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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머리

고어주의

by 은림



나: 왜 그렇게 자궁을 헐값에 팔았어?

언니: 그때는 인공수정이 지금만큼 활발하지 않았어.(웃음) 인공자궁보다 대리모가 더 빨리 상품화될 줄 몰랐지. 어차피, 자궁 수명은 길어야 30년이야. 내 나이는 못 써먹었어. 다~ 시절이 있는 거야.




- 괜찮아?

잘린 머리가 물었다. 손에 꼭 쥔 핸드폰 액정을 노려보며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 하지 마.

잘린 머리가 말했다. 수십 수천통의 문자를 보내던 차였다. 이전에도 보냈고 앞으로도 보낼 아무런 답도 돌아오지 않을 허기진 메아리들.


처음, 신호가 떨어지기가 무섭게 잘라내는 저 너머의 손가락에 가슴이 무너졌다. 그다음부터는 자동차단이었다. 대꾸 없는 메시지함에 애원하고 협박하고 넋두리했다. 혼자서. 힘이 빠질 때까지.


- 아침에 눈을 뜨면 후회할 말은 하지 마.

잘린 머리가 썩어가는 허연 눈동자를 굴렸다.


“헤어질 때 언니는 어땠어?”


나는 아직 기억하고 있다. 언니는 심장이 제일 처음 없어졌다. 언니가 사귄 남자는 양다리였다. 언니가 아르바이트비의 대부분을 콜라 한 잔 사지 않는 남자친구와의 데이트 비용으로 소모하는 동안 그 남자는 자기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서 다른 여자와 백일 반지를 장만했다. 언니는 그 뒤로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알바와 취업에 매진했다. 공부하고 일하느라 책상을 떠날 일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의 다리가 없어졌다. 언니의 다리가 없다는 걸 안 건 사라진 뒤 한참 뒤였다.


‘언니 다리는?’

‘필요가 없어서 팔았어.’


젊고 튼튼한 다리가 높은 값에 거래된다는 건 나도 알았다.


‘갈 곳도 없고. 바란 적도 없는데 지들이 보고 두껍네 못났네 품평하고 희롱이나 해대지. 너 그거 아냐? 다리가 없으니까 성희롱도 안 당해. 속이 편하다야.’


언니는 책상에서 뒤도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산처럼 쌓인 전표와 엑셀이 펼쳐진 화면이 언니에게 네모난 휘광을 드리우고 있었다. 엉덩이와 이어진 의자 다리 밑으로 텅 빈 공간이 시커멓게 도사리고 있었다. 작은 블랙홀이 언니의 다리를 삼키고 언니의 마음과, 무수한 미래까지 삼키고 단 하나의 불안하지만 또렷한 취업이라는 길만 열어 놓고 있었다.

언니는 학자금 대출과 취업 준비하는 동안 먹고사는 것을 다리 판 돈으로 버텼다고, 이제 정말 몇 푼 남은 게 없으니 당장 취업해야 한다고 쓴웃음 지었다. 언니는 독하게 취업에 성공했다. 언니는 면접관에게 다리가 없어서 책상 앞에서 일만 할 거고, 다리가 없어서 사내에서 성적인 문제도 생기지 않을 거라고 강력하게 어필했고 그게 먹혔다고 자화자찬했다.


다음엔 언니의 자궁이 없어졌다.


‘괜찮아. 이제 필요 없으니까.’


언니는 자궁이 사라진 걸 서운해하지도 않았다. 나도 자궁은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월경하는 것도 불편하지만 월경을 하지 않아도 불편한 건 마찬가지라 아주 없는 게 나았다.


자궁이 사라진 건 언니가 결혼을 하고 아기 둘을 낳은 다음이었다. 형부는 언니가 다리가 없어서 얌전해 보이는 것이 끌렸다고, 다리가 없으니 놀러도 못 가고 놀지 않으니 돈도 안 쓰고 번 돈을 알뜰살뜰 모아서 전세를 얻는데 보탰다고 좋아했다.

