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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것이 시작이었다 1

에필로그

by 은림


20대 때 디스크 3개가 파열되었다. 세상에 나를 맞추며 살아남으려고 살과 뼈를 뒤틀며 일하고 생존한 결과였다. 기어서 산을 다녔다. 젊음으로 통증을 이겼고 다시 일상을 살고 일도 했다.


두 번째, 육아를 하면서 재발했을 때는 회복되지 않았다. 원래 파열된 디스크는 재생되지 않는다. 20대에 다시 걸을 수 있던 것은 운이 좋았던 거였다. 과거에 파열되었었다는 것도 출산 후 여러 가지 처치를 하다가 알게 되었다.


아파도 아기를 돌봐야 했고 어린 아기를 돌보느라 병원에 갈 수가 없었다. 사정이 안되어 수술하지 못한 채 시기를 놓쳤다. 하지가 마비되었고, 숨 쉬는 것도 고통스러웠다. 보통사람들처럼 걸을 수 있기까지 10년, 고통 없이 움직이는데 5년, 도합 15년이 걸렸고, 재활훈련은 현재 그냥 매일 세 시간짜리 일과 중 하나다.

그 사이 또 고비를 겪고 사고도 나고, 결혼예물이던(?) 애물단지 고양이들이 떠나고, 겹겹진 고통 속에서 나는 아주 오래 깊은 어둠의 골짜기를 걸었다. (아주 오래 묵은 인용구인데 이렇게 써먹는 거구나 한다)


좋은 일은 한 가지도 없고 아무것도 잘 한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없이 그저 모두가 무사하고 무탈한 것으로 다행인 날들이 아주 많았다. 어쩌면 그것이 가장 좋은 일들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몹시 야만스럽고 야박하고 고통스러운 생존기는 요담록-https://brunch.co.kr/brunchbook/mam-horrors 에서 소설로 풀어냈으니 그만 말하기로 하자.


나의 개인적인 슬픔 기쁨 아픔 노력 성취등 무엇도, 잘 자라는 아이라는 거대한 빛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었고, 지금도 아닌 거 같다.


그리고 모든 고비에 정점 같은 아름다운 기념품들이 있었다.

기념과 개인의 역사 만들기야 말로 주얼리 시장의 가장 전통적인 마케팅 법이긴 하지만, 그 작은 아름다운 것들을 찾아내고 들여다보려고 아픈 다리를 절룩대며 거지꼴을 하고도 아이와 함께 문밖으로 걸어 나가기도 했다. 손목에 건 테니스 팔찌가 가장 어두운 시기를 부적처럼 지켜주었다.(랩이라 팔아도 큰 가치가 없어서 문신처럼 쓰고 또 쓰는 게 가장 가치 있었다.)


아름답게 빛나는 작은 다이아몬드 팔찌로 부유한 사람들속에서 취향과 자존감을 지킬 수 있었다. 장엄한 장소에서 나를 잃지 않았다. 팔찌는 다이아몬드를 공부한 노력의 결실이고 정성으로 만들어졌고 어둠속에서 깜밖이는 별처럼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처럼 깜박깜박 사랑스럼게 빛났다.



이제 끝이고 아무것도 없고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생각한 순간들에도

내 몸과 마음은 아무것도 멈추지 않았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조금 놀랐다.



언제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파란 천연석들이 각자의 개성대로 푸른 모습을 보기 좋았다. 막연하게 파란색이라면 아콰마린과 토파즈, 사파이어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 것과 달리, 실제 천연석의 파란색을 만나자 물색은 라리마, 깊은 밤하늘 같은 로열블루 카야나이트, 약하지만 다채로운 에퍼타이트가 훨씬 취향이었다.)


하지 마비를 딛고, 또 다른 인생의 고비를 몇 개 넘느라고 아주 고역을 치른 다음, 신변을 말끔히 정리했다.

당장 입어야 할 옷들만 남기고 옷장을 정리하고, 책도 당장 생계수단 참고도서 외에 모두 버리고 팔았다. 거실을 꽉 채웠던 수작업대와 책상 세 개를 버렸다. 한 때 책장에 꽂힌 것만 이만 권까지 세고 박스에도 숨어 있었던 책들은 훌쩍 줄었다. 모두 나의 과거와 미래의 생존수단이었다. 식기도 자주 쓰는 것만 남기고 좋은 것들은 수집가 친구에게 선물하고 전부 버렸다. (가족 공동의 물건인데 조금 미안하다. 하지만 내가 관리자인데 능력에 부쳤다)


몇 년을 실행목록에 있던 보험 사항들을 정리하고 연명의료결정서를 의료보험공단에 제출했다. (이것은 대게 와병과 노환에 관련된 것이지 응급 사고에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하니 아주 적절해 보였다.)

