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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양말

혐오주의

by 은림





조그만 여자애가 빨간 양말에 구멍 숭숭 난 슬리퍼만 신고 겨울바람이 부는 길모퉁이에 서 있는 게 보였다. 나는 서둘러 딸을 안고 집안으로 들어가며 아내에게 호통 쳤다.


“애를 대체 어떻게 보는 거야?”


집안에선 갓난애가 자지러지게 울고 있었고 아내는 외출복을 입은 채로 아기를 업고 가스레인지 앞에서 저녁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식탁은 어질러진 이유식으로 더러웠고 바닥은 발 디딜 틈 없었다. 딸애는 내 호통 소리와 갓난애의 울음소리에 눈치껏 방구석으로 피신했다.


“아기가 열이 나도 어떡해.... 등원시켜야지 나도 출근하잖아. 병원 데려가야 돼서 10분만 일찍 퇴근시켜 달라고 사정사정하는데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눈치 보이는 지 알아?”


때려치우고 애만 보라는 말이 꽉 막힌 목까지 치밀었다. 혼수비용과 결혼비용 일부를 떼어 내 학자금 대출을 먼저 갚았지만 전세 대출금이 허덕허덕 목을 조이고 아기까지 낳은 마당에 외벌이로 먹고사는 건 불가능했다.


“에이 썅.”


나는 겉옷을 벗고 손을 대충 씻은 다음 추리닝으로 갈아입고 어지러운 바닥을 치워 아기가 누울 자리를 만들었다. 아내는 그동안 저녁을 차리고 내가 말끔히 치운 자리에 편히 아기를 뉘었다. 아기는 업어도 뉘여도 흔들어도 먹여도 빽빽 울기만 했다. 마치 태어난 것이 불편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이런 부당한 세상에 자리를 낳아 놓은 우리를 질책하듯이 한 순간도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간신히 허겁지겁 밥술을 떴다. 애 우는 소리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와중에 아기 똥냄새까지 퍼져서 입맛이 뚝 떨어졌다.


“기저귀는 밥 먹고 갈면 안 돼?”


아내는 아무 소리도 못하고 기저귀를 간 애를 다시 들쳐 없었다. 조금 조용해졌지만 더 밥을 먹기는 불가능했다. 나는 캔 맥주를 꺼내 티비 앞에 앉았다. 정말 잠깐의 꿀 같은 휴식이었다. 아내는 손도 대지 않은 저녁상을 정리하고 아기 이유식을 다시 데웠다. 몇 숟갈 받아먹은 아이는 그제야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아내는 그제야 겉옷을 벗고 소변을 보고 물 한잔을 마시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나도 씻고 싶었지만 아기를 씻기고 아내가 씻은 다음이었다. 맥주가 시원하지 않아서 짜증이 치밀었다. 겨울인데도 아기 때문에 집안은 쪄 죽을 거 같았다.


결혼은 남자의 무덤이라고 선배들이 누누이 말했지만 나의 유능한 아랫도리 탓에 업소에 들어가는 돈이 만만치 않았다. 친구들이 여자친구에게 뭐 사줘서 돈 깨졌네 백일이니 이백일이니 1년이니 생일이니 크리스마스니 밸런타인이니 빼빼로 데이니 사 달라는 게 많네 우는 소리를 했지만 그들이 싸구려 액세서리와 꽃 한 송이 쪼꼬렛 쪼가리와 사탕 몇 개를 주고 답례로 받은 멋진 지갑이나 노트북을 보자 남는 장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매일 그냥 ‘나야’하고 전화해도 언제든 기다렸다는 듯 받아주고 힘들고 속상해하면 당장에 달려와 주고 아무 때나 공짜로 섹스할 수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나이가 드니 점점 혼자라서 편하겠다고 부러워하는 시선보다는 어디 하나 모자란 놈 취급받는 것도 짜증이 났다. 나는 훌륭한 성인 남자였고 아내와 아이들을 거느리고 양가를 방문해 집안의 가장 대접을 받아 마땅한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결혼을 하면 더 이상 부모님의 간섭과 잔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었고 늘 나를 갈구던 어머니도 꼼짝 못 하게 된 다는 걸 형과 형수를 보고 깨달았다. 결혼하지 않은 아들은 엄마보다 서열이 낮지만 결혼하는 즉시 아버지와도 어깨를 가눌 수 있었다. 아내는 결혼 전부터 어버이날이나 명절과 부모님 생신을 살뜰히 챙겨서 나는 한결 해방감을 느꼈다.


