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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나

공짜주의

by 은림

오후 1시의 작열하는 햇살 속에서 아이들이 파도처럼 교문을 뛰어나온다. 학교 담벼락에 부딪친 웃음들이 와르르 포말로 부서진다. 떠다니는 웃음의 분자가 햇빛에 조각조각 부서져 빛난다. 밀려오고 밀려가는 왁자지껄한 아이들 무리 절반은 내 앞에서 멈춰 서고, 절반은 힐끔거리며 지나가고, 절반은 무관심을 가장한 채 달아났다.

엄마와 할머니가 신신당부하지 않았다면, 주머니에 500원이 있었다면 분명 멈춰 섰으리라.


나는 아이들의 콧속으로 달콤한 설탕 탄내 섞인 달고나 냄새가 달라붙어 마음과 기억 모두를 감염시킨다. 장담한다. 아이들은 매일 조금씩 달고나 향에 전염되고 마침내 먹지 못하면 죽을 것 같은 병에 걸리고야 만다. 나는 성실하게 매일 같은 시간에 학교 앞에 작은 좌판을 깔고 불과 설탕과 소다 세 가지 재료 만으로 아이들을, 때로는 어른까지 홀리는 마법을 부린다.

나는 별로 바쁘지 않다. 아이들 모두 결국은 내 앞에서 한 번은 멈춰 서게 된다.


좌판 앞에 멈춰 선 아이들은 500원이 있고 보호자의 주의를 잊었거나 잊은 채 하는 재간을 부린다. 500원을 내고 막 불에서 내린 뜨거운 달고나 덩어리에 설탕을 묻혀 겉은 바삭하고 속은 꿀렁한 둥근 모양의 ‘뭉탱이’를 그대로 삼키거나, 설탕을 바른 금속판에 얄팍하게 누른 후 모양을 찍어낸 동그란 달고나에 침 바른 실 핀을 조심조심 톡톡 찔러 모양을 뽑는다.

뽑기를 망치지 않아도 그냥 급해서 실 핀을 넣다 말고 마구 쪼개 먹기도 한다. 나는 달고나를 뽑다가 떨어트려 울상인 꼬맹이에게 인심 좋게 새 달고나를 구워준다. 조금 귀퉁이가 부서진 모양 뽑기에 실패한 아이들에게도 모른 척 새 달고나를 구워준다. 내키면 받은 500원을 그냥 돌려주기도 한다. 나는 항상 아이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와르르한 웃음으로 밀려와 달콤하고 바삭한 냄새를 풍기며 흩어지는 아이들 너머로 한 여자애가 서 있다. 어제도 있었다. 지난주에도 있었다. 멈춰 서지만 가까이 오지는 않는다. 그 애와 달고나를 나눠먹는 아이는 없다. 그 애의 주머니엔 500원이 없다. 털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공책을 살 돈을 받아 내 앞을 지난다면 아이는 공책을 사야 한다는 걸 잊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마법을 부린다. 그 애의 눈은 쪼그려 앉은 아이들의 뒤통수, 그 밑에 청테이프와 금속을 엮은 낡은 좌탁에 뿌려진 하얀 설탕가루 위로 뜨겁게 퍼지는 갈색의 달콤한 덩어리에 못 박혀 있다. 어제도 그랬고 지난주에도 그랬다.

나는 그 애를 못 본 척한다. 콧속에 스며든 불에 태운 달콤한 설탕 냄새가 조금씩 폐에 쌓이다 심장에까지 달라붙어 애가 타도록. 그래서 기어이 내게 말을 걸 때까지.


나는 기다림에 아주 능숙하다.


“할아버지 얼마예요?”


“10원.”


아이는 어리둥절하게 빤히 나를 본다. 허연 머리는 아이들에게 경계심을 주지 않는다. 늙음은 성별을 흐리고 위협과 위화감도 흐려 한 사람을 마치 길 가의 나무나 돌무더기처럼 만든다. 아이들은 내가 어른이고 남자라는 것을 모른다.


“어. 500원인데....”


아이가 경계한다. 나는 얼른 웃는다.


“그래. 500원.”


공짜보다도 때로는 적당한 거래가 경계심을 늦춘다. 느긋하게 이것저것 받으며 자라는 아이들과 달리 어떤 아이들은 세상에 공짜가 별로 없다는 걸 아주 일찍부터 안다. 아이의 침묵에 마음이 조급해진다. 나는 천천히 좌판을 정리하는 척하며 막 구운 달고나 조각을 금속판에 떨어트린다. 모양새가 좋지 않다.