엄마는 다리 없는 언니가 부족하고 하자 있다고 여겨서 모아둔 돈도 없고 학벌도 없고 직장도 불안정한 형부가 따라다니자마자 결혼하라고 닦달했다. 언니는 결혼해서 직장을 잃는 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그래서 아기는 낳지 않기로 형부와 약속했다. 형부도 변변한 벌이가 없었기 때문에 찬성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겼고, 아이는 엄마가 보는 거라고 생각하는 형부와 행여 한 번이라도 안아주면 애를 맞길까봐 일절 아기에게 손도 대지 않는 양가 부모들 사이에서 어린이집과 직장을 미친 듯이 혼자 뛰어다니던 언니는 둘째를 임신하고 육아 휴직서를 내고는 다시 복직하지 못했다.


나는 가끔 언니가 머리를 감고 싶다고 불러서 잠깐씩 아기를 보러 가주었다. 막 고등학생이 된 내가 애를 볼 수 있을 리 만무해서 정말로 언니가 머리를 감는 15분 동안 아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게 고작이었다. 가끔 형부가 집에 있을 때도 있었다.


‘어이구 처제 왔네.’


형부는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아기를 보는 게 아니라 내 뺨을 만졌다. 그 뒤로 그 집에 가지 않았다.


다리와는 달리 자궁을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자궁은 아기를 품는 기관이라 아무도 자기 것이 아닌 아기를 안고 싶어 하지 않고 손이 많이 가는 아기 상태의 인간을 기꺼워하는 곳도 드물었다. 사회는 어린 아기도, 손이 가는 10대도 아닌 모든 준비를 갖춘 싱싱한 20대만 사람으로 세상에 짠 등장하길 원했다.


자궁이 사라진 후 언니는 급격히 살이 붙었고 자주 골절이 되었다. 팔과 손목은 예사롭고 오랜 기침만으로 갈비뼈가 부러졌다. 자궁이 사라진 뒤 호르몬 변화 때문에 뼈들이 갑자기 약해졌기 때문이라고 들었지만 더 자세한 건 몰랐다. 나는 아르바이트와 학업과 연애로 내 앞가림을 하기에도 바빴다.

다음에는 언니의 두 팔이 닳아 없어졌다.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하고 부업을 하느라 손가락부터 점점 뭉툭해지더니 팔꿈치가 사라지고 어깨도 사라졌다. 형부와 가족들은 언니가 점점 뚱뚱해진다고, 팔이 살에 파묻혀 보이지도 않는다고 구박했다. 언니는 오히려 밥을 굶고 있었다. 집에서 밥만 먹으면서 아무 알도 안 하고 살만 찌는 식충이 소리를 들을까 봐. 언니는 몰래 위장을 잘라내고 허리를 줄이다가 결국 몸통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머리만 남아 내게 왔다.

아르바이트비의 절반을 월세로 내는 한 평짜리 고시원이었지만 언니는 머리뿐이라 작은 냄비 하나면 자리가 충분했다. 나는 외로웠기 때문에 언니의 잘린 머리와 함께 살았다. 언니의 머리는 내 시험공부도 도와주고 말상대도 해주었다. 언니는 엄마처럼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다. 힘든 순간에는 인생의 조언자가 되어주었다. 지금처럼.


- 후회할 일은 하지 마. 그 남자랑 끝내기로 했잖아.


잘린 언니 머리가 말했다.


“그랬지. 내가 먼저 끝내자고 했지.”


내 말에 그는 바로 ‘그래.’라고 답했다. 진저리가 난 표정이었다. 그는 좋은 얼굴만 좋은 말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 헤어지자는 말은 절대로 먼저 하지 않았으리라


그래서 내가, 했다.


-나는 네가 나처럼 살지 않기 바라.


나는 핸드폰을 노려보다가 냄비 속의 언니를 가만히 들어 봉투에 넣었다. 잘린 머리에서 피가 흘러 봉투 안에 조금씩 고였다. 나는 배터리가 나가기 직전의 전화기를 꽉 붙들고 내 두 다리로 내 눈이 보고 싶은 사람을 찾아 어리석은 심장이 향하는 곳으로 달려 나갔다.


곧 이 심장도 사라지고 두 다리도 사라지고 내 팔도 몸뚱이도 모두 다 사라지고 언젠가 머리만 남을 것이다. 언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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