따져보니 결혼에는 별로 돈이 들지도 않았다. 집은 내 명의로 전세대출을 받아서 대출금은 같이 벌어 갚아나가면 되었고 혼수는 아내가 해오고 예단은 아내가 가져오는 돈의 절반 혹은 그 이하로 돌려보내면 되고 예물은 알뜰하게 반지 하나씩 나누어 끼기로 했다. 서로 주는 것이지만 아내는 7호 나는 17호였으니 내 금값이 더 비쌌다. 데이트는 둘이서 반반씩 부은 통장으로 해결했고 나는 주로 술과 안주를 아내는 값비싼 디저트를 사 먹는 걸 서로 눈감아 주었다. 데이트 통장은 정말로 괜찮았다.

아내는 만날수록 착하고 좋은 여자였다. 씀씀이가 알뜰했고 양보할 줄 알았다. 아이돌처럼 날씬하진 않았지만 몸매도 나쁘지 않았고 날씬해지고 싶어서 소식했기 때문에 늘 뭘 시켜도 내 몫의 음식이 더 많은 것도 좋았다. 가끔은 맛없는 풀떼기까지 떠넘겨지는 느낌이 들어서 내가 음식쓰레기통인가 생각이 들었지만 ‘오빠가 많이 먹으니까 오빠가 좋은 메뉴 골라요.’라고 하는 아내는 늘 사랑스러웠다.


아기를 괜히 낳았어. 그 생각이 골백번은 들었다. 임신기간 동안 아내는 같이 앉은 사람도 입맛 떨어지게 구역질을 했고 매일매일 눈에 띄게 살이 찌고, 출퇴근 길의 어지러움, 배가 불러 제대로 누워서 잠도 못 잔다는 하소연을 해댔다. 나는 정말 잘 들어주려고 노력했다. 임신과 출산에 드는 돈도 만만치 않았다. 병원 검진비는 국가보조금 카드를 써도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이 있었고 어제 맞던 바지가 오늘은 안 맞아서 매일매일 출근 복을 새로 사야 하는 것도 곤란했다. 아내는 아기를 낳으면 늘어날 지출에 대비해 낳기 전부터 바짝 지출을 줄여서 비싸고 한철만 입을 임부복 대신에 사이즈가 큰 내 셔츠와 반바지를 빌려 입고 잘 늘어나는 레깅스와 통이 넓은 원피스를 입었다. 제왕절개가 자연 분만에 3배로 돈이 들기 때문에 자연분만 하겠다고 운동하는 아내를 나는 열심히 독려했다.


아내는 평소에도 까다롭게 식이 조절을 해온 터라 임신 기간 동안 몸이 부는 걸 극도로 경계해서 아기에게 꼭 필요한 음식만 먹었다. 죽도록 먹고 싶어 한 것도 자장면 돼지고기 김밥처럼 평소에 살찐다고 전혀 먹지 않았던 기름진 음식이었고 비싸지도 않고 구하기도 쉬웠다. 선배들이 겨울밤에 청량리로 수박을 구하러 갔다가 없어서 만원이면 충분할 걸 백화점에서 비싼 10만 원짜리를 사다 바쳤네 수시로 뭐가 먹고 싶다고 해서 사다 주면 구역질해서 아까워서 혼났네 같은 너스레를 떨 일도 없었다.


출퇴근하고 저녁밥을 먹고 캔 맥주를 따서 게임을 시작하는 내 일상은 별로 변할 게 없었다. 나는 내가 여자가 아니어서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격지 않아도 되는 것에 진심으로 안도했다. 오히려 애는 낳을 수도 있고 안 낳을 수도 있는데 군대는 꼭 갔어야 한다는 게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임신은 10개월이고 군대는 2년이었다. 아내가 아이를 둘 이상 낳아야지 공평했다.


그래도 내가 아프지도 않고 공짜로 나랑 똑같은 아들이 생기는 건 재밌을 것 같았다. 아들이랑 게임도 하고 티비도 보고 다 자라면 술도 기울이고 하면 제법 늙는 게 괜찮을 거 같았다.

그런데 첫 애는 딸이었다. 나는 너무 실망해서 밤새 술을 마셨다. 평생 나와는 다른 두 여자를 먹여 살려야 하는 내 인생이 서글펐다.


둘째는 아들이었다. 저기서 쌔근쌔근 잠든 작은 내 분신.