“에구 망가졌네. 너 먹을래? 난 그만 갈 거란다.”


판에 잘 펴서 모양을 찍기 좋게 둥글지만 않을 뿐 둥그렇게 말면 겉은 바삭하고 속은 뜨겁고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그냥 ‘뭉탱이’다. 500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나는 말하지 않는다. 아이도 이번엔 말하지 않는다.


“정말요? 고맙습니다.”


아이는 ‘뭉탱이’를 받아 식기 전에 깨물지도 않고 달아난다. 나는 좌판을 접는다. 정오의 뜨겁던 햇볕에 새카맣게 그을렸던 나무 그늘이 파르라게 식고 있다. 서늘한 바람처럼 오후가 갑자기 등 뒤에 서 있다. 꾸린 짐을 걸머멘다. 학교 앞은 이미 적막하다. 아이들은 내가 어디서 오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다음날 좌판 앞에 와글와글 모인 아이들의 까만 머리꼭지 너머로 그 애가 보였다. 어제보다는 더 가까이서 아이들이 뽑는 걸 지켜보고 있다. 그다음 날은 더 가까이. 나는 가끔 일부러 망친 뽑기를 그 애에게 건넨다. 돈을 냈는지 안 냈는지 너무 바빠서 착각한 척한다. 그 애도 말하지 않는다.

눈을 마주치지 않지만 우리는 공범이이다.

제 차례를 가로 차인 어떤 아이가 “재 돈 안 냈잖아요?”라고 일러바치지만 않았다면 좋았을 걸. 그 바람에 다음날, 그다음 날, 한주를 넘길 때까지 그 애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일러바친 애에게 다시는 덤을 주지 않았다.




며칠 뒤에 그 아이는 뽑기를 뽑는 아이들 속에 천연덕스럽게 섞여 있었다. 창피를 당한 걸 잊은 채 하지만 그럴 수 없으리란 걸 안다. 하지만 기억 못 하는 척하는 수밖에 없다. 그 애의 혀는 이제 달고나 맛을 안다. 냄새로만 알고 상상하던 때와는 달랐다. 그 애는 좌판 앞으로 아이들을 가르고 더 깊숙이 가까이 내게 다가앉는다.


중독은 그런 것이다. 비처럼 마르면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얼룩처럼 빨수록 지울수록 더 크게 번지고 파고들어 영영 지울 수 없게 되는 거다. 그 애는 500원을 냈다. 어디서 난 돈인지 궁금하지 않다. 나는 그 애가 뽑기를 뽑고 먹고, 망치고, 다시 뽑고, 혀를 내밀어 뜨거운 ‘뭉탱이’를 탐욕스럽게 삼키고 다시 뽑겠다는 데로 해준다.

돈을 받았는지 아닌지 제대로 잘 뽑아서 새것을 받을 수 있는지 아닌지 다른 애들이 눈치채기 전에 그 애의 손에서 확인하고 바로 으스러트린다. 아이는 손바닥에 남은 조각을 핥고 새 달고나를 받는다.

우리는 척척 박자가 맞는다. 바람이 싸늘해졌다. 나는 좌판을 접는다. 아이들도 엄마도 할머니도 마중 나온 학원차도 퇴근하는 선생님들도 사라진 학교 앞 골목은 이 끝에서 저 끝을 냉큼 잘라 다른 시공간에 넣어도 아무도 모를 것 같다. 그 애는 아쉬운 얼굴로 접은 좌판 앞을 떠나지 못한다.


“덥다. 아이스크림 먹을래?”


그 애는 망설임 없이 따라나선다. 그 애를 데리러 오는 사람은 없었다.선 어른이 사주는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되냐고 전화할 필요도 없었다. 나는 이제 모르는 어른이 아니다. 우리는 공범이다. 그 애는 내게서 공짜로 달고나를 먹었고 나는 이제 대가를 받을 참이다. 공짜가 세상에서 가장 비싸다는 걸 아이는 배우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이 애를 어디로든 데려갈 수 있고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다. 아이의 입에서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녹기도 전에.


훌륭한 낚시꾼의 자질은 낚시 대를 끄는 손질보다

내일도 작은 의자에 쪼그려 앉는 성실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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