어거지로 떠맞겨졌던 혼미하게 무거운 돌장판과 내 허리로는 들 수 없는 무거운 솜이불도 내버렸다. 집안에서 내가 움직일 수 없는 무게의 물건은 장롱과 책장 외에 이제 없다. 그리고 또 조금씩 힘에 부치는 다른 물건들도 자꾸 버려지고 있다(....)


기쁨이 되었던 장난감들을 모두 중고 마켓에 올리고, 보석함에서 아이 취향의 주얼리를 직접 고르게 해서 따로 상자에 넣어 주었다. 당장 사용한 저렴하고 아름다운 액세서리 몇 점 남기고 나자, 애매한 주얼리들의 행방이 꽤 난처해졌다. 추억이 있는 것들은 처분하기 어렵고, 가치는 없지만 누군가에게는 보물일 보석 몇 점이 밟혔다. 중고로 내놨지만 팔리지 않았다.


그냥 쉼표 한 점찍으려고, 보석을 마무리하면서 은사님께 인사를 가야겠다고 오랜만에 선생님의 사무실을 방문했다. 선생님은 신제품 준비에 여념이 없으셨고, 작업대 위에 잔뜩 굴러다니는 그렇게 찬란하고 탐나던 보석들은 여전히 엄청나게 아름답지만, 탐나지 않았다. 보석에 대한 마음이 확실히 정리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선생님의 품질 좋은 주얼리가 많이 알려지고 장사에 능란치 못한 그분의 사업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어리석었다. 오래 못 뵌 동안 이미 두꺼운 팬덤이 쌓여 있어서 고양이 손이 전혀 필요가 없었다. 나만 몰랐다.


선생님은 5년 동안 나의 문신템이었던 테니스 팔찌(주얼리학교 졸업작품으로 선생님과 현미경으로 하나하나 등급을 골라내고 검수받은 랩다이아몬드들)가 낡은 걸 보시더니, 장인으로서 마음이 몹시 불편하셨던지 그대로는 둘 수 없다며 거두어가셨다. 창작자와 제작자로 작품에 대한 마음을 잘 아는 입장으로서 거스르기가 어려웠다.


5년 동안 한 몸처럼 사용했던 팔찌를 예정에도 없이 내려놓고 오자니 서운한 마음이 컸다. 가진 중 가장 좋은 물건이었고, 지닌 내내 몹시 행복했던 물건이었다.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를 고르고 골라 만든 팔찌가 멋진 거지 내가 멋진 게 아닌데, 지니고 있는 동안 마치 내가 최고로 근사하고 멋진 존재가 된 거 같았다. (다시 생각해도 기묘한 착각이다. 아마 이게 장신구의 효능? 중 하나인 거 같다)




팔찌를 잃어버린 것도 아니고 더 말끔히 고치려고 잠시 거두신 건데, 이제 그 모습을 볼 수 없는 게 몹시 섭섭했다. 나는 그 팔찌를 몹시 사랑했다. 그리고 보석을 아주 오래 사랑했다.


그토록 사랑했으니, 정리를 하려면 글이라도 써야지. 달리 방법이 없겠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거뿐이겠구나 싶었다.

선생님은 선생님의 일, 더 좋고 아름답게 만드는 일을 하시기로 나는 에세이를 쓰겠다고 호언(?)하고 돌아왔다. (절대 호언이나 약속을 안 한다. 약속이란 건, 지키기 어렵기 때문에 하는 거다. 그리고 약속을 하면 반쯤은 어기게 된다, 쉬울 일이 더 복잡해진다. 약속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애초에 약속이 없다면 어길 것도 지키기 어려울 것도 없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절대로 약속을 어기지 않기 때문에 약속이 너무 무겁다.)


즉시 첫 에세이에 돌입했다. 의외로 글은 술술 풀렸다. 에세이는 소설만큼 쓰기 어렵지는 않았지만 소설보다도 주의할 점이 많았다.


한 번쯤은 보석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나의 부족한 공부와 지식으로는 접근하기가 너무 방대한 장르였다. 다만 사랑이라면, 그 부족한 부분을 너그럽게 봐주십사 읍소할 수 있을 거 같았다. 이 에세이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주얼리 이벤트가 잔뜩 있어서 현장과 숨 쉬는 아주 즐거운 과정이 되었다.


다시 한번 변명드리자면, 전문적 지식이 적고 현장의 사정도 다 다르다. 고쳐야 할 것 잘못된 점이 있다면 언제든 누구시건 알려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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