“빨간 양말은 어디서 났어 왜 애를 그런 걸 신겨?”


아내는 씻느라 못 들은 거 같았다. 나는 아내가 나오길 기다려 마지막으로 씻고는 화장실을 청소했다. 나는 아주 좋은 남편이었다. 내 친구와 친척들 중에 나 같은 남자는 없었다. 깨끗한 화장실을 흐뭇하게 돌아보고 나오니 집안은 그새 또 엉망진창이었다. 그 와중에 아내는 티비 앞에 빨간 양말을 빨래집게로 걸어 놓았다.


“크리스마스잖아..... 트리는 비싸고 놓을 데도 없고... 기분 전환하려고.”


선물을 넣을 만큼 크진 않았다. 아니 작은 선물들이 더 비싸지, 곰인형은 2, 3만 원이면 되지만 저기 넣을 만큼 작은 선물은 5~10만 이상의 귀금속이었다.


“쓸데없이 뭐 넣을 생각 말고. 저거 수면 양말이야 나중에 내가 신을 거야.”


아내는 내 속을 알고 벌써 눈을 사랑스럽게 부라렸다. 나는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야식을 시키자고 제안했다. 아내도 제대로 먹은 게 없어서 기꺼이 동의했다. 우리는 벨을 울리지 않도록 배달처에 당부하고 도착 문자가 오자 내가 직접 살그머니 따끈한 치킨을 받아왔다. 우리는 봉지가 부스럭대는 소리조차 나지 않게 화장실에서 포장을 열고 부엌 구석에서 치킨에 맥주를 먹었다. 나는 오랜만에 배불리 먹고 따뜻한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포근한 잠에 빠지려는 아내가 시끄럽게 뒷정리를 해서 좀 조용히 하라고 소리 지르려다가 아기가 깰까 봐 참았다.


밤에 몇 번 아기가 울고 아내가 일어나는 기색이 있었지만 아내의 벌이보다 내 벌이가 많으니 내가 좀 더 자두고 돈을 버는 게 맞기 때문에 굳이 일어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남자라 아기를 먹일 젖도 안 나오고 분유 값 든다며 모유를 고집한 건 아내였다. 아기는 한 돌이 넘어서 젖을 뗄 때도 되었는데 한밤중이면 낮에 못 먹은 젖을 먹겠다고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전에는 아내는 아기가 잠든 동안 유축기로 젖을 빼 어린이집에 가져다주었다. 그때보다는 훨씬 사정이 나았다. 그런데 아내는 점점 더 피곤하고 예민해졌다. 말수도 적어지고 모든 일에서 빠릿빠릿함이 떨어져서 너무 답답했다. 못 잔 잠들이 누적되고 있다는 건 알겠지만 아기가 자라는 만큼 돌보는 일도 줄고 있을 텐데 왜 점점 멍청해져 가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출근해서 일은 제대로 하는 걸까? 설마 잘리진 않겠지? 사무실 여직원들이 일하다 말고 업무시간에 수시로 개인 전화를 하고 애 핑계로 정시 퇴근하는 것만큼 꼴불견도 없었다. 업무 시간에 잠깐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러 나온 회사 동료들 중에 그걸 좋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업무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담배를 피우며 풀었는데, 저녁이면 담배 한 갑이 탈탈 비기가 일쑤였다. 너무 힘든 날은 나가서 줄창 줄담배만 피우기도 했다. 일하다가 담배 한 대 피우러 나가는 걸 뭐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 여자들이 퇴근 시간 전에 업무를 모두 마치느라 숨 한번 고르지 않고 동동댄다는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동동대고 종종 대는 게 여자들이 하는 일이니까.


결혼 전에는 아내가 나보다 더 많이 일하고 많이 벌었다. 출산 직전까지 아내는 주말에도 일하고 수당을 챙겨 왔다. 그런데 아기를 낳자 어쩔 수 없이 근무 시간을 줄어서 받아오는 돈도 적어졌다. 이제 가족의 무게를 견디는 밥벌이는 오로지 내 어깨에 무겁게 매달려 있었다. 나는 새삼 군대에서 느낀 남자의 비애를 다시 느꼈다. 역시 결혼은 남자의 무덤이라는 말이 옳았다.




아침에 누가 뺨을 후려쳐서 깜짝 놀라 깼다. 빨간 양말이 어른댔다. 어느새 내 이부자리까지 굴러온 딸애의 발이 내 얼굴 걷어찬 거였다. 나는 씨팔을 내뱉으며 아이를 치웠다. 깊이 잠든 아이는 얌전히 제 자리로 굴러갔다. 티비 앞에는 아내의 빨간 수면 양말이 여전히 걸려 있었다. 아이랑 세트로 산 걸까. 세트는 비싼데.

