오물 자국이 가시지 않는 똑같은 옷을 입은 얼룩 젖소가 우리였다.
여기에는 거울이 없다. 어차피 아무도 거울을 보지 않았고 그럴 틈도 없었다. 행여 연마된 금속 모서리나 국그릇에 모습이 비치더라도 나인 걸 알아챌 수가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저 시간이 되면 차오른 젖이 너무 아프고 밑 빠진 아랫도리가 걸을 때마다 몸속을 굴러다니고 항상 상한 젖냄새와 살덩이가 통한 냄새를 달고 다니는 것 같은 불쾌감만이 지각할 수 있는 전부였다.
“젖이 잘 나와요?”
어둑한 미등 그늘에 앉아 젖을 먹이던 젖소가 물었다. 나는 조금 놀랐다.
“그럭... 저럭요.”
소리를 맺는 입안의 혀가 어색했다. ‘음음’하는 신음과 울음소리 외에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것 외에도 아주 많은 걸 잊어버린 거 같은데 좀처럼 생각이 안 났다
“저는 젖이 잘 안 나와요.”
젖소의 검은 눈가가 더 크게 얼룩졌다.
“젖이 안 나와서 초유를 못 먹였어요.”
가슴이 철렁했다. 젖이 나오지 않게 된 젖소가 어떻게 처리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무엇보다 출산 직후에 나오는 진한 초유는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초유를 먹지 못한 살덩이는 더디 자라고 질병에 취약했다. 이제 이 젖소는 초유를 주지 못한 것을, 걸음마가 늦어진 것을, 말을 빨리 트게 하지 못한 것을, 유기농만 먹이지 못한 것을, 아토피가 돋은 것을, 체중이 적게 나가는 것을,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것을, 키 크는 주사를 주지 못한 것을, 성조숙증을 늦추지 못한 것을, 아침밥을 꼬박꼬박 해 먹이지 못한 것을, 라면을 먹게 한 것을, 뽀로로를 너무 일찍 보여준 것을, ADHD가 생긴 것을, 영유아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못한 것을, 비싼 학원에 보내지 못한 것을, 강남에 진입하지 못한 것을, 서울 안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을, 해외 유학을 보내지 못한 것을, 그리고 취업 자금과 창업 자금을 대주지 못한 것, 제때 혼인시키지 못한 것, 집을 사주지 못한 것, 난임 수술비를 도와주지 못한 것, 손주를 돌봐 주지 못한 것 등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모든 일들에 죄책감을 떠안고 살아야 할 운명이었다.
나도 모르게 그 불운한 젖소에게서 살짝 몸이 떨어졌고, 그 틈의 한기를 깨닫고 미안해졌다.
우리가 안고 있는 살덩이의 크기와 무르기는 비슷해 보였다. 내 살덩이는 힘들여 빨지 않아도 술술 넘어오는 젖을 물고 고요했지만 저쪽의 살덩이는 악을 쓰느라 얼굴이 빨갰다.
“제가 좀 줘 볼까요?”
늘 젖이 모자라 시달린 젖소는 마다하지 않았다. 건강하고 젖이 넉넉한 젖소가 다른 젖소에게 젖을 나눠주는 것은 가장 크고 세심한 선물이었다. 우리는 작은 살덩이들이 거대한 우리 몸에 짓눌리거나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옮겨 안았다. 한 가슴에 두 살덩이를 안고 젖을 물리면서 무게를 지탱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저쪽의 젖소는 내 몸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번갈아 손을 넣어 틈틈이 살덩이들을 떠받쳤다.
“고마워요.”
젖소의 목소리가 목구멍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우리는 말없이 지루한 고통을 함께 견뎠다. 아무도 울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시간이었다. 마침내 두 살덩이가 만족스럽게 젖을 먹고 축 처지자 가운데 방에서 살덩이들을 받아갔다.
“...요?”
저쪽의 젖소가 뭐라 말했다. 나는 너무 지쳐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원래 소는 말을 못 알아듣는다. 나의 무례함을 흠잡을 힘조차 서로에게 남아 있지 않음을 믿으며 우리는 어색한 걸음으로 각자의 방으로 스며 들어갔다.
그날 밤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래도 내 몸이 아파하는 끙끙 소리가 잠 귀에 들렸다. 혼곤함이 덮쳐왔고, 나는 몸의 감옥에서 잠시 유리되었다.
잠에서 깨는 건 뒤통수를 꺼당겨 바늘이 가등 든 통 속에 처박는 느낌이었다. 온갖 자극과 통증이 겹겹이 더껑이진 피로를 제치고 뼈마디 구석구석 모공 속까지 들쑤셨다. 숨 쉬고 있는 것이 저주 같았다. 감각을 완전히 무시하려 해도 기진한 허기가 팔다리를 저절로 놀려 밥장으로 끌고 갔다. 세 번의 식사와 두 번의 간식을 먹어도 항상 허기가 졌다. 그 음식들은 젖을 내기 위함이지 이‘몸’을 먹이기 위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피로도 가시지 않고 상처도 낫지 않았다.
먹이를 먹는 잠깐 동안은 젖소들도 살덩이로부터 온전히 해방될 수 있었다. 이 시간엔 가운데 방에서 살덩이가 아무리 울어재껴도 젖소를 호출하지 않았다. 젖소가 젖을 잘 못 내면 어떻게 될까. 나는 흘끔 어젯밤의 젖소를 찾아보았다. 밥장에서 다른 젖소를 살펴본 적은 없었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서로를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척했다.
“딴짓하지 말고 빨리빨리 먹어요. 애기들 울잖아요.”