그런데 저 무늬를 어디선가 본 거 같다. 크리스마스 눈 꽃무늬와 뾰족뾰족한 산을 표현한 하얀 빗살무늬에 연하늘색 띠를 두른 양말. 7년 전 필리핀에서 어학 연수할 때 잠깐 만난 여자친구에게 선물했던 것도 저런 모양이었다. 어차피 크리스마스 물품이야 다 비슷비슷하지. 필리핀인 여자친구는 눈 구경을 하고 싶어 했다. 나는 언젠가 눈 오는 크리스마스에 초대하겠다고 대신 이걸로 우선 만족해 달라고 빨간 양말을 선물했다.


내 선물이 어찌나 뜻깊고 유니크했던지 어학연수원 친구 놈들 사이에 빨간 양말 선물하기가 대 유행을 했다. 필리핀 여자친구는 착하고 소박해서 양말 한 개로 정말 고마워하고 그동안 내가 졸랐던 잠자리도 해주었다. 그리고 몇 번 자보지도 않았는데 덜컥 임신했다고 했다. 여자친구는 엄청 미인이어서 집적이는 남자들이 나 말고도 많았다. 나인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내가 수술비를 내야 되는 건가?

필리핀은 임신중단이 불법이고 한다 해도 수술비가 엄청났다. 한국에서 매달 오던 어학연수비와 생활비와 용돈도 늦어지고 있었다. 나는 내 인생조차 감당할 힘이 없었다.


결혼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필리핀 여자와의 결혼을 부모님이 허락하실 리가 없었다. 일단 저질러 놓을까 생각한 적도 있는데 이혼이 금지란 걸 알게 된 후 마음을 접었다. 여자 하나에 발목 잡히기에 내 인생은 너무 소중했다. 나는 즉시 귀국이라는 당연하고도 합리적인 선택을 했고 어학연수 기간이 짧아진 건 아쉬웠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다.


“오늘은 당신이 애 좀 어린이집에 데려다 줄래요? 나 어제 일찍 퇴근해서 오늘은 절대로 늦으면 안 돼서 그래요.”


나는 그러마고 했다. 아내가 애를 전담했으면 정말 좋겠지만 아내가 실직하길 바라진 않았다.


“근데 큰 애 양말은 어디 있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현관문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투덜대며 아내처럼 아들을 들쳐 없는 대신 휴대폰으로 뽀로로를 켜주고 딸애에게 아무 양말이나 신겼다. 아내는 아이에게 휴대폰을 주는 걸 극도로 싫어했지만 지금은 비상시국이었다. 둘을 어린이집 문 안에 던져 넣은 후 혹시 차 안에 남은 아이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하는 걸 잊지 않고 차를 출발시켰다. 아이를 등원시킨 줄 알고 차 안에 방치한 채 출근해 뙤약볕아래 달궈진 차 안에서 질식해 숨지게 한 어느 멍청한 맘충처럼 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어쩌면 그 여자는 일부러 그런 건 아닐까? 큰 애 때의 스트레스가 생각났다. 정말, 도로 엄마 뱃속으로 들어가라고 하고 싶을 만큼 힘들었다. 차라리 없어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그날은 외근을 해서 내 퇴근이 아내보다 조금 더 빨랐다. 하지만 집에 일찍 들어가기가 너무 싫어서 길을 빙빙 돌다가 제시간에 들어갔다. 비좁은 골목길은 이미 주차된 차들로 붐벼서 차 댈 자리가 없었다. 주차를 시키고 차 안에서 쉴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또 외곽을 빙빙 돌며 간신히 주차를 마치고 소복이 쌓인 눈과 추위를 해치며 집으로 향했다. 길 여기저기에 막 하원한 어린애들이 오랜만에 쌓인 눈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이미 한참 놀고 사라진 흔적도 많았다. 딸아이도 눈 속에 서 있었다. 맨 발에 빨간 양말만 신고 있었다. 순간 아내가 애를 학대하나 생각이 들었다.


“신발은? 신발 어쨌어?”


“그냥.”


아이가 몸을 꼬았다.


“엄마가 뭐라 안 했어?”


언성이 조금 높아지자 딸애는 단박에 내 눈치를 보느라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내가 그런 거야. 엄마가 안 했어. 신발을 신으면 양말이 안 보이잖아. 양말 예쁜데.”


어제의 그 빨간 양말이었다. 오늘 아침에 내 얼굴을 걷어찬 그 발이 저 발인게 생각나서 화딱지가 났다. 나는 애를 들쳐멨다. 애하나 제대로 단속 못하는 아내 때문에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여보!”


아내도 아들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싫다고 우는 딸애의 발에서 억지로 양말을 벗겨 빨래 통에 내놓았다. 씻기는 건 아내 몫이었다. 나는 애가 잘못했다고 빌며 울건 말건 팽개쳐 두고 부글대는 속을 가라앉히려고 소주를 땄다. 애들은 자꾸 봐주면 더 기어오른다. 나는 딸애를 버르장머리 없는 요즘 애들처럼 키울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딸은 다 컸다. 여자애니까 혼자 신발도 잘 신고 말을 잘 들어야지 아들처럼 맨발로 뛰어다니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


소파에서 깜박 잠들었는지 구수한 밥 냄새가 나를 깨웠다. 행복한 신혼 아침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아이를 낳은 건 꿈이었고 아내는 오로지 나를 위해서만 식사를 준비하고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식탁을 차리고 내가 힘들지 않을까 안색을 살피고 나에게만 웃어주었다. 하지만 현실은 굴러다니는 술병과 빽빽대는 아이와 안절부절못하는 아내와 엉망진창인 내 삶이었다.

나는 아내와 싸우고 싶지 않아서 그냥 아무거나 걸쳐 입고 집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담배조차도 맘대로 못 피우면서 이 개고생을 하며 살게 되다니. 누구를 원망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분노가 담배 끝을 타고 타들어가다 입술을 태웠다.


“앗 뜨거.”


담배를 뱉고 입술을 탁탁 털었다. 어느새 딸애가 다리에 매달려 있었다.


“아빠 괜찮아요?”


딸애는 또 빨지도 않은 빨간 양말을 신고 있었다.


“그거 신지 말랬지.”


내가 소리 질렀다. 딸애는 슬프게 제 발을 내려다보았다.


“아빠가 주신 거잖아요.”


“뭐라고?”


“아빠가 제게 주신 유일한 선물인걸요.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너무 소중해서 절대로 벗지 않을 거예요.”


나는 집안으로 뛰어 들어가 양말 서랍을 뒤져 눈처럼 하얀 양말을 딸아이의 언 발에 신겼다.


“무슨 소리야? 양말이 이렇게 많은데.”


새빨갛게 얼어터진 아이의 맨 발은 하얀 양말을 금세 피로 새빨갛게 물들였다. 아이가 걸을 때마다 찌걱찌걱 아주 작은 발 모양 피 웅덩이가 고였다. 어느새 아이는 사라지고 아이의 잘린 발이 도도독 온 집안에 피 도장을 찍고 있었다. 발을 디딜 때마다 발목에서 왈칵 넘친 피는 마르지 않는 인주였다.


나는 걸레를 들고 쫓아다니며 피를 닦았다. 허리가 빠질 것 같고 무릎이 부서질 거 같았다. 아내가 하는 건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았는데. 어떤 요령을 부린 걸까. 너무 오래 구부린 채 움직이다 보니 오심구토가 올라왔다. 내가 피를 닦아내는 속도보다 아이가 발 도장을 찍는 것이 월등히 빨랐다. 이 피의 걸레질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여보 왜 그래요? 취했어요?”


뒤에서 탈진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꾹꾹 눌러 참았던 화가 터졌다.


“당신이야말로 미쳤어? 애를 저 지경으로 돌아다니게 해? 그럴 거면 회사 때려치워. 다른 여자들은 집안일 다 하고 애도 똑 부러지게 보고 직장에서 할 일 다 하고 다니는데 당신은 애 보기 싫어서 어린애 집에 떠맡기고 직장 나가지? 그러면서 애 본다고 밥도 제대로 안 하고. 대체 당신이 하는 게 뭐야?”


아내는 울음을 터트렸다.


“무슨 소리예요 여보? 애는 나랑 종일 병원에 있었어요. 열이 심해져서 반차내고 병원에 갔어요. 당신은 전화도 안 받고.... 나도 더 잘하고 싶어요. 근데 잘 안 돼요.”