옆의 젖소가 눈치를 주었다. 나는 허겁지겁 먹이를 먹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리 맛있는 걸 준 대도 아무 맛도 안 났다.
운 좋게, 밥을 다 먹었는데 살덩이가 자고 있을 때도 있었다. 나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진짜 휴식을 한 방울씩 떨어지는 꿀처럼 핥았다. 초와 초 사이가 눈에 보였다. 그 잠깐 동안 씻거나 똥 누는 거 말고 뭔가 의미 있는 일을, 잠자는 것 말고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고, 그걸 알아낼 시간은 없었다. 울컥 눈물이 났다. 나는 불행했지만 모두에게 다행이었다. 현실을 알아버리면, ‘나’를 자각할 만큼 휴식을 누리거나 진실을 깨우치면, 젖을 내는 일 외에 다른 삶도 있다는 걸, 밖에는 다른 존재들이 있고 갈 수 있는 길이 있고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는 걸 기억해 내면, 머리꼭지가 돌아버릴 거 같았다. 나는 입이 있지만 비명을 지를 수 없었고, 그러기 전에 얼른 먹이를 입속에 처넣고, 유축기로 젖을 내고, 나 대신 더 울부짖는 살덩이를 흔들었다. 오물 묻은 거죽과 속옷을 빨고 밑구녕의 상처를 돌보았다.
살덩이는 울고, 싸고, 젖을 먹고, 자고, 울고, 싸고, 젖을 먹고, 자면서 점점 색이 밝아지고 털이 짙어지고 껍질이 단단히 아물었다. 덩치가 커질수록 살덩이는 더 많은 젖을 한꺼번에 먹고 싶어 했고 젖소들은 피와 살과 뼈를 녹여 젖을 내느라 몸이 곤죽 같았다.
밤이 깊으면 쪽방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들이 더 선명해졌다. 금방이라도 터질 거 같은 울음과 통증을 꾸역꾸역 삼키는 ‘음을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복도를 걸었다. 어느 소가 이미 지나갔거나 곧 지나갈 길을 안내하는 불빛이 반짝였다.
나는 호출받지 않았다. 먹이장에 가거나 젖먹이라는 호출 없이 복도를 걷는 것은 낯설었다. 가운데 방의 반대편으로 끝까지 걸으면 먹이장 뒷문이 나오고 그 너머에 바깥으로 통하는 문이 있었다. 잠겨있진 않았다. 우리는 갇혀있지 않았다. 가로지른 울타리 하나 닫힌 문이면 아프고 기력 없는 젖소들을 멈추게 하기 충분했다. 아무도 이런 너덜한 몰골로 밖에 나가서 뭘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젖소들은 그저 움직이기도 버거운 몸뚱이가 조금 덜 아프고 조금 더 자고 누운 자리가 따뜻하면 다행이라고 여겼다. 아픈 몸으로 쫓겨나가면 어떻게 하냐는 걱정을 하는 소도 있었다. 먹여주는 게 고맙기만 하다는 소도 있었다. 젖을 많이 내지 못해서 죄스럽기만 한 소들은 너무나 많았다.
야간 당번의 밤참 냄새가 났다. 나는 무거운 공기가 복도 바닥에 고여 물처럼 출렁이는 것을 느꼈다. 발이 저절로 몸을 일으켰다. 가끔 야간 당번이 한 명만 있는 날이면 가운데 방의 살덩이 전체가 잠드는 순간이 있었다. 밀도 높은 공기에 섞인 미미한 약냄새가 예민해진 코끝을 할퀴었다. 좁은 공간에 많은 젖소와 살덩이들이 잔뜩 있었기 때문에 만약의 사고-불이 나거나 아픈 살덩이의 빠른 응급조처를 위해 절대로 막히거나 닫힌 곳은 없어야 했다. 대신에 항상 경비가 삼엄했지만 그 경비도 쉬어야 할 때가 있고, 그게 바로 지금이었다.
짧은 복도를 걷는 동안 사방에서 생각들이 밀려들었다. 너무 명료해서 고통스럽기까지 한 기억들이 등골을 휘저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내가 누구였는지, 무슨 일들이 벌어졌는지, 내가 될 수 있었거나 되지 못한 것과, 영영 닿을 수 없이 멀어진 것들이 발밑에 차박차박 핏자국으로 밟혔다.
내가 어떻게 야간 당번이 숨겨둔 수면 가스와 통풍구의 위치를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나는 통풍구 근처의 가장 낮은 출력의 가스 조절 버튼을 끝까지 밀어 올렸다. 밀집된 방 안의 숨소리들이 점점 낮아졌다. 온 세상이 고요했다. 아무것도 울지 않았다. 나는 잠겨있지 않은 문을 열었다. 내려가는 계단참에 첫 발을 디딜 때까지 문은 닫지 않았다. 좁은 계단통에 바깥의 칼바람이 휘몰아쳐 올라와 나를 밀치고 문을 닫았다. 나는 캄캄한 계단을 네 발로 기어 내려갔다. 걱정했던 발굽 소리는 나지 않았다. 좁고 어두운 곳을 나아가는 동안 네 발 중 두 개가 천천히 손으로 바뀌었다. 나는 뺨과 코 대신 손으로 벽을 더듬으며 아래로 아래로 계속 갔다. 그리고 마침내 두 발이 희고 차가운 곳에 닿았다. 머리 위에서 싸늘한 간판이 빛났다.
산후조리원 <宮>
나는 흰 눈 위에 맨발로 선 채 텅 빈 배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