나는 아내가 우는 게 싫었다. 애는 자기만 낳았나? 세상 모든 여자들이 그냥 하는 걸 자기만 힘든 양 희생하는 척 피해자인 척 유난 떠는 것도 신물 났다.


“안 되는 걸 왜 했어? 애초에 하질 말지. 애새끼 따위 낳는 게 아니었어.”


“여보....”


아내는 원망 섞인 얼굴로 나를 보았다. 저런 눈을 전에도 본 적이 있었다. 언제였더라


“아기가 그냥 생기나요?”


아내는 목소리는 혼잣말처럼 억양이 없었다.


“돈은 당신 혼자만 버나요? 당신 벌이에 비하면 알량하지만 나도 일해요. 내가 더 번 적도 있는데.... 아이 기르느라 못 버는 거잖아요. 집안일도 잘하려고 하는데 치우면 애가 어지르고 다 치우기 전에 또 어지르고....”


“그럼 나는? 나는 돈 안 벌어? 애는 당신 혼자 봤어? 나도 같이 하고 집안일도 돕잖아?”


아내의 눈에 원망이 점점 짙어졌다. 어디서 봤는지 그제야 기억이 났다. 필리핀 여자친구의 크고 짙은 눈동자와 똑같았다.


“아기를 낳을 때 나 혼자였어요. 당신은 없었죠.”


오피 방에 갔던 게 뜨끔해졌다.


“내내 지켜보다가 잠깐 쉬러 집에 갔었다고. 당신도 알잖아? 계속 같이 있었잖아?”


아내는 고개 저었다. 늘 질끈 묶여 있던 아내의 머리가 길고 풍성하게 어깨 위를 물결쳤다. 내가 몹시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내 여자친구들은 전부 다 저런 스타일 머리였다.


“저를 지울 때도 엄마 혼자였어요. 불법 수술이 엄마와 저를 죽였어요.”


딸아이가 발목에 매달려 무릎으로 기어올랐다. 통통한 팔다리 위로 수술도구로 낸 예리한 상처들이 입을 벌리며 배 가른 생선처럼 여기저기서 생피가 터져 나왔다. 피에 젖은 작은 손발이 쩌덕대며 내 다리에 달라붙었다.


“아빠가 우리를 죽게 했어요.”


딸아이의 뜨듯한 피가 바지 속까지 배어들었다. 여자들은 늘 내 발목을 잡는다. 예닐곱 살 짜리라고 다를 게 없었다. 나는 엉겨 붙은 것을 떼어내고 발길질했다. 물컹하고 연한 것이 발에 축축 감기는 타격감이 낯설지 않았다. 내가 왕년에 고양이 공을 좀 찼었지. 나는 저걸 발차기만으로 해치울 수 있어 도둑고양이처럼. 근데 왜 이건 안 떨어지지? 왜 안 죽지?


“여보!”


비명 같은 단말마가 나를 후려쳤다. 아내가 미친 듯이 내 발을 껴안고 걷어 차이던 것을 자기 몸으로 감췄다. 나는 웅크린 아내도 걷어찼다. 짜릿했다. 미친 것들은 맞아야 한다. 귀신을 감싸다니 아내는 미쳤다.


“꺼져! 당장 비키라고!”


동그랗게 몸을 만 아내는 쥐며느리 같았다. 그래, 이것들은 벌레다. 남자의 인생을 빨아먹고 제 종을 번식하는 암 거머리들, 살아 있는 흡혈귀들이었다.


“내놔! 그러다 당신까지 죽어. 내가 다 죽여버릴 거야.”


나는 아내의 머리통과 어깨와 가슴을 사정없이 발길질했다. 그래도 아내는 애를 내놓지 않았다. 아기 울음소리가 멈춘 세상은 지독히 고요했다. 아내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귀신도 사라졌다.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침묵이 나를 감쌌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귓가에서 이명처럼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렸다. 멋진 꿈이야. 나는 새로 술병을 땄다. 이걸 마시고 푹 자고 깨면 또 끔찍한 일상이 시작되겠지. 꿈이니까 술도 떨어지지 않으면 좋으련만 꿈이라도 어떤 부분은 묘하게 현실적이어서 나는 외투를 걸치고 다시 술을 사러 나섰다.

바람이 차가웠다. 아무렇게나 나온 줄 알았는데 발에는 어느새 크리스마스 양말이 신겨져 있었다. 취한 틈에 아내가 신겨준 걸까? 아니 내 발은 맨발이고 아내와 아기의 빨간 피가 양말처럼 달라붙어 있었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메리 크